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2
/박무웅
내 어릴 적 아껴 입던
단벌옷이 저기 저 저녁 근처에 걸려 있다
뛰어놀다 보면 옷은
내 몸이 튀어나가고 싶은 곳이
어디쯤인가 알려주었고
힘없이 뜯겨지는 내 허기진 곳이
어느 부위인지
정확히 알려주었다
그런 곳들마다
불쑥 튀어나오거나
실밥이 뜯겨져 있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저 노을이 부러웠다
가위로 쑥싹쑥싹 한 귀퉁이 잘라
울긋불긋 새 옷 한 벌 해 입고 싶었지만
내 발목은 늘
이불 밖으로 쑥쑥 자랐다
그럴 때도 저 노을 한 필 끊어다
발끝까지 덮고 싶었다
주머니를 뒤지면
따뜻한 저녁이 손에 만져질 것 같은
노을로 지은 옷 한 벌과
지평선 끝까지 뛸 수 있는
발목이 그리웠다
- 시인 수첩 / 2017년·가을
궁핍의 계절, 찬란한 노을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던가. 때로는 풍요의 대체 품목이었고 꿈 한 조각이었으며 가 닿고 싶은 미래의 어느 환한 지점이었다. 흔히 인용되는 노년의 노을과 대조적인 저러한 이미지의 노을은, 유년의 어느 시점에서 누구나 한번쯤 겪어보았음직 하다. 시인은 무채색의 나날, 제대로 된 옷 한 벌도 쉽게 얻을 수 없을 때 유채색 노을을 끊어다 온갖 치장을 해보는 상상으로 삭막한 시간을 견뎠으리라. 그것이 꿈이 되고 욕망이 되고 이루어내야 할 목표가 되어 오늘에 이르렀으리. 아직도 노을을 마주하면 어릴 적 단벌옷이 떠오르는 시인에게 노을빛 따뜻한 저녁은 영원한 시심의 원천이며 그리움이리라.
/이정원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