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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통찰]士의 윤리

 

 

 

士자가 들어가는 직업군 중 변호사, 법무사, 노무사, 행정사가 있다. 왜 선비를 뜻하는 士가 들어가 있을까? 높은 학식과 올곧은 성품이 요구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황퇴계집에 보면 선비는 자기 몸을 깨끗이 하고 옳게 행하는 것 뿐이니, 화와 복을 논할 것이 못 된다고 하였다.

여기 세 개의 일화를 소개한다.

지난 6월, A라는 사람이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되어 구제를 위해 한 행정사를 찾았다. 행정사가 어떻게 술을 마시게 됐냐고 물었다. 의뢰인은 “그냥 마셨어요. 여러 번 음주운전을 했는데 운이 없어 적발됐어요”라고 반성의 기색 없이 내던지는 식으로 말했다. 행정사는 사건 수임을 거절했다. 당장 수임료를 받겠지만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불가피하게 음주운전을 할 수밖에 없었던 거짓 상황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양심에 걸릴뿐더러, 설사 그 거짓이 운좋게 받아들여져 구제가 된다 하더라도, 그는 다시 또 음주운전을 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행정사가 공공의 적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장인 B씨는 서울 서초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소속직원을 해임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변호사는 해임에 이를 만한 중대한 사유를 만들어야 했기에 하지도 않은 일을 했거나 한 일을 과장하는 요령을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다. 징계혐의자가 B씨에게 제도개선을 ‘건의’한 것을 ‘요구’했다라고 기재하라며 징계사유서에 기재할 단어까지 일러줬다. 한 수 더 떠, 변호사는 이 기관의 인사위원(징계위원) 후보로 B의 해임의지에 동조할 만한 또 다른 변호사를 추천까지 했다. 또한 B씨는 인사위원 중 한 명인 노무사를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고 이 노무사는 그 자리에서 협조를 약속했다. 징계혐의자의 인권과 방어권이 처참히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이어진 인사위원회에서 징계혐의자는 인사위원 전원 만장일치로 해임의결됐다.

미국의 유대계 여교수 데버러 립스댓은 히틀러의 홀로코스트의 실태와 만행을 주장하는 역사학자이다. 영국인 저술가 데이비드 어빙이 그녀의 주장이 역사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반박했고, 그녀는 어빙을 “역사를 왜곡한 사람”이라고 비난하자 급기야 어빙은 그녀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다. 재판정은 영국이며 피고 립스댓 교수의 변호인으로 리처드 램튼이 등장한다. 립스댓 교수는 성미가 급하고 감정적인 사람이어서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증언대로 세우자고 요구하는가 하면 법정에서도 램튼 변호사에게 마구 메모지를 던져 그의 판단을 혼란스럽게 한다. 그러나 램튼 변호사는 의뢰인의 마음을 이해하고 위로하면서 적절히 통제한다. 램튼 변호사는 립스댓 교수와 폴란드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직접 가서 학살의 현장을 철저히 조사한다. 변호사와 의뢰인은 철저한 자기절제와 정확한 팩트체크, 그리고 수시로 상호토론을 하면서 철저히 준비하여 결국 승소를 하게 된다. 2000년 실제 민사소송사건을 다룬 영화 ‘나는 부정한다’의 줄거리이다.

일반 사람들이 생각하는 士군의 이미지는 무엇일까? 사건의 진상을 법·사실·논리·판례를 들어 밝히고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옹호하는 정의의 조력자로 인식되고 있다. 그래서 이런 직업군, 예컨대 변호사가 되기 위하여는 높은 지식못지 않게 엄격한 법률적·도적적 기준이 요구된다. 법원이 강용석 변호사 같은 저명한 법조인이 사문서 한 건을 위조한 이유로 구속을 명한 것은 변호사에게 보다 엄중한 도덕적 잣대를 적용한 것이다.

지금 이들 士군의 직업이 차고 넘쳐난다. 변호사의 경우 전국에 2만500명에 이르고, 서울에만 1만5천명 정도가 있다. 경쟁이 치열하니 양심은 사라지고 시장의 논리만이 작동되어 일단 수임하고 보자는 저급한 변호사들이 많다. 일단 수임만 하면 수백만원의 수임료를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변호인이 보호해야 할 이익은 정당한 이익에 한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의뢰인의 방어권 남용에 협력하는 변호활동을 하는 것은 그 변호권의 한계를 일탈하는 것이다.(박상기외 12인, 법학개론). 거짓을 만들거나 사실을 과장하여 의뢰인 상대방의 눈에 눈물을 흘리게 해서는 안된다.

“변호사가 정말로 해야 할 일은 갈라져 있는 양쪽을 서로 합치게 하는 일이다. 변호사 개업을 하던 20년 간의 대부분은 사적인 타협을 이루도록 노력하는데 전념했다”는 마하트마 간디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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