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지난 12.27-31간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이례적으로 5일간 개최하였다. 2021년을 ‘엄혹한 난관속에 거창한 변화 서막을 열어 놓은 위대한 승리의 해’라고 평가하고, 2022년에는 8차 당대회에서 제시한 사회주의 강국건설과 자력갱생 정신을 토대로 ‘부강한 국가와 인민 복리 증진을 위해 싸워 나가자’는 결의를 보였다. 관심사였던 대남 및 대미관계에서는 ‘변화하는 정세와 상황에 대응하는 원칙적 문제와 일련의 전술적 방향 제시가 있었다’는 짧은 발표로 ‘이중기준과 대북적대시 정책 폐기’라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음을 보여주었다. 북한에게 있어 2022년은 결코 만만치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가 여전히 영향을 주는 가운데 남한 대선과 새 정부 출범 변수가 있고, 북한의 협상 주상대방인 미국은 미중간 전략경쟁하에서 북한문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잔뜩 기대하고 있는 중국의 지원도 제재 이전 1/10수준으로 악화된 경제난을 헤쳐 나가는데 역부족이다. 아울러 충성도가 높다고 하는 평양 주민들에게까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전 마지막을 회상시키듯 물고기를 선물하면서 불만감을 다독 거려야하는 상황이다. 지난해 남북관계 기상은 코로나19라는 먹구름이
최근 정부와 한적이 발표한 이산가족 실태조사 결과와 관련해서 이산가족 1세대분들이 고령화되어 물리적으로 상봉이 가능한 시기도 우리 국민의 기대수명 감안시 수년에 불과할 것이라는 안타까운 보도가 있었다. 이산가족 문제는 역대정부 최우선 해결과제였지만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다. 이는 북한이 이산가족 문제를 인도적 차원이 아니라 정치 이념적 차원에서 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산가족을 북한 정권이 싫어서 떠난 사람 즉, 정치적 반대자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이산가족’ 문제 해결을 위해서 우리처럼 최우선적으로 노력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는 북한의 부정적 태도만을 탓한 체 고령의 이산가족분들이 이산의 아픔을 안고 세상을 떠나시는 상황을 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정부는 그 해법을 서독정부가 활용했던 ‘프라이카우프(돈을 주고 자유를 산다) 방식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이산가족 상봉 경비 지원은 물론 이산가족 상봉 성사 조건으로 식량 지원 등의 시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북한은 답례 차원에서 응해주는 형식으로 소수 인원의 2박 3일간 상봉행사 만을 허용했을 뿐이다.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이 있었던 2018년에도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단 한차례만 이루어졌다. 서구 문물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전에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라는 동요가 1948년 남북한에 각기 다른 정부가 수립된 이후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 모두는 지난 70여 년이 넘는 세월 동안 1945년 해방과 동시에 우리에게 불쑥 나타난 분단을 없애고 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노력을 줄기차게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떠한가? 남북한 분단과 갈등 상황은 지속되고 강화되는 미중 갈등 속에서 대화보다는 새로운 무기개발 등 군비경쟁 모습을 보이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내년에 출범하는 새로운 정부에게도 부담이 되는 이러한 상황이 초래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의 통일 노력은 이승만 정부의 북진통일, 박정희 정부의 선 건설 후 통일,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과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 등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북진통일은 6.25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나온 주장이었지만 현실성이 없었다. 이후 정부들은 ‘전쟁 불원과 북한 도발에는 단호하게 대응하면서 교류협력을 통해 남북이 평화 공존하고 상호 번영하여 궁극적인 통일’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18년 들어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을 하
