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이 내렸다. 감정은 나이 들지 않는다고 하던가. 첫눈......이라는 단어만으로도 눈사람 되도록 걸었던 스무 살로 돌아간다. 첫눈 오면 내 어린 시절부터 청춘시절까지, 라디오와 거리의 음반가게에서 종일 틀어대던 노래, 프랑스 샹송 가수 아다모(Salvatore Adamo)의 눈이 내리네(Tombe la neige)가 환청처럼 들린다. 고등학교 불어 시간에 처음 들었던 샹송도 아다모의 그 노래였다. 팝송보다 샹송에 더 빠졌던 그때, 에펠탑 아래에 샹송을 들으며 앉아있는 꿈을 꾸곤 했다. 코르시카를 듣지 않았다면 지금도 프랑스 노래는 샹송으로만 알았을 것이다. 노래가 넘쳐나는 세상, 대개의 노래는 나뭇가지에 잠시 앉았다 뜨는 새처럼 귓가를 맴돌다 멀어진다. 그런데 심장으로 직진하는 노래가 있다. 페트루 구엘푸치(Petru Guelfucci)의 코르시카(Corsica)가 그랬다. 지중해에 떠있는 프랑스령 섬, 코르시카. 나폴레옹과 콜럼버스가 태어난 곳이며 스페인 카탈루냐처럼 분리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 지엽적인 곳의 지엽적인 역사로 알고 관심을 두지 않았다. 성스럽고 웅장하면서도 비애 서린 페트루 구엘푸치의 목소리를 듣고서 노래 제목이면서
지금 내 손에 들려 잠 못 들게 하는 책은 ‘세 여자’다. 작가 조선희는 잊혀진 여성독립투사 허정숙, 고명자, 주세죽 세 여자의 일대기를 소설 형식으로 되살려 놓았다. 2017년 나온 책을 읽은 이들은 ‘3년 전 화제가 됐을 때 안 읽고 왜 이제야?’ 하고 물을 수 있겠다. 그에 대한 답이 오늘 글의 주제다. 작가에게 미안하지만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녀의 전작들을 제목만 보고 내 스타일이 아니라 고 지레짐작, 독서목록에서 제외시켰었다. 또 그 기억으로 ‘세 여자’도 읽지 않았다. 그런데 내 독서모임 다음 책이 ‘세 여자’로 선정돼 내 의지 없이 잡게 된 것이다. 소설은 나를 단박 100년 전, 역사의 격변 속에 떨구었고 세 여자의 파란만장한 운명의 회오리에 휘몰리게 했고 이틀 밤을 꼬박 새우게 만들었다. 근거 부실한 순간 감정의 선입견을 반성한다. 그 같은 선입견으로 놓친 음악이 얼마나 많았을까. 뒤늦게 듣기 시작한 그리스 출신 미국 작곡가 야니(본명 야니스 흐리소말리스 Yannis Hrysomallis)와의 만남도 그랬다. 음악광 친구와 대화하다 ‘왜 야니 음악에 관심이 없는가’라는 질문을 들었다. ‘전자음악 쓰는 뉴에이지 음악가잖아. 몇 곡 들어봤는데 가
‘무조건 하얀색으로 덮어. 끝’ 인생 첫 집을 장만해 들떠있는 친구의 인테리어 조언 요구에 대한 나의 답이다. "병실이냐? 하얀색으로 도배하게? 요즘 병실도 '꽃가라‘로 예쁘게 하더만!" 내 말을 질투(?)로 받는 친구에게 진의를 전하기 위해 오래전 경험담을 풀었다. 10년 전, 뉴질랜드 남섬 최대 도시인 크라이스트처치에서 2주간 현지살이를 한 적이 있다. 열다섯 평 정도 되는 작은 연립주택은 렌트 전용이라 소파, 침대, 옷장, 오븐이 다였다. 도착 첫날, 저녁을 해먹기 위해 세컨핸드 샵(우리로 치면 중고가게)에서 식기를 사오면서 생경하고 불안한 기분에 휩싸였다. ‘2주간이지만 그래도 먹고 살 집인데 뭔가 더 사고 들여야 하지 않나’ 같은 강박적 생각들이 올라온 것이다. 2주가 지난 후의 깨달음은 내 반평생에 내려친 불가의 죽비였다. ‘아무것도 없어도 아무렇지 않구나!’ 내 아파트가 떠올랐다. 방 4개는 물론, 현관부터 늘어선 생활용품, 장식품, 언제 쓸지 몰라 일단 쟁여놓은 물건들...... 모두 필수품이라고 생각해 수 차례의 이사 동안 끌고 다녔던 것이 다 무엇이었나. 매일이 산만하고 인생이 복잡했던 게 혹 그 적재물들 때문 아니었을까. 뉴질랜드 집의 벽
몰도바에서 6년 유학했다는 아티스트를 만났다. ‘한 남자’ 때문에 죽기 전 가고 싶은 여행지 목록에 올라있는 나라, 몰도바.(‘한 남자’가 궁금하실 당신. 뒤에 풀 예정이니 일단 몰도바 이야기로 직진 부탁한다.) 내 주변에 몰디브를 다녀왔다는 사람은 차고 넘치지만 몰도바 여행자는 없었다. 꿈의 여행지 몰도바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내게 아티스트는 찬물을 퍼붓는다. ‘볼 거 별로 없어요. 갈 데도 특별히 없구요.’ 그의 말은 내게 ‘ 만난 사람이 별로 없어요. 특별했던 사람도 없구요’로 번역돼 들렸다. 번역기는 서른 개 넘는 나라를 배낭여행하며 떠돈 내 경험이다. 올해 초,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작업실을 만들자 ‘심심하던 차에 건수 생겼다’며 많은 지인들이 놀러 왔다. 환대의 마음으로 헤이리의 ‘나의 최애 공간’을 데려가 구경시켰다. 들꽃 장식으로 디저트를 내주는 피사로의 시간, 융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서양화가의 작업실 소금 항아리, 집시처럼 살고 싶은 욕망을 불 지르는 스페인 맥주집 츄로바 등. 헤이리 일주 후 지인들은 ‘헤이리가 이런 곳인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 말에 번역기를 돌린다. ‘예술마을이라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다른 유원지와 비슷하더라. 실망만
