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찾아든 여름인 듯 한낮 기온은 무덥지만 불어오는 바람 만큼은 산들산들 봄을 일깨운다. 산이며 들마다 상춘객들로 북적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안도현 이도백하진 내두산촌에서는 지난 5월 20일부터 21일까지 1박2일간 ‘제1회 내두산산나물축제’가 열렸다. 하늘 아래 첫동네라 불리는 내두산촌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자랑하며 옛 시골의 정취를 듬뿍 느낄 수 있어 관광객들의 발길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곳이다. 실로 나물잔치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숲속의 보물인 산나물을 뜯기에 가장 좋은 때에 가족끼리, 친구끼리 모인 30여명의 참가자들은 목적지에 이르기 바쁘게 산나물 향기가 그윽한 숲을 찾아 발길을 옮긴다. 인적이 드문 숲속에서 군락을 이룬 채 정겹게 모습을 드러낸 산나물을 발견할 때마다 어린아이처럼 호기심이 발동해 질문은 끊기질 않았다. “이건 무슨 산나물이죠?”, “저건 또 뭔가요?” 마냥 신기한 얼굴로 묻는 이들에게 이 마을의 림명일씨는 산나물의 정확한 명칭은 물론 특징까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며 자연계 선생님의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누가 누가 더 많이 채취하나 보자’라는 말없는 경쟁을 펼치며 얼굴에 자못 비장함이 묻어나는 이들의 모습도 재미나다.
‘연변대학 박걸교육발전기금’ 설립식 및 커시안 설립 13돐 경축 활동이 2일 오전, 연변대학구락부에서 펼쳐졌다. 시정부, 연변대학, 커시안집단의 해당 부문 책임자들과 연변대학 사생, 전국 각지의 커시안집단 사업일군 등 1000여명이 행사에 참가했다. 커시안집단 박걸 리사장은 360만원을 쾌척해 ‘연변대학 박걸교육발전기금’을 설립, 그중 100만원은 불우한 학생들을 돕고 우수한 학생들을 장려하며 학술연구를 지원하는 데 쓰인다. 또 다른 100만원은 ‘연변대학 박걸영화예술쎈터’ 설립에 쓰이고 남은 160만원은 쎈터의 영화예술 관련 고성능설비를 갖추고 인테리어를 하는 데 쓰이게 된다. 이날 박걸 리사장과 연변대학 교육기금회 박영호 리사장은 현장에서 조인식을 갖고 악수를 나눴다. 이날 있은 장학금 지급식에서는 도합 75명의 연변대학 사생이 ‘연변대학 박걸교육발전기금’으로부터 장학금을 전달받았으며 이어 연변대학 예술학원 학생들의 문예공연으로 경축활동은 막을 내렸다./리련화기자
훈춘시문화관 찾아서 “문화예술은 령혼에 묻은 일상의 먼지를 닦아내준다.” 파블로 피카소의 말이다. 이 말은 일상과 예술의 공존, 상생의 가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실상 예술은 이미 우리 생활 속 어디에서든 쉽게 접하고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시민과 문화예술인들이 소통할 수 있는 문화인프라를 확대해나가는 데 문화관이 가교역할을 합니다.” 지난달 23일 만난 훈춘시문화관 최예화 관장은 문화관은 그동안 시민들의 일상 가까이에서 그들의 문화갈증을 해소하고 시민이 향유하는 문화예술을 이끌어가기에 아낌없는 노력을 해왔다고 밝혔다. 고속철시대에 진입, 특히 훈춘은 로씨야와의 교류가 활발해 해마다 많은 국내외 관광객들이 찾는 도시이다. 지역을 알리는 데 문화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함이 분명하다. ■ 찾아가는 공연으로 시민과 함께하는 문화공감 훈춘시문화관은 지역주민들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최근 해마다 찾아가는 공연을 해왔다. 딱딱한 격식을 깨며 시민들과 즐겁게 소통하기 위해 관내 사회복지시설과 학교, 광장공원 등 다양한 장소에서 다양한 형식으로 공연장 접근이 어려운 문화 소외계층들에게 문화생활을 충분히 향유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지난해에는 300여명의