김정은 위원장이 집권한 지 10년이 흘렀다. 2008년 후계자로 내정되었고 2011년 12월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이후 북한군 최고사령관의 자리를 시작으로 노동당의 최고지위와 국방위원회를 대신하는 국무위원회 위원장의 직위를 차지하고 있다. 김정은 위원장은 백두혈통을 내세우면서 노동당을 중심으로 북한을 사회주의 강국으로 건설해 보고자 하는 방향에서 북한을 통치하고 있다. 2011년 11월 20대의 김정은 위원장 등장을 두고 국내외에서는 여러 가지 전망이 많았다. 젊은 혈기에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스위스 베른의 유학경험을 토대로 북한을 개방의 길로 움직이게 할 것이라는 기대가 양 극단에 존재하였다. 10년이 지난 지금 김정은 위원장이 통치하는 북한은 어떤 모습일까? 김정은 위원장 10년 통치 성적표는 정치는 우수, 군사는 매우 우수, 경제는 매우 부진이지 않을까 싶다. 정치영역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주체사상을 토대로 한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기본 사상으로 하면서 당대회 정기적 개최 등 당 중심의 북한 통치와 ‘백두산대학’ 학습을 통한 북한주민 정치사상 무장 강화를 도모하고 있다. 군사영역은 지난 2017년 ‘국가 핵무력 완성’ 선언에서 보듯이 김일성 선
북한은 지난 10월 10일 대대적인 열병식 대신에 ‘자위-2021’이라는 국방발전전람회를 개최하였다. 전람회에서는 국제사회가 우려해 왔던 각종 신형무기가 전시되었으며,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의 무기개발은 남한과 미국이 아닌 ‘전쟁’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취지의 기념연설을 하였다. 핵무기와 각종 미사일은 자위적 차원에서 개발하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이중적 기준이 문제임을 지적하면서 국제사회 특히 미국의 대북적대시 정책이 계속되는 한 무기개발은 계속할 것이라는 의지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실제로 북한은 한미일 안보수장이 회동하고 한미 6자회담 수석대표가 미국에서 종전선언과 북한을 대화테이블로 끌어내기 위한 방안을 협의하는 시기에 신포에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보란 듯이 발사하였다. 대화 논의는 진행되면서 실제 대화는 이루어지지 않은 기간은 북한에게 있어서는 신형무기 개발 등 군사력 강화를 하기에 적절한 기간이다. 남한 및 미국과 대화가 이루어지는 상황에서는 북한이 국제사회가 ‘도발’로 규정하는 군사력 개발을 하기가 어려운 처지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화 전 군사력 개발은 북한에게는 대화에서 상대방의 양보를 유도하기 위한 협상카드로 충분히 활용 가능
지금으로부터 14년 전인 2007년 10월 4일 평양에서는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 즉 ‘10·4 선언’을 남북한 정상이 공동으로 채택하고 전세계적으로 발표하였다.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 평화, 민족공동의 번영과 통일을 실현하는데 따른 제반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한 결과물로 요즈음 논란이 되고 있는 ‘종전선언’에 대한 합의내용도 포함되어 있다. 일부 조항에 대한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10·4 선언은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에 있는 한반도 평화번영과 통일로 가는 교과서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채택이후 우리 정부의 교체가 있었고 북한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10.4 선언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했다.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은 당초 8월에 개최될 예정이었으나, 당시 대동강이 범람하는 등 평양의 대홍수로 인해 10월로 연기되었다. 남북간 합의 이행을 위해서는 분야별 후속 실무회담을 통해 이행방안을 마련하는 게 일반적인데 10월에 정상회담이 개최되다 보니 후속협의 진행기간이 12월 대통령선거와 정부 교체기간과 겹치게 되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새로운 정부가 이전 정부에서 북한과 합의한 사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이 곧 다가온다. 올 해에는 코로나19로 인해 가족들 간의 대규모 모임을 하기는 어려워서 왁자지껄하게 정을 나누던 코로나 이전의 추석 풍경이 아쉽다. 다들 들떠있을 명절에 유독 쓸쓸한 우리들의 이웃이 있다. 21세기는 실시간으로 지구의 반대쪽 사람들과도 영상 통화가 가능한 정보통신의 시대이다. 이러한 시대에 일천만 이산가족들은 그리운 혈육의 생존도 알지 못하고 어렵사리 생존을 확인했지만 선물을 보내거나 정겨운 대화도 나눌 수 없는 안타까움 속에서 추석명절을 보내야만 하는 상황에 있다. 