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낙청의 깨우침 2022년 대선 이후 “오마이 TV”에 출연한 백낙청 선생의 발언이 주목되었다. 패인 분석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였다. “이재명이 촛불시민들과의 결합을 좀 더 일찍 더 강력히 했었다면....” 촛불시민과의 결합은 애초 민주당의 선거전략이 아니었다. 이른바 강성기조가 부각될 경우 중간층 포괄이 어렵다고 본 때문이었고 이는 선거과정에서 이재명의 타고난 전투력을 약화시키거나 거세하는 쪽으로 작동하기도 했다. 개혁 기조가 후퇴해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의 거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담론은 끝내 제대로 나오지 못했고 2022년 대선의 정치는 왜소화되어버린 채 개별적 이해관계에 호소하는 ‘소확행’으로 마무리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백낙청은 토로했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바였다. 2021년 11월 6일, <개혁과전환 촛불행동연대>는 이재명 후보를 초청, 생중계 공개대담을 한 바 있었다. 대선후보로서는 공식 행보 제1차 일정이 된 셈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의 과정은 그리 쉽지 않았다. 촛불과 만나는 일정에 대한 민주당 선대위 내부 반대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이재명 자신의 적극적인 선택이 주효해 촛불시민들과의
『희망의 원리』와 미래 『희망의 원리』를 쓴 에른스트 블로흐는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과거에만 머물러 있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억압(repression)’에 대한 정신분석에는 역사적 이해가 빠져 있는 것도 아울러 짚는다. 융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역사의식의 부재를 비판한다. 물론 과거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작업에 프로이트가 유효하고 시간에 묶이지 않는 영혼의 깊이로 들어가는데에는 융이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에른스트 블로흐는 무얼 파고 들었던 걸까? 한마디로 그건 “미래를 향한 의식”이다. 인간은 거기에서 희망의 근거지를 발견하는 힘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블로흐는 “우리는 기다리는 법도 배우게 된다”며 “그런데 어린 소년은 상자에 들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열어도 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그 상자를 어떻게든 뜯어 열고야 만다.”고 말한다. 기다림이 가리키는 시간이 채 오기도 전에 이미 주어진 것으로 여긴 권리 행사다. 이른바 “아직 오지는 않았으나 의식(Not-Yet-Consciousness)”이다. 현재에 만족할 수 없는 인간은 뭔가 찾으려 헤매기도 하는 강한 충동을 가진 존재다. 우리의 의식에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으나 “이미 이루어
온전한 적폐청산의 실패, 그 원인은? 2016년 촛불혁명으로 등장할 수 있게 된 문재인 정부 5년, ‘적폐청산’이라는 말과 작업은 쉽지 않았다. 물론 이에 대한 저항과 피로도 운운하면서 그 과정을 파산시키고자 했던 특권세력의 기만책이 작동한 측면도 적지 않다. 그러나 본질적으로는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이 낡은 세력과 구조를 어떻게든 청산하겠다는 정치적 의지가 박약했던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이었다. 윤석열의 정치적 성장이 그 모든 과정의 총체적 결과라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초기에 적폐를 진압하고 그 다음의 역사를 위한 교량 설계와 건설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난데없이 “협치 운운”으로 때를 놓치고 전략적 혼선을 빚었으며 말만 요란한 채 “적폐청산 피로도 논리”가 득세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러는 사이에 적폐특권 세력의 요새화는 더욱 굳건해졌고 이들의 정치적 결속은 더욱 강해지고 말았다. 어디 그뿐인가? 어느새 슬그머니 “촛불혁명”이라는 말은 사라지기 시작했고 “촛불정부”라는 호칭도 스스로 철회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은 상황으로 이어졌다. 진보적 개혁의 역동성은 좌초했고 이를 주장하는 세력은 “주변부화”되는 국면이 펼쳐졌다. 촛불혁명의 시민세력은 이로 인해