‘한옥 마당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오실래요?’ 지난 주말, 피아니스트 지인으로부터 하우스 콘서트 초대장을 받았다. 비로소 코앞에 다가온 ‘위드 코로나’가 실감되었다. ‘좁은 공간에서 다닥다닥 붙어 앉아 관람하는 것이 특징’인 하우스 콘서트라 엄중한 코로나 시기에 숨 죽을 수밖에 없었다. 1년 넘게 갈 수 없었던 하우스 콘서트 소식에 기대와 설렘이 교차했다. 처음 하우스 콘서트를 알고, 찾아다니던 때도 같은 감정이었다. 20여 년 전, 유럽 배낭여행 중 ‘하우스 콘서트’라는 말을 처음 들었다. 음악회라 하면 공연장은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을, 무대는 클래식 연주를 떠올렸던 내게 개인 집 정원이나 동네 카페, 성당 등 작은 공간에서 소수의 사람이 모여 가볍게 여는 하우스 콘서트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월드뮤직 무대도 자주 열렸다. 이탈리아 지방 바닷가 마을 오시모에서 만난 하우스 콘서트장은 개인집의 마룻바닥 거실이었다. 대여섯 평 됐을까. 스무 명 가까운 관람객은 옆 사람과 붙어 앉을 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관람석 바로 앞에 선 연주자의 숨소리와 땀냄새가 느껴졌다. 악기 소리가 마룻바닥을 타고 온몸에 전해져 감전되는 경험을 하면서 ‘최고의 무대는 대형공연장 로얄
요즘 사는 재미 중의 하나가 대선 토론회다. 그런데 지지하는 당과 상관없이 여당보다 야당 방송을 더 재미있어하는 나를 본다. 홍준표 씨와 하태경 씨 때문이다. 두 사람의 정치철학과 정책에 동의하는 것도 아니고 그들이 연예인 같은 매력이 있어서도 아닌데 왜일까. 모범생 같은 말을 하는 다른 후보와 대별되는 튀는 말, 센 말 때문이다. 심리학의 행동경제학의 ‘절정- 결말이론’이 떠오른다. 절정과 결말을 주로 기억하는 인간 심리. 원시시대부터 인간은 맹수 등 가혹한 자연환경에서 생존하기 위해 가장 화급한 문제, 당면한 문제 처리부터 해야 했다. 우리 인간은 그렇게 절정과 결말을 각인하면서 살아남은 조상의 후예라는 것이다. 홍준표 씨와 하태경 씨 두 사람 다 토론 내내 튀는 말, 센 말을 하다가 끝으로 가면서 순화된 표정과 말을 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두 사람의 성정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캠프 내에 혹은 조력자 중에 그 같은 행동경제학 이론을 조언해 주는 이가 있는가도 혼자 생각해봤다. 음악도 나를 사로잡은 곡들은 처음 들었을 때 어떤 식으로든 ‘튀기’ 때문이었다. 특히 월드뮤직은 비영어권이 대부분이라 가사를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음률이 튀거나 가수가 튀
영화 평론가 정성일 씨의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 외계인이 실제 있어 내게 지구를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것 하나만 말하라 한다면 음악을 소개 하겠다” 청중 한 사람이 왜 영화가 아니고 음악인가 물었다. 그의 답 “ 영화는 너무 말이 많아요” 그런데 음악도 소음으로 느껴질 때가 있다. 세상과 인간에 치여 혼자 있고 싶은데 무심코 튼 음악마저 신경을 긁는다. 음악을 끄면 정적이 고통을 새로 부각시킨다. 그럴 때 카를로스 나카이를 찾는다. 아! 그의 플루트 소리. 내 사는 하늘 아래 다른 세상이 있고 문명의 발자국이 닿지 않은 초원이 있어, 새벽이슬 머금은 나뭇가지 하나 뚝 꺾어 피리를 만들어 분다면 그런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신비로운 주술가가 만든 신기한 진통제가 몸에 듣는 듯 편해진다. 카를로스 나카이의 이름에 붙는 ‘북미 인디언 나바호족 전통 플루트 연주자’라는 소개. 그 한 줄 소개는 아메리카 땅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와 원래 그 땅의 주인인 북미 원주민의 참혹했던 고통을 품고 있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땅에 발을 디디며 퍼뜨린 전염병과 원주민의 땅을 빼앗는 과정에서 자행한 대량 학살은 북남미 원주민 종족의 씨를 말렸다. 미국은 얼마 안 남은 원주민들을