단오절기간 우리 주에서 접대한 관광객수는 연인수로 91.4만명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18.6% 증가한 가운데 관광수입은 6.7억원에 달해 전년 동기 대비 26.3% 급증했다. 그중 훈춘시 성급 호텔 투숙률은 83%에 달하고 연길시 비성급 호텔 투숙률은 85%였으며 관광신고와 관광안전 책임사고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5월 31일 주관광국에서 전했다. 단오절을 맞으며 연길시 의란진 춘흥촌 옛마을에서는 ‘2017년 중국조선족문화관광축제 계렬활동 단오절조선족민속문화전시회’를 조직해 단오절기복식을 가지고 조선족민속문예공연을 펼쳤으며 중로년모델경기, 청소년미술서예경기, 조선족씨름경기, 조선족널뛰기표현 등 종목으로 활동내용을 풍부히 했다. 련휴기간 연길모드모아민속관광휴가촌에서는 친자환락축제 및 모드모아수상락원 1돐 행사를 펼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았다. 이 밖에 연길시단오절조선족민속전시, 연길시조선족전통민속된장축제, 돈화시칠색풍차락원, 륙정산묘회, 안명호신룡온천축제 등 주내 여러 대형 야외오락 활동들로 올해 단오절 련휴일을 장식했다. 또한 단오절기간 료해에 따르면 전 주적으로 관광풍경구 및 향촌관광 농가락이 호황세를 선보인 가운데 참외, 딸기 성수기를 맞으며 각
연변대지자전거클럽 동행 취재 우리는 가끔 도심을 벗어난 야외에서 일매지게 유니폼을 입고 안전모자, 선글라스를 장착한 사람들이 자전거리를 타고 지나가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바로 휴식시간을 리용해 바람을 가르며 자연을 즐기는 연변대지자전거클럽의 성원들이다. 지난 5월 17일, 기자는 연변대지자전거클럽을 찾아 취재에 나섰다. 연변대지자전거클럽이 세워지고 간간이 자전거활동을 한 지도 어느덧 여덟해가 된단다. 자전거애호가들이 늘어나며 이들의 여유시간을 맞추느라 주중에는 아침, 점심, 저녁 세개 시간대로 나뉘여 활동하고 주말에는 도심을 벗어나 야외로 나가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전거는 혼자서나 두서너명이 모여서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수십명이서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계절을 가리지 않는 야외운동입니다.” 어릴 때부터 자전거타기를 즐겼고 연변베텐국제자전거축제 단거리경기에서 련속 여러해 우승을 따낸 적이 있는 연변대지자전거클럽 주장 리군씨는 이와 같이 소개했다. 이들은 평소 주중에는 30~40명씩 모여 활동하고 주말에는 많이는 200여명도 자전거활동에 참여한다고 한다. 예전에는 연변 뿐만 아니라 전국에서도 자전거는 제일 흔한 교통수단이였다.
창업 장벽을 낮추고 더욱 많은 사람들이 창업에 도전하고 투자를 받을 수 있는 다양한 제도 마련에 힘쓰고 있는 연길시에서는 귀향창업의 길에서 새로운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최근 몇년 사이 연길시의 귀향창업 인원은 683명, 예비창업 인원은 3만 4376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 봉사플랫폼 최적화해 귀향창업의 엔진역할 톡톡히 연변금강산식품유한회사 리사장 조용철은 “우리 나라에 습근평 총서기가 제기한 ‘중국 꿈’이 있다면 저희 회사에는 ‘금강산 꿈’이 있는데 그것은 세계 제일의 김치기업으로 부상하는 것입니다”라며 현재 꿈을 실현하는 길에 서있다고 말한다. 로씨야에서 6년간 돈벌이를 하다 연길로 돌아온 그는 조선족김치로 창업에 도전했다. 연길시 당위와 정부의 도움하에 1일 생산량이 150톤인 김치대상이 사용에 투입됐으며 규모와 부대시설 면에서 모두 국제화표준으로 건설된 공장은 년간 4만톤의 김치를 생산해 2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 우수인재 양성해 ‘두개 위원회’후보로 발탁 김석산은 한국 돈벌이를 마치고 1998년 조양천진 광영촌의 지부서기 겸 주임직을 맡으며 촌민지주집합(土地入股)의 형식으로 연길시광영화훼재배전문합작사를 꾸렸다. 몇년간의 운영을 거쳐 설립초
오류동 (梧柳洞)의 동전(銅錢) /박용래 한때 나는 한 봉지 솜과자였다가 한때 나는 한 봉지 봉어빵였다가 한때 나는 좌판坐板에 던져진 햇살였다가 中國집 처마밑 조롱鳥籠 속의 새였다가 먼 먼 윤회輪廻 끝 이제는 돌아와 梧柳洞의 銅錢. -박용래 시전집<먼바다 / 창비 1984년> 오류동은 대전에 있는 동네 이름이고 박용래 시인이 살았던 곳이다. 그 오류동의 동전으로 먼 먼 윤회 끝 돌아왔다고 한다. 솜과자 붕어빵 좌판의 햇살, 모두 변두리 것들 동전으로 살 수 있는 것들이다. 다른 시 ‘저녁눈’에서도 ‘늦은 저녁때 오는 눈발은 변두리 빈터만 다니며 붐비다’고 했다. 자신은 끝까지 길거리 떠돌이 인생이라는, 돌아보니 문득 자신의 인생이 그 동전을 닮았다는 뜻일 게다. 그래서 동전을 윤회와 같은 반열에 올려놓는다. /김은옥 시인
