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판교는 예로부터 도로교통과 문화의 중심지였다. 고려 말에는 높은 벼슬까지 지낸 조운흘이 인부들과 함께 노동을 하며 판교원을 중건했다. 조선 건국 후 한양성을 쌓는 데 동원된 전라도 사람이 병이 났는데, 효녀 도리장이 아버지를 판교에서 만나 간병해서 감동을 준 효행의 마을이기도 하다. 판교는 한…
성남의 금토동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는 콩과 인연이 깊은 마을이다. 고려 말의 선비인 둔촌 이집(李集) 선생이 이 고장에 낙향하여 검정콩을 재배해 지인들에게 나눠줬는데, 둔촌의 1년 후배인 목은(이색) 선생이 감사의 뜻을 담은 시를 보내왔다. “검은콩은 중원에 두루 생산되는데, 어이하여 둔촌에게…
‘돌마‘. 지금은 조금 낯설어진 이 지명이 광주군 시절에는 분당 지역의 대표지명이었다. 지금은 성남시 중원구 하대원, 갈현, 도촌, 여수동과 분당구 이매, 야탑, 서현, 율동, 분당동, 수내, 정자동 일대에 해당되는 지역이 돌마면으로 불렸다. 돌마의 범위는 시대별로 변화가 있었는데, 1914년에 일본이 우리…
희망대공원은 성남시가 탄생하면서 수정구 신흥2동에 처음으로 놀이동산과 관광용 전망대로 만들어진 공원이다. 처음 공원을 만들던 시기에 공원에 인접한 단대동의 성남서중학교와 수진동의 수진국민학교, 신흥동에 신탄국민학교, 희망대종합병원이 착공되고 제1공단 준공식과 1971년도 주요사업 종합기…
둔전동은 성남시 수정구에 속한 법정동이고, 행정동인 고등동에서 관할한다. 조선시대에는 광주군 대왕면 둔전말 또는 둔전촌이라 하였다. 둔전동 일대는 옛날에 군용 토지인 둔전이 있었다. 염제신(1304~1382)이 임금에게 아뢰기를, “먹는 것은 백성들의 하늘이요, 군사는 농군 사이에 감추어야 하니, 군…
성남시 중원구 금광동은 금광리(金光里)라는 자연마을의 이름을 살려서 동 이름으로 지은 것이다. 금광리는 고려가 망했을 때,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고 하면서 절개를 지킨 음촌 김약시(陰村 金若時, 1335~1406)가 은거하다가 별세한 곳인데, 후에 그 자손들이 마을을 이루게 되니 사람들이 광산 김씨들이…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사람이 살아생전 훌륭한 일을 해 후세에 이름을 남겨야 한다는 뜻의 속담이다. 이 말에는 사람은 개인의 이름 뿐 아니라 다양한 삶의 흔적을 남긴다는 의미도 있다. 사람이 남긴 흔적은 기록물처럼 오랜 세월 후에도 선명하게 그 당시를 설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