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국회 본청 2층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실에 취재진 100여명이 몰린 가운데 민주통합당 한명숙 대표가 들어섰다. 박 위원장은 한나라당의 최강자이고, 한 대표도 이틀 전 전당대회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선됐다. 한국 현대사에서 완전히 상반된 길을 걸어온 두 여성이 집권당과 제1 야당의 당수로 만난 것이다. 국회 교섭단체 요건을 갖춘 여야대표가 모두 여성인 것은 헌정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두 사람은 살아온 경로가 완전히 달랐다. 박 위원장은 1975년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저격범 문세광의 총격으로 숨지면서 23세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시작했고, 한 대표는 1970년대 부부가 감옥살이를 했다. 그러나 그 날 두 사람은 여성 대표로서의 동질감도 표현했다. 같은 여성으로서 같이 힘을 합해 여성들이 국민의 삶을 책임지고, 가장 후진적인 정치를 한 단계 도약시키자고 했다. 남여사상에 대한 역사적 전통은 고귀한 우리의 삶의 숨결이다. 그러나 과거의 것들을 대하는 바람직한 태도로서 전통은 미래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 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만 보더라도 남존여비사상이나 가부장제, 형식적인 유교적 관습이나 관례처럼 현대사회에서 용납하지 못하고 버려야 할…
미국 대통령은 새해가 되면 국정전반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꼭 언제 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으나 관례적으로 1월의 마지막 수요일에 행해진다. 미국 상원과 하원의 합동회의에서 발표되는 국정연설은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방안으로 ‘연두교서’로 불린다. 1790년 초대 대통령인 워싱턴부터 시작됐으니 그 역사도 만만치 않다. 국정연설은 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의회에서 직접 연설형식으로 발표하거나 원고를 작성해 의회에 보내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물론 이때에는 행정부의 가장 큰 임무이자 관심사인 예산편성안도 의회에 보내 새 해를 시작하는 살림살이를 마련한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세계적 이슈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관심이 집중된다. 세계경찰이자 지구촌 초강대국인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그 파장으로 인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은 역사의 고비마다 작용과 반작용으로 세계사의 흐름에 영향을 끼쳤다. 1918년 윌슨 대통령이 국정연설을 통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는 우리나라 3·1운동뿐 아니라 당시 식민지의 고통을 겪고 있던 아시아권 젊은이들의 봉기를 촉발했다. 자국 이기주의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당
물 주름이 잔잔해 흔들림이 없는 듯, 늘 그 자리를 지키는 여유로움이 좋아 나는 종종 강을 찾는다. 언제 봐도 늘 그랬던 것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고 유유히 흐르는 강. 강은 물을 안고 거부함이 없이 어떤 경우에도 쉬지 않고 낮은 데로 낮은 데로 낮춰 흐를 줄 알기에 그 강을 닮고 싶었다. 가까운 한강을 거슬러 북으로 북으로 파주 문산읍에 이르니 임진강. 더 이상 이어지지 않는 길, 물은 흐르되 더 이상 오를 수 없는 그 곳에 닿았다. 흐른다는 건 연결돼 있다는 것, 또는 소통이 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 흐름도 강물과 같아 때로는 꽁꽁 얼어 소통이 불가능한가 하면 어느 틈엔가 봄 눈 녹듯 녹아 여러 사람을 푸근하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물론 자기 뜻과는 상관없이 외부적인 원인으로 마음흐름이 단절돼 엉뚱한 결과를 낳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임진강은 아직도 그 아픔의 중앙에 남아 휴전선이 강의 허리를 지나고, 일대에는 판문점·임진각·자유의 다리를 아물지 않은 창상(創傷)처럼 껴안고 있었다. 북에서 남으로 물새들 벗 삼아 묵묵히 흐르는 임진강에 가로 놓인 다리. 