무병장수, 인간의 오랜 염원이었지만 평균수명이 50세를 넘은 건 불과 100여 년 전이다. 장수국가라는 일본도 19세기 초 평균수명은 45세였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선시대 왕들의 수명조차 46세 안팎 이었다. 이런 평균수명이 언제부터인가 환 갑 잔치조차 슬그머니 사라질 정도로 늘어났다. 이젠 칠순도 가족끼리 조촐하게 치르고 그 마저도 생략하는 집이 많다. 평균수명이 81세로 늘어난 탓이다. 따라서 지금 60대에게 노익장이란 수식어를 붙이면 어색하다 못해 창피하기 까지 하다. 그러다보니 신체연령이란 개념도 낯설지 않다. 몸 기능과 건강의 척도를 재는 ‘신체나이 1분 진단법’ 같은 게 널렸다. 최근엔 외모 중시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내면에 무엇을 축적했는지, 나 아닌 남을 어떻게 대하는지 같은 매너, 태도, 지성미에서 매력을 찾고 있는 게 대세라고 한다. 변한 세상을 반영하듯 얼마 전 미국 미네소타의학협회는 다음과 같은 기준으로 노인을 정의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스스로 늙었다고 느낀다. 배울 만큼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 나이에 그런 일을 왜 하느냐고 말하곤 한다. 내일을 기약 못 한다고 느낀다. 젊은이들 활동에 관심 없다. 듣는 것보다 말하는 게
중세 유럽의 연극 무대에서는 현대인들이 보았으면 매우 기이하게 여겼을 상황들이 전개되곤 했다. 쓰인 글들을 고스란히 전달하기 위해 이미 지나갔던 장면이 반복해 등장하곤 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분량의 대사를 마친 배우들이 퇴장을 하지 않고 그대로 무대에 머물기도 했었다. 극의 전개와 장면 전환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흐르는 무대에 익숙해진 현대인으로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겠지만, 중세인들은 이를 전혀 어색하게 여기지 않았다. 무대란 대사를 전달하는 역할에 충실하면 그뿐이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와서 그러한 인식은 점차 바뀌기 시작한다. 르네상스 인문주의 학자였던 체사레 스깔리제르(1484~1558)는 당시의 연극무대에 대하여 ‘등장인물이 무대에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등장인물을 아예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는 것은 우스꽝스러운 일이다’라고 논평했다. 이제부터 무대는 대사를 전달하는 기능을 넘어서서, 극의 시작과 끝, 무대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의 전체가 조화롭고 종합적인 인상을 전달해야했다. 이러한 현상은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듣는 것’ 못지않게 ‘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
완두콩을 깐다. 작년 수확의 절반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 발아가 더디더니 생육 또한 수월치가 않아 중간에 물을 주고 비료도 주었지만 부실하다. 완두콩 줄기에서 먹을 만한 것을 골라 껍질을 벗긴다. 오소소 쏟아지는 콩이 반갑다. 오랜 가뭄을 견디고 제 방안에 푸릇한 알들을 빼곡하게 들어앉힌 콩이 대견하기도 하고 예쁘기도 하다. 비실비실해서 콩 맛이나 볼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실한 놈은 제법 통통하다. 흰 쌀에 넉넉히 콩을 넣고 밥을 지으면 푸릇하고 달착지근한 맛이 별 반찬이 없이도 밥 한 그릇 뚝딱 비우게 한다. 이것이 제철음식의 맛이고 완두콩의 매력이기도 하다. 완두콩을 처음 먹었던 기억이 중학교 가정실습시간이었다. 학생들이 여섯 명씩 조를 짜서 재료를 준비해 카레라이스를 만들었다. 카레라는 음식도 생소했다. 각자 준비한 재료를 다듬고 잘라서 볶은 후 카레를 넣고 끓였는데 우리 조는 친구가 칼질을 하다가 손을 베기도 하면서 우여곡절 끝에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 카레라이스를 완성했다. 익숙하지 않는 음식이라 망설였다. 다른 친구의 먹은 모습을 힐끗힐끗 보면서 맛을 보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흰 쌀밥에 듬성듬성 섞인 완두콩이며 적당히 익은 야채를 감싼 누런 카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