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시 분당구의 백현동(栢峴洞)은 조선시대 한성부 광주군 낙생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백현리라 하였다. 1973년 성남시 승격으로 백현동이 되었다. 백현동은 마을의 고개에 큰 잣나무가 있어 잣고개 또는 잿너머라고 하였는데, 이를 한자로 표기한 이름이다. 옛 지명으로는 웃말…
정조(正祖)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思悼世子)의 현륭원을 참배하고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사근현(沙斤峴)에 이르러 말에서 내려 잠시 쉴 때에 옆에서 모시던 신하에게 이르기를, "내가 본래 가슴이 막히는 병이 있어 궁궐을 나올 때에 꽤 고통스러웠었는데, 이제 다행히도 배알하는 예를 마치고 나니 사모하는…
성남시 중원구 여수동은 조선 초 1392년에 돌마면(乭馬面) 갓골(加次谷, 加遮谷) 율리(栗里)로 불리다가 1914년에 돌마면 여수리로 변경되었다. 이 마을은 물 맑은 여수천 동경(東鏡)내 양편에 방수림이 있었는데 맑고 고운 물과 어우러져 이를 여수울(麗水鬱)이라고 부른 데서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쉽게…
열미리는 상열미, 중열미, 하열미로 나뉘어 있었는데, 1914년에 열미리로 통합되었다. 옛 기록에는 연미리(燕尾里)라고 했는데, 이 마을에 있는 조선 세조 때 영의정을 지낸 충렬공(忠烈公) 구치관(具致寬)의 묫자리 형국이 제비 꼬리 같은 연미혈(燕尾穴)이기 때문에 연미리(燕尾里)라 부르던 것이 열미(…
광지원리는 광주에서 남한산성 동문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광지원 초등학교가 위치한 ‘안말’과 길 건너 바깥의 ‘바깥말’, 광지원교를 건너 섬처럼 떨어져 있는 ‘섬말’로 이루어져 있다. 광지원 마을은 한양에서 남한산성을 거쳐 여주로 가는 주요 교통로여서 숙박시설인 황교…
하산곡동은 경기도 광주군 동부읍 하산곡리에서 1989년 하남시가 승격될 때 하남시 하산곡동이 되었다. 산곡리는 상산곡과 하산곡으로 구분되는데, 이 일대에서 6.25사변 때 공산군에 의해 많은 민간인들이 희생되었다.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는 제목의 시는 모윤숙이 산곡마을에서 피난을 하던 중에…
수원 화성의 성곽과 강산은 정조 임금이 아버지 사도세자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담겼고, 성곽의 누대와 초목은 임금의 행차를 바라는 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정을 표현한다.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은 꽃이 핀 산과 버들이 늘어진 냇가의 뜻을 취한 것이다. 화성에서 용의 머리 부분에 자리 잡고 있고 그…
고려 500년 사직이 기울어 갈 때,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권력에 줄을 서고, 또 어떤 사람들은 끝까지 고려와 운명을 같이 하였다. 이런 현상은 세상이 어지럽고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는 시기에는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나타난다. 고려가 망할 무렵 평양조씨 가문에는 그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길을 간 형제가 있…
역사 속에서 기록적인 홍수는 여러 차례 있었다. 가장 널리 알려진 노아의 홍수와 같은 이야기가 우리나라 곳곳에 전설로 전해온다. 불이 나거나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흔적이라도 남지만 홍수가 나면 흔적도 없다. 이번 이야기는 전설이 아닌 현실적으로 벌어졌던 대홍수 이야기이다. 1925년 7월부터 9월…
남한산성을 주장성(晝長城) 혹은 일장산성(日長山城)이라고도 했는데, 해가 늦게 지기 때문에 붙여진 별칭이다. 남한산성에는 큰 사건을 예고한 이름들이 전해 온다. 수어장대가 있는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이라고 부르는데, 1779년에 산성에 들른 정조 임금이 "남한은 본래 이름이 일장산이었으나, 국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