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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예(禮)’에 관하여

 

 

 

우리는 생활 중에 예(禮)란 문제를 만나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부담을 느끼거나 어렵게 생각하거나 쉬이 고민에 빠지게 된다. 취업 면접에서든, 윗사람을 찾아뵙든, 사돈같이 어려운 분과 식사를 함께 하든, 예식이나 행사를 치르든, 특별한 자리나 만남에서 말이나 태도, 옷치레 등, 도대체 ‘禮’가 뭐길래 마음 씌게 하는지….



공경의 표시 ‘禮’

‘禮’는 서양(아브라함의 제사)이든 동양이든 하늘에 올리는 제사(禮=衣의관을 정제해+그릇에 재물을 담고+豆상을 차려+拜하늘에 절을 올리는)로 출발하여 군신관계 등으로 점차 확대되어 왔다.

동양에서의 ‘禮’는 주(BC1046~256)나라 당시 군자라면 누구나 교양으로 익혀야 할 6예(六藝~禮樂射御書數) 중 하나로 출발한 것을 공자(BC551~471)가 어린 날 학문에 뜻을 두고 주에 가서 배우고 왔다가 학문을 세우면서 제자들을 양성하고 고전을 정리(시경 서경 예경 악경 역경 춘추 등)한 것이 역대 왕조들의 통치 이념과 맞물려 사회 각층의 질서 규범과 정신적 이념으로 승화되어 왔다. 공자가 정립한 사상의 요체는 ‘仁’과 ‘禮’로 치자와 피치자 간의 치도와 공경의 도를 행함에 필요한 덕목을 정립한 것이니, 곧 정치적 이념에 부합되었던 것이다.

그러던 공자의 사상도 맹자에 와서 ‘仁’ 즉 어질음에 치중하면서 성선설, 즉 백성에 근본을 두는 도덕 정치의 근거가 되었고, 순자는 ‘禮’에 치중하면서 성악설, 즉 관중이 말하는 ‘창고가 넘쳐야 예절을 알고 의식이 풍족해야 영욕을 안다’란 통치의 근거가 되었다.



우리 역사 속의 ‘禮’

우리 역사로는 조선이 ‘예치(禮治)’를 국시로 하면서 반상 차별, 거듭된 사화, 극심한 당쟁으로 나라를 문약화 시켜 결국은 왜란과 호란을 초치해 온 나라가 정신적 경제적으로 피폐되어 감에도 ‘예송(禮訟)’이 뭐라고 위정자들은 당쟁이든 논쟁이든 학파간의 대립이든 서로가 서로를 물고 헐뜯고 귀양 보내고 하면서 국정을 마비시킬 정도였다.

그런 과정에 영·정조대 탕평과 실학으로 나라도 점차 안정을 찾을 수 있었으나 ‘예송 논쟁’의 후유증과 세도정치에 다시 발목 잡혀 조선의 근대화가 멀어지면서 마침내 일본에 나라가 망하고 말았으니, 도대체 ‘禮’가 뭔지….



생활에서의 ‘禮’

‘禮’란 문제는 오늘에도 무시할 수 없지만 ‘예’란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영역을 존중하는 마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중국의 경세학자 유향도 ‘조심하는 마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대하면 올 재난도 달아난다’ 했으니, 아마도 거기에 약간의 격식 ‘禮’를 갖출 수 있다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고 마찰 없이 가슴과 가슴이 통하지 않겠는가?

대개 마찰은 ①욕심 ②교만과 무시 ③사치 ④화냄으로부터 시작되는 법. 잠깐 무시당하더라도 불같이 화를 내거나 되갚기보다 역지사지, 내가 잘못했을 수도 상대가 모르고 했을 수도 있음을 생각하고 대화로든 행동으로든 조심해서 설복하는 것이 지혜롭지 않을까?

그마저 어렵다면 대응 속도를 늦추거나 다시 생각할 여지를 주거나 멀직히 물러나 열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겸손만큼 때로는 ‘예’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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