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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칼럼]이전투구(泥田鬪狗)

 

중국 명나라 말엽 홍자성의 저서 채근담(菜根譚)은 그 책 이름이 그러하듯이 무 뿌리를 씹는 맛과 같은 담담한 매력을 그 속에 간직하고 있어 언제 어디서 읽든 독자로 하여금 한 번 읽고 세 번 탄식하고,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와 맛을 발견하게 해주는 책이라 하겠다.

세속과 더불어 살되 비루함과 천박함에 물들지 않게 해주고, 고상하고 우아한 경지를 높이 지향하되, 속된 현실사회에서 벗어나 홀로 깨끗하고 우뚝한 체 하지 않으며, 온갖 명리를 위하여 날뛰는 욕망의 노예가 되는 것을 경계해 주는 심오한 진리와 고귀한 지혜를 담고 있는 처세 철학서가 바로 이 채근담이다.

이 채근담에 보면 “청렴결백 하면서도 너그럽고, 어질면서도 결단력이 있으며, 총명하면서도 지나치게 살피지 않고, 강직하면서도 바른 것에만 치우치지 않는다면 이것이 곳 아름다운 덕이다”라는 말이 나온다.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치지 않고 중용의 길을 가는 것이 쉽지 않겠다는 의미다.

요즘 세태를 보노라면 청렴결백한 반면 너그럽지 못한 사람이 많고, 성품이 어진 사람은 결단력이 없어 술에 술탄 듯 물에 물탄 듯 하는 사람이 많으며,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적대시하며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경향을 보인다. 정치권을 보아도 그렇고, 하다못해 소규모 집단에서조차 피아를 구별하지 못하는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자기 이익을 위하여 볼썽사납게 싸우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전투구’란 말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물음에 정도전이 8도의 사람들에 대한 특징을 네 글자로 평가한 사자평(四字評)에 나온 말이다. 여기에 따르면 경기도 사람들은 경중미인(鏡中美人), 곧 거울에 비친 미인과 같고, 충청도 사람들은 청풍명월(淸風明月), 곧 맑은 바람과 밝은 달빛 같은 품성을 지녔으며, 전라도 사람들은 풍전세류(風前細柳), 곧 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와 같다고 하였다.

이어 경상도 사람들은 송죽대절(松竹大節), 곧 소나무와 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가 특징이고, 강원도 사람들은 암하노불(巖下老佛), 곧 바위 아래 있는 늙은 부처와 같은 품성을 가졌으며, 황해도 사람들의 특징은 춘파투석(春波投石), 곧 봄 물결에 돌을 던진 것과 같고, 평안도 사람들은 산림맹호(山林猛虎), 곧 산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와 같다고 비교적 소상하게 각 도 사람들의 기질을 말한다.

그러고 나서 마지막으로 “함경도 사람들은 이전투구(泥田鬪狗), 곧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악착같다”고 평했는데, 함경도 출신인 태조 이성계가 함경도 사람들의 특징이 ‘이전투구’라는 말을 듣고 안색이 붉어지자 정도전은 얼른 말을 바꾸어 함경도는 석전경우(石田耕牛), 곧 돌밭을 가는 소와 같은 우직한 품성도 지니고 있다고 말하여 태조의 기분을 누그러뜨렸다고 한다.

이처럼 이전투구는 원래 함경도 사람의 강인하고 억척스러운 성격을 특정 짓는 말로 사용되었지만, 오늘날에는 오직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또는 명분이 서지 않는 일로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들처럼 볼썽사납게 다투는 모습을 비유하는 말로 흔히 쓰인다.

오늘의 시대상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겠지만 이전투구라는 말을 떠올릴 정도로 혼탁한 게 사실이다. 물론 정치권이 이전투구의 본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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