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춘추]김경우"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복지편향"

2012-07-26     경기신문

 

국민 대다수가 국가로부터 받는 복지급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선별적 복지조차 엄격하게 규제하려는 것은 분명히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욕구와 대상을 지목하지 않은 채 추상적으로 보편적 복지만을 외치는 것 역시 무책임한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사회복지제도는 선별주의로부터 보편주의로 진화하는 모습으로 발전해 왔다. 복지국가일수록 보편주의적 제도가 기본이 됐다는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는 선진국 중에서 복지후진국으로 분류되는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서도 국가복지의 수준이 턱없이 낮다. 단편적인 지식을 가지고 보편주의다, 선별주의다 외치는 정치권은 더욱 꼼꼼하게 학습해야 한다. 대표적인 정부와 여당의 무상보육정책혼선으로 학부모와 보육현장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무상보육 중단논란은 정부가 수요예측도 못한 졸속정책을 내놓고 보편적 복지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일 뿐만 아니라 무책임한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이분법은 자원을 누구에게 분배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매우 민감하고도 복잡한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문제이다. 전체 인구층을 대상으로 하는 보편주의냐 자산조사나 욕구조사를 통해 한정된 집단만을 대상으로 하는 선별주의냐 하는 것은 영국이나 미국에서도 이미 오래 전에 뜨거운 논쟁을 벌인 쟁점이다.

그러나 결론은 그것이 당위적인 것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라는 것이다. 또 이러한 이분법으로는 정당한 할당과 분배의 기준을 결정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지금 정부와 여당, 언론의 주장들을 보면 보편주의와 선별주의의 일면적 장점만을 부각시키고 있다. 매우 초보적인 논쟁 단계에 있다. 그래도 이러한 논쟁이 벌어지는 것 자체가 우리나라가 성숙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기도 하지만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서 복지논쟁을 이제야 시작한다는 점에서 부끄럽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사회보험법들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위해 법실시 이후 대상자 범위를 확대해 왔다. 이른바 보편주의 제도이다. 그러나 전국민 대상이라는 것이 무색할 정도로 국민연금법이나 국민건강보험법의 당연 적용대상자들의 상당수가 누락돼 있다. 이는 고용 사정이 급격히 후퇴하면서 생기는 문제이다. 노후의 연금생활자나 퇴직자의 연금은 바로 이러한 보편적 복지를 설명해 준다. 보편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복지 수급이 전 국민들의 기본권의 하나라는 점이다. 모든 노인을 위한 사회보장연금과 모든 취학 아동을 위한 초·중등교육이 좋은 예이다. 단 공평성, 편익성의 측면에서는 적합하나 국가책임을 가중시키는 것에 문제가 있다.

또 부양의무자가 없는 빈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선별주의 제도에 해당된다. 전국민의 3% 내외가 이에 해당된다. 이것조차 퍼주기 복지, 사회주의식 복지라는 공격을 받으며 시작된 제도이다. 선택주의는 서비스를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집중시킬 수 있고, 자원의 낭비가 없다는 점이다. 서구 복지국가에서 실시하는 아동수당, 장애수당, 간호수당, 이혼수당 등 다양한 사회수당제도는 아예 없다. 이것은 과도한 지출을 요하거나 빈곤으로 전락할 수 있는 인구학적 조건을 가진 대상자들에게 국가가 일정한 수준의 급여를 제공해줌으로써 빈곤을 예방하기 위한 것이다. 이러한 제도는 보편주의도 아니고 선별주의도 아니다. 양자의 장점을 결합한 제도로 평가된다. 따라서 보편주의냐 선별주의냐 하는 논쟁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공방의 소재는 되지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제도의 도입과 관련해선 도움이 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어떤 대상에게 어떤 자원을 얼마만큼 분배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상자라 함은 곧 욕구를 가진 존재이다. 욕구에 따라 국민 전체가 대상이 될 수도 있고, 한정된 집단만이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것도 자산조사 등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는 것이다. 국민 대다수가 국가로부터 받는 복지급여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선별적 복지조차 엄격하게 규제하려는 것은 분명히 비판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구체적인 욕구와 대상을 지목하지 않은 채 추상적으로 보편적 복지만을 외치는 것 역시 무책임한 주장이다.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는 사회복지정책의 할당 차원의 가장 단순한 모델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구체적인 대상자와 욕구를 파악해야 하고, 급여 및 서비스는 어떤 것들을 개발해야 하고 어느 수준으로 제공해야 하는지, 그것의 전달체계는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필요한 재원은 어떻게 조달해야 할 것인지 신중하고 정교하게 분석하고 토론해야 할 것이다. 섣부른 논쟁은 갈 길을 더디게 하거나 복지의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것을 정부는 명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