프랑스혁명과 나폴레옹 전쟁 1805년 프랑스의 나폴레옹은 황제로 즉위한다. 유럽정복 전쟁의 연속적인 승리는 그를 위대한 영웅으로 만들고 있었다. 이 전쟁에는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의 확산을 위한 전쟁의 명분 또한 작동했다. 일종의 “해방전쟁”으로 인식되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독일의 전신인 프러시아는 나폴레옹의 영향으로 시민들의 정치기본권인 권리조항과 함께 봉건적 의무의 해체, 그리고 국가공직이 능력있는 시민들에게 개방되는 변화가 일어났다. 유럽의 구질서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은 위협받게 되었고 이들은 결속했으나 패배의 연속이었다. 프랑스에 의한 독일의 패배는 따라서 지배계급의 패배였지 독일 민중의 패배는 아니었던 것이다. 게다가 프랑스 군대는 프랑스 혁명 이후 그 위세가 달라진 민중으로 구성된 군대였으니 전쟁은 영토 전쟁을 넘어 사상의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했다.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 군대는 시민 혁명군의 국제화를 이뤄내고 있었던 셈이다. 루카치가 그의 『역사소설』에서 이 시기를 “대중이 역사를 집단적으로 체험한 시기”라고 한 것은 그런 의미에서 옳다. 역사소설의 대중적 수용이 가능해진 조건이 만들어진 것
- 정치와 법의 기만 “정치인들은 어떤 존재인가? 표는 가난한 이들에게서 받고 돈은 부자들에게 받는다. 그러고는 둘 다 보호하겠다고 말하지만 정작은 누구 편인지 분명하다.” 미국의 진보적 정치학자 마이클 패런티(Micahel Parenti)의 경고다. 그가 쓴 『소수를 위한 민주주의(Democracy for the Few)』에서 한 말이다. 미국 정치가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으나 실상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기만(deceit)과 부패(corruption) 그리고 약탈(plunder)’이 판을 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접했던 20년 전, 이 주장은 정치에 대한 과도한 비판과 비관이 담겨진 것이 아닌가 했다. 하지만 자본이 지배하는 정치의 모순을 지속적으로 확인하게 되면서 민주주의라는 옷을 입고 부자들을 위한 국가 시스템이 시민의 정치기본권을 법과 제도로 억압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법 앞에서의 평등”은 근대 민주주의의 혁명적 성과이나 현실은 ‘큰 범죄에 형벌이 아예 없거나 또는 작든지, 그리고 작은 범죄에 큰 형벌’이 내려지는 것을 경험하게 한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은 멀쩡하면서도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출석해서 감옥에 갇히더라도
페르가몬 신전의 부조 독일출신 작가 패터 바이스(Peter Weiss/1916~1982)의 소설 『저항의 미학』은 1937년부터 1945년 반(反)파시즘 저항운동을 그려낸 작품이다. 시기적으로는 작가의 20대를 옮긴 셈이기도 한 이 소설의 첫 대목은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의 부조(浮彫)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이 박물관은 기원전 고대 그리스 제국의 한 국가인 페르가몬에 있던 신전(神殿)이 흙속의 파편으로 발굴되면서 그걸 다시 조합해 아예 독일로 옮겨 만들어진 전시공간이다. 고대 도시의 정신세계를 새겨놓은 이 부조 작품은 제우스가 이끄는 신들과 거인족 사이의 전투를 담아낸 신화를 펼쳐 놓았다. 패터 바이스가 소설의 첫 장에 기록한 문단을 압축해 보자면 이렇다. “사방을 에워싼 석벽에서 몸뚱이들이 솟구쳐 올랐다. 그것은 언제나 싸우는 몸짓이다. 피하고 쨉싸게 몸을 빼고, 공격하고, 몸을 막고, 몸을 쭉 뻗어 일으키고, 잔뜩 웅크리고. 비록 여기저기 지워졌지만, 불끈 버티고 있는 왼발, 휙 젖힌 등짝, 윤곽만 남은 장딴지 하나로 그것들은 하나의 공동의 움직임으로 맞물리며 어우러졌다. 하나의 거대한 투쟁이었다.” 신화는 제우스의 편에 섰지만 소설의 주인
- 《지금 우리 학교는》 그리고 “세월호” 불평등은 빈부의 불평등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불평등이 그 뿌리다. 이걸 직시할 때 자유와 평등의 세상이 온다. 자유는 평등의 원리에서만 자라나는 나무이기 때문이다. 권력의 불평등이 감추어진 곳에서 자유는 부당한 현실에 저항할 수 있는 권리조차 되지 못한다. 남아 있는 도피처는 무력하게 고립된 개인이다. 권력이 가장 바라는 존재는 연대의 능력과 희망을 잃어버린 인간들이다. “구하러 왔네.” “우리부터는 아니야. 우린 그냥 학생들이잖아.” 좀비의 공격으로 교실에 숨어있던 아이들은 구조 헬리콥터가 상공을 날고 있는 것을 본다. 넷플릭스에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지금 우리 학교는》의 한 장면이다. 한국인들은 이 대목에서 300여 명의 아이들이 바닷속에 잠긴 “세월호”를 그대로 떠올리게 된다. 해경이 달려가 먼저 구한 것은 선원들이었다. 가라앉는 배의 창문을 절박하게 두드리며 살려달라고 하는 아이들은 현장 생중계 방송을 보고 있던 국민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죽어갔다. 그건 국가권력의 노골적인 방치에 의한 “살해행위”였다. 규모가 이 정도면 “학살”이라고 해도 전혀 과하지 않고 충격도 아니다. 광주 민중봉기에서 학
