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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김포족과 김장족

 

 

 

 

 

‘농가월령가’ 10월령을 보면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 맞게 하소/고추 마늘 생강 파에 조기 김치 장아찌라/독 옆에 중두리(작고 배부른 오지그릇) 요 바탱이(중두리보다 조금 작은 오지그릇) 항아리라/양지에 움막 짓고 짚에 싸 깊이 묻고/장다리 무 아람 한 말 수월찮게 간수하소.’‘농가월령가’는 정약용의 둘째 아들인 정학유(1786~1855)가 지은 것이다. 우리의 전통 음식인 김장하는 모습을 그대로 노래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 김장에 대한 인식이 김장하는 사람보다 김치를 사 먹겠다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김포족’은 김장을 포기한 주부를 일컫는 요즘의 신조어다. “지금 세상에 돈과 시간 낭비하며 힘든 김장을 꼭 해야 하나요?”하고 반문하는 주부들이 전에 없이 많이 늘었다. 올해 세 차례나 들이닥친 가을 태풍의 영향으로 크게 치솟은 배춧값 상승도 김장을 포기하는 요인이 되었다. 국내 유수의 한 식품업체가 주부 3115명을 대상으로 한 ‘김장’ 관련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이 넘는 54.9%가 ‘김장을 포기한다’는 ‘김포족’으로 나타났다. 그 ‘김포족’의 김장 포기 이유로, 고된 노동과 스트레스로 인한 후유증을 들었으며, 직접 담그는 것을 포기하는 대신 포장김치를 사 먹겠다고 응답했다. 사 먹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란 인식이다.

올해는 친정에서 배추 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하여 같이 김장을 하였다. 300포기 가까운 배추를 김장 하루 전에 여동생이 절이고 있었다. 비닐하우스를 짓고 김장하기 좋게 수도 배수관 공사를 해놓아 일하기가 좋았다. 밭에서 수확한 무, 총각무와 동치미 무, 쪽파를 씻어놓고 채썰기를 하였다. 둥근 매트에 각자 썰어놓은 무채를 쏟아놓으니 마치 김치 공장 같은 양이었다. 여기에 어머니가 농사 지은 태양초를 섞고, 소래포구에서 사 온 싱싱한 생새우와 쪽파, 마늘, 생강, 갓, 멸치젓, 새우젓, 매실청 등을 넣고 버무렸다. 여러 가지 양념이 어우러져 특유의 내음이 코를 자극한다.

화성시 궁평항 근처 친정에서 어머니와 여동생들과 하룻밤을 자게 된 것은 참 오랜만이다. 여동생은 침대가 따뜻한지 살뜰히 살피더니 본인은 거실 소파에서 잔다고 하였다. 밤새 수다 떨다가 안방에 들어가서 어머니와 잠을 잤다. 어머니는 새벽 4시부터 어둠 속에 앉아 기도하고 계셨다. 5시 반쯤 거실에서 두 여동생이 두런대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의 불빛을 밝히고 세 자매는 배추를 씻기 시작했다. 배추를 갈라놓으니 개수가 많아서 시간이 오래 걸리기에 서두른 것이다.

다 씻어 갈 즈음 서서히 먼동이 터 오고 아침 기온이 신선했다. 배추를 씻다 말고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동쪽에서 막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하늘에는 철새들이 브이 자로 날아가고, 이따금 감나무에서 청량한 새소리가 들려왔다. 시골의 정취가 물씬 느껴져 여기서 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침밥을 먹고 본격적으로 물기가 빠진 배추에 속을 넣기 시작했다. 남동생과 올케와 조카들까지 와서 김장을 거들었다. 오래된 주부 경력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완전 김치 박사라는 우스갯소리를 들으며 김장을 마무리했다. 가족이 모처럼 다 모여 김장을 한 날이다.

어머니는 밖에 걸어놓은 가마솥에 돼지고기를 삶으셨다. 그 고기와 생굴에 약도 안 친 배추쌈이 정말 달았다. 어머니는 아픈 친척에게 김치를 택배로 보내시고, 이웃집에도 수육에 배춧속과 배추 쌈을 쟁반에 받쳐 갖다 드리라고 하셨다. 여기서는 무슨 작은 것이라도 이웃집과 다 나누고 계셨다.

김장하는 것은 물론 힘든 일이다. 남동생은 우리가 힘들게 김장하는 것을 보고 ‘사 먹지 뭐 하러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냐?’고 했다. 어머니는 ‘거기 뭐가 들어간 줄 알고 사 먹느냐’고 하신다. 아직은 김장족이라서 그럴까? 나도 김치를 사 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내 손으로 김장해서 식구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보람 있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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