한국전쟁 포로들이 자유를 찾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는 서울시교육감 선거에서 후보 사퇴 대가로 2억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 기소된 곽노혁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지난 19일 벌금 3천만원을 선고했다. 이날 곽 교육감은 풀려났다. 이 자리에는 같은 진보교육감인 김상곤 경기도교육감도 있었다. 김 교육감은 그의 트위터에 “곽 교육감이 나온 건 다행이지만 벌금 3천만원이라는 판결은 아쉬움이 많다”며 “내려진 판결은 존중하면서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다소 알쏭달쏭한 표현을 썼다. 교육현장으로 가보자. 새학기가 되면 각급학교에서 학교 회장과 학급 회장 선거가 치러진다. 직선제를 채택하고 있는 학교 회장선거에서는 지지표를 얻기 위해 아이스크림을 돌리고 피자를 선물하면서 선거운동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회장 욕심이 지나쳐 상대 후보의 출마를 무마하는 조건으로 30만원의 돈을 건네는 경우가 일어난다면 곽 교육감과 김 교육감은 이 현상을 어떻게 교육시킬 것인가. “대가성이 없다면 돈을 건네도 되고 받아도 된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그들의 발언을 보면 그렇다는 말이다. 교육계가 이렇게 시끄러운 적이 없었다. 교육감이 상급기관인 교육과학기술부와 사사건건 대립하고 교육감 선거과정에서 돈이 오간 사실이 드
원래 과외수업은 대개 방과 후에 개별적으로 수업을 받는 것이었다. 즉 교과 과정을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성적이 부진해 개별지도를 받아야만 하는 학생이나 또는 음악이나 미술, 운동 등 특기를 연마하려는 소수의 학생들을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의 과외수업은 이와 의미를 달리한다. 대학 진학을 위한 경쟁의 한 수단이 된 것이다. 대학에 진학하려는 고등학교 학생은 물론 중학교·초등학교로까지 확산된 지 오래다. 우리나라에는 오래 전부터 과외가 있었다. 마을 서당이 그것으로 지역 양반들의 자제들을 모아 학문을 가르쳤던 일종의 공동과외라고 할 수 있다. 종아리를 맞아가며 공부를 하는 학동들의 모습은 당시의 풍속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 일대일 과외인 이른바 ‘독선생’도 있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입학시험이 있던 시기에도 과외는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이처럼 과외가 성행해 사회문제로 대두되자 1980년 7월 30일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는 ‘7.30 교육개혁 조치’로 과외를 전면 금지시키기도 했다. 이때 과외를 하면서 학비를 벌던 가난한 대학생들도 큰 타격을 받게 됐다. 그러다가 1991년 7월 22일 초·중·고 재학생의 학기 중 학원 수강과 대학생의 과외 교습을…
여의도에 여성당수 시대가 활짝 열렸다. 아니 그동안 남성 중심으로 이어져온 대한민국 정치사에 획기적으로 기록될 여인천하시대가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다. 1924년 덴마크의 니나방이 세계에서 첫 여성장관에 발탁된 이후 1960년 스리랑카의 시라마모반나라나이케가 첫 여성총리에 선출되었는가 하면 1974년 아르헨티나의 이사벨페론이 세계 첫 여성대통령에 당선됐다. 1999년 스웨덴 여성장관 수(11대 9)가 남성 장관수 보다 많아졌고, 2007년 핀란드에서는 드디어 여성 국회의원 수가 남성의원 수를 앞질러 60%를 넘게 차지한데 이어 2011년 1월 브라질 첫 여성대통령이 탄생하는 등 세계적으로 10개국의 여성대통령, 12개국의 여성총리들이 국정을 운영하는 여성시대에 이어 대한민국 여의도 정치권에도 ‘여성당수’ 시대가 개막됐다. 집권당과 제1야당, 원내 진보정당의 수장을 모두 여성이 맡게 됨으로써 전체 299석의 국회의원이 여성 당대표의 진두지휘를 받게 되는 획기적인 변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는 혼탁한 정치 문화를 바꾸는 투명하고 깨끗한 정치풍토 속에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대화와 타협의 바른정치, 부패와 폭력을 몰아내고 감성과 원칙을 중시하는 올곧은 리더십, 투
기름진 음식을 많이 먹는 사람들이 심장병이 많이 걸린다는 것은 굳이 의사가 아니더라도 상식으로 돼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똑같이 기름진 음식을 먹어도 상대적으로 심장병 발생 비율이 낮은 국가들의 존재는 의료계의 주목의 대상이 되어 왔다. 그 결과 1970년대에 등푸른 생선을 많이 먹는 덴마크 사람들이 오메가3로 알려진 성분 때문에 콜레스테롤의 증가를 억제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면서 크게 각광을 받은 적이 있다. 다만 지금은 워낙 콜레스테롤을 낮추는 좋은 약들이 많이 있어 오메가3는 건강보조식품 정도의 의미를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리고 1979년대 일부 학자들이 적포도주가 심장병의 발병을 낮출지도 모른다는 통계를 발표했고, 1991년 미국 TV을 통해 상식을 깨고 술을 많이 마시는 프랑스인의 심장병 발생 비율이 오히려 낮은 비상식적인 결과에 대해 ‘프렌치 파라독스’라는 이름을 붙이면서 세계적으로 적포도주 붐이 일게 된다. 즉, 적포도주에 폴리페놀 성분이 심장병을 막아준다는 소식은 우리나라 애주가에게도 더 없이 좋은 소식이었다. 좋아하는 술을 마음껏 마시면서 심장병까지 예방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연초에 느닷없이 미국 코네티컷 대학의 심