명상으로 탈모를 치료한 남자가 있다. 믿기지 않는 이야기는 더 된다. 늙어가던 피부가 아이처럼 희고 뽀얗게 변하고 배도 들어갔다.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다는 이야기다. 내 주변에서 일어난 ‘세상에 이런 일이’의 주인공은 전직 언론사 기자였던 60대 중반의 남성. 매일 새벽 5시에 기상, 한 시간 넘는 명상을 십 년 넘게 하면서 생긴 변화란다. 남편의 변화를 보고 신기해하다 명상을 따라 하기 시작한 부인이 고민에 빠졌다. 남편처럼 ‘긴 침묵 가운데 오래 앉아있는 짓을 좀 쑤셔서 못해먹겠다’는 이야기다. 그녀에게 음악명상을 권했다. 명상은 좌선 상태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다. 걷기명상, 차명상, 춤명상도 있다. 음악명상은 10여 년 전의 놀라운 체험 후 지금까지 수행하고 있는 내 식 명상법이다. 장소는 서울 구로에 소재한 불교대학이었는데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2박 3일 음악 명상캠프를 열었었다. 수업은 이론과 체험으로 진행되었는데 첫날부터 ‘한 소식 얻는’ 경험을 했다. 그저 편안히 앉아서 눈을 감고 강사가 틀어주는 음악을 듣는 게 다인 음악명상. 잡념이 올라오면 흘러가게 놔두라는 말까지 들으니 하나도 어려울 게 없었다. 처음 듣는 음악들은 어찌나 하나같이 편안하면
옛날 아프리카의 한 왕국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습니다. 아이를 받던 산파는 아이를 떨어뜨릴 뻔합니다. 흑인의 나라에서 태어난 하얀 피부의 아이. 백인보다 더 희디흰 피부였습니다. 부모는 아이를 숨겨서 키우기로 합니다. 왕국에서 ‘하얀 피부 인간’은 저주였습니다.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하얀 피부 인간의 신체, 혹 신체 일부를 지니면 돈과 행운이 따른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전문 사냥꾼들이 돌아다니며 하얀 피부 인간을 납치해 주술사에게 팔아넘겼습니다. 주술사는 주술의식 후 시체를 잘라 팔았습니다.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숨겨 키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저주는 계속됩니다. 아이는 피부뿐 아니라 털까지 하얀색이었는데 눈동자마저 하얗게 변하더니 시력이 나빠졌습니다. 글을 읽기 힘들게 되자 여러 악기들을 갖고 놀게 된 아이. 어느 날 아이는 부모에게 가수가 되고 싶다고 말합니다. 눈물 마를 날 없었던 부모는 아이의 손에서 모든 악기를 빼앗습니다. 왕국에서 가수는 천민이나 하는 짓이었습니다. 설사 가수가 되더라도 왕국 밖으로 나간 알비노를 기다리는 것은 납치에 의한 불구, 혹은 죽음뿐일 테니까. 숨어 자라던 아이, 친구도 없던 아이는 악기
5년 전인가, SNS를 통해 퍼진 기괴한 사진이 있었다. 사우디아라비아 한 여대 의과대학 졸업식 사진으로 스무 명 남짓의 여성들이 눈만 내놓은 검은 부르카 위에 검은 졸업가운을 단체로 뒤집어쓰고 서있었다. 스무 명의 복제인간 같다고나 할까. 사진을 함께 보던 친구가 ‘설마 이렇게까지 하겠는가, 조작 사진일 것이다’라고 했고 나 역시 동감했다. 이슬람은 지구 상 18억 명이 믿는 보편 종교이고 불교, 기독교처럼 사랑과 자비를 내세운다. 신 앞에 누구나 평등하기에 여성 억압, 폭력은 교리에 반하는 것이며 몰상식한 행태들은 이슬람 문화가 아닌 지역별 오랜 관행이거나 어느 종교에나 있는 시대착오적 근본주의, 광신이 문제다......라는 게 내가 알고 있는 ‘오해를 걷어낸 이슬람 문화’였다. 미군 철수로 탈레반이 장악한 후 생지옥 된 아프가니스탄 실상에 전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전쟁도 아닌데 백주대낮, 탈레반의 총탄 앞에 스러져가는 민간인들의 모습은 비현실적이다. 내게 가장 충격을 준 것은 부르카 쓰지 않고 집 밖을 나왔다 바로 사살당한 여성의 사진이다.(사우디 아라비아 사진이 실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성들의 거리가 된 나라. 여자들은 모두 죽지 않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