북한은 우리가 실향민이라고 하는 이산가족을 자신들의 체제에 반대해서 북한지역을 떠나간 적대적인 월남인이라고 하면서 인도주의적 접근보다는 정치적 접근 자세를 보여왔다. 56년 북한은 남한과의 경제적 우위 상황에서 월북인들의 재남가족을 이산가족이라고 하면서 만남을 주선해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1985년 이산가족 고향방문단 행사와 2000년 남북정상회담이후 남북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진행하면서 북한측은 이산가족 행사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북한은 이산가족들의 인간적 고통 해소보다는 남북 대화 협력 또는 국제사회와 관계개선차원에서 이산가족 상봉행사
성김 미 행정부 대북특별대표가 한미합동훈련 기간 중인 8월 21일~24일 한국을 방문하고 미국으로 돌아 갔다. 성김 대사는 미국 부시 정부부터 시작해서 오바마 정부, 트럼프 정부, 그리고 바이든 정부까지 소위 공화 민주당 정부 모두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아 북한문제에 대한 중책을 수행하고 있는 인물이다. 중학교 1학년까지 한국에서 생활하다가 미국으로 이민을 갔고 미국식 교육을 받았으나 한국어로 소통하고 한글문서를 독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알려져 있다. 성김대사의 사례를 보면서 한국계 미국인의 입지전적인 성공에 대한 감탄과 함께 미국은 북한문제를 다루는데 있어 공화와 민주로 정부가 바뀌더라도 그 연속성은 유지하고 있구나 하는 부러움을 갖게 된다. 보수와 진보 정부 교체로 대북정책 기조가 변화하고 전문성있는 인사도 과거 정부와의 차별화로 인해 등용되기 어려운 우리의 경우와 대비되어 씁쓸하기도 한다. 여하튼 성김은 이러한 대북정책에 대한 연속성과 전문성을 보여주는 한편 북한에게 있어서는 같은 한민족이라는 느낌과 함께 언어 장벽에 대한 부담을 완화해 줄 수 있는 매우 적합한 인물이다. 성김 대사는 이번 방한기간 중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었다. 우선 북한에 대한 적
북한은 지난 7·27 남북통신선 복원 합의에 이어 8.1 김여정 부부장 담화를 통해 한미합동군사연습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합동군사훈련 실시는 남북 간 신뢰회복의 걸음을 다시 떼기 바라는 남북정상 의지를 심히 훼손시키는 재미없는 전주곡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측에 희망이냐 절망이냐의 선택을 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우리 내부에서는 실시 여부에 대한 논쟁과 미국과의 공조문제 우려, 훈련 실시 후 북한 도발에 대한 우려 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1949년 미군 철수 이후 군사력을 통한 ‘남조선 혁명’을 위해 6·25 전쟁을 도발하였다. 미국 주도의 유엔군 즉각적인 참전으로 북한은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밀려 패퇴의 위기를 맞이 하였으나, 중공군의 참전과 지원으로 한반도 북부지역에 대한 점령상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북한은 주한미군의 존재가 자신들의 체제안전에 위협이 되고 남조선 혁명의 걸림돌이 된다는 인식하에 정전협정 체결 당시부터 일체의 외부 무력 철거를 주장해 왔다. 남북무대에서 북한은 '자주‘라는 명분으로 외세 배격을 내세우면서 주한미군과 한미합동군사훈련을 남북관계 진전의 본질적 요인으로 삼고 남북관계를 경색시키거나 속도 조절, 때로는 우리 측
북한은 어떻게 여름 나기를 하고 있을까? 북한에서는 우선 삼십 도가 훌쩍 넘는 기록적인 폭염에 대처하기 위해서 평양에 물 뿌림 차(살수차)가 등장하고 농촌지역은 농작물에 대한 물 주기에 총력 집중하고 있다. 흥미롭게도 북한 노동신문은 폭염을 나기 위한 보양 음식도 소개를 하고 있다. 가장 특징적인 음식으로 소개된 단고기 음식은 개고기 음식으로 김일성이 고깃국 중에서 가장 달고 맛있다 라고 해서 단고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우리의 경우에는 88 서울 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국제사회 부정적 인식을 감안해서 식당 영업 등 상행위에 일정한 제한을 두고 있다. 그리고 닭을 찹쌀과 통마늘 인삼 등과 함께 푹 삶은 삼계탕을 여름 보양 음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여름을 나기 위한 북한의 모습은 우리와 별반 다름이 없다. 분단 칠십여 년에 기간으로 인해 남북한이 이질화되었다고 하는 우려가 있다. 하지만 음식과 생활 풍토 등에 있어 남북한 간 유사성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남북한 이질화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자는 공직자 시절 북한 당국자와의 대화와 교류협력 과정에서 심각한 의사소통의 장애를 경험한 바가 없다. 장기간 분단으로 인해 문제 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