임헌영과 갈리아의 수탉들 “제 인생의 스승들은 결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한 시대의 황혼에야 날개를 펼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어둠을 뚫고 새로운 시대를 일깨워주는 새벽의 전령사인 갈리아의 수탉들이었습니다.”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한길사/2021)>의 머리말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이 책은 문학평론가로 활동해온 임헌영과 유성호 교수와의 대담집으로 연수(年數) 팔십 고개를 넘어서는 그의 전투적이자 혁명적인 삶의 전기(傳記)다. 제목 그대로 문학과 역사가 서로 엉키면서 직조(織造)해온 세월에 담긴 사연과 인연들은 ‘문학평론가’라는 직업군 분류로만 설명할 수 없는 실천적 지식인 “임헌영”의 치열한 인생궤적을 보여준다, 말 그대로 ‘갈리아의 수탉’들과 함께 해온, 아니 그 자신이 바로 그 ‘갈리아의 수탉’이 된 현실의 한 복판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그리고 우리는 임헌형이 이 시대 또 하나의 스승이 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미네르바는 그리스 신화 아테나가 로마의 풍토와 만나 새롭게 태어난 지혜의 여신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바로 그 미네르바와 함께 다니는 이른바 신조(神鳥)이며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숲속을 날아 자신의 시간을 시작하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메두사의 뗏목(The Raft of the Medusa)>이라는 제목의 그림은 난파선 생존자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루브르 박물관에 걸린 데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의 1819년 작품이다. 이 그림이 바다 위에 버려진 열 다섯명의 참혹한 생존 실화(實話)를 담았다는 걸 알면 더욱 충격적으로 작품이 그려낸 세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1816년 7월, 400여명이 승선한 ‘메두사’ 호는 아프리카 북서쪽 세네갈 해안을 돌다가 암초에 부딪혀 파선(破船)한다. 구명정이 부족한 상태에서 승선자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이들이 버려지고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뗏목에는 그렇게 유기된 이들 147명이 타고 2주일을 정처없이 떠돌게 된다. 그러다 근방을 지나던 선박 ‘아거스(Argus)’에 마침내 구조된 인원이 단 15명이었다. 프랑스 혁명(1789년) 이후 루이 18세의 왕정복고로 반동의 시기를 거치고 있던 당시, 이 사건은 프랑스 사회 전체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먼저 빠져나온 자들은 대부분 귀족과 부자들이었고 버려지고 죽어간 이들은 하급 선원, 노동자들이었기 때문이다. 프랑스 혁명 이후 변화되었다고 여긴
- 난데없는 ‘멸공놀이’를 한 자들 신세계의 정용진, 검찰총장 출신 야권 후보 윤석열, 정치인 나경원 그리고 여기에 판사와 감사원장을 지낸 최재형까지 가세해서 최근 SNS에서 차례로 난데없는 “멸공(滅共)” 놀이를 해 대중의 흥밋거리용 주목을 받았다. 사안이 대단해서라기보다는 이들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가 부여해준 다소 희극적인 기회였을 뿐이다. 여기에 등장한 것이 멸치, 콩에다가 ‘멸공’과 ‘자유’라는 단어였다. 보통 시민들이 이랬다면 당연히 “뭐야, 애들 장난해? 돌았나?”할 법한 일이었다. 이런 시시껍적한 것까지 기사화하는 언론 또한 경멸을 당했을 것이다. 3류 황색신문이 되는 꼴이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이들 네 사람은 아직도 빨갱이 잡기에 광분했던 매카시즘의 동굴 속에서 살고 있는 걸 알게 된다. “이념적 크레마뇽인” 상태다. 이게 이 나라 특권동맹세력의 머리를 관통하고 있는 정신세계의 단면이다. 시대의 변화와 미래 궤도에 대한 이해가 철저하게 망가져 있다. 뇌가 총을 맞았다. 대단한 사회적 메시지인양 자신들의 SNS 놀이를 장면 연출용 미장센(mise en scene)처럼 도구까지 등장시켜 암시적으로 유포하는 듯 했다. 그러나 여기서 확실해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