2004년 미국에서 다큐멘터리 영화인 ‘수퍼 사이즈 미(Super Size Me)’가 개봉되자 미국 사회는 충격에 빠졌다. 독립영화 수준에 불과했지만 감독이자 주연이고 제작과 각본까지 맡은 ‘모건 스퍼록’은 영화를 넘어 미국 사회의 가장 영향력있는 인물로 부상했다. 영화는 주인공인 스퍼록이 30일 동안 매일 3끼니를 맥도날드의 수퍼 사이즈 세트메뉴만 먹으며 변해가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담았다. 영화를 찍은 2003년, 스퍼록의 나이는 32세로 키 188㎝, 몸무게 84.1㎏의 준수한 몸매를 자랑했다. 그러나 패스트 푸드만 30일 동안 섭취한 후 그의 몸무게는 95.2㎏으로 늘었고 신체나이는 23.2세에서 27세로 4년이나 늙어 버렸다. 무엇보다 비만은 그를 우울증으로 몰았고 성기능 장애, 간질환에도 노출시켰다. 이후 영화는 비만관련 여러 소송에서 증거자료로 활용됐으며 비만을 질병으로 인식시키는 계기를 만들었다. 영화가 개봉된 2004년 세계보건기구(WHO)는 비만을 인류의 건강을 위협하는 10대 요인 중 하나로 선포했다. 비만인 사람은 정상체중인 사람보다 ‘더 먼저, 더 자주, 더 심하게’ 많은 질병을 앓는다는게 의학계의 정설이다. 비만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과
데이트 중에 벌어지는 언어적·정서적·신체적인 강간·강제추행·성희롱·스토킹 등 모든 연령대에서 ‘데이트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 인터넷 카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즉석만남에서 연인관계로 발전했을 경우 치정(癡情)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 데이트 폭력이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고 수법이 점점 잔혹해져 2010년 살해된 여성이 74명, 살인미수 54명, 살해위협 128명으로 위험에 빠져 있다. 데이트 폭력은 사랑이 될 수 없기에 범죄로 인식하는 전환이 시급하다. 가해자 절대다수가 남자친구 혹은 남편의 신체적인 공격행위나 물리적인 강제력인 주먹, 발, 몽둥이 따위로 물건을 부숴 위력을 행사한다. 성관계, 임신, 낙태, 동거 등 사실을 주위에 인터넷에 올리겠다고 위협하기도 한다. 경찰청에 따르면 연인 또는 내연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이 2008년 381건, 2009년 425건, 2010년 446건, 검찰청 통계 강간범죄는 2010년 1만6천156건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여성인권단체 ‘한국 여성의 전화’ 성폭력 상담건수에서 데이트나 치정 폭력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7년 27.7%에서 올해 38.4%로 급증했다. 폭력성의 원인은 이중적 윤리 등 수
IMF시절 신용카드를 무분별하게 발행해 사용하다 혼쭐이 난적이 있다. 10여장이 넘는 카드로 돌려막기를 하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해 고생을 한 경험도 있다. 그 심상치 않은 조짐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신용카드사의 대출 증가세가 도를 넘어선 듯 하다. 금융당국의 과열경쟁 억제책에도 지난해 카드사와 할부금융사의 가계대출이 은행의 대출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이런 추세라면 이들 여신전문기관의 대출 잔액이 올해 상반기에 4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카드대출과 할부금융은 주로 신용등급이 낮은 저소득층이 이용한다. 금리는 은행 대출보다 훨씬 높다. 부실 위험이 그만큼 크다는 얘기다. 카드대출의 급증세를 가볍게 볼 수 없는 것은 전체 가계부채의 취약성 때문이다. 900조원이 넘는 가계부채가 우리 경제의 시한폭탄이 된지 오래다. 카드부채가 그 뇌관이 되지 않을까 심히 우려스럽다. 한국은행 등에 따르면 2011년 3분기 말 여신전문기관(신용카드사+할부금융사)의 가계대출 잔액은 38조2천억원을 기록했다. 2003년 ‘카드대란’ 때와 비슷한 규모다. 여신전문기관의 가계대출은 2010년 이후 두자릿 수의 높은 증가율을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