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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이런 우정

 

 

 

우정을 삶의 가치로 깊이 생각한 적 없다. 효를 제대로 실천해 본 적도 없고 형제도 살뜰이 챙겨 본 적 없는데 우정까지 생각한다는 것은 감정의 낭비가 아닌가했다. 주변에서 만나지는 사람에 집중하며 좋으면 감정을 넘치게 쏟다가 마음에 거슬리면 한순간에 접기도 하는 감정의 하루살이처럼 살아간다.

다른 삶이 궁금하지도 않았고 궁금해하는 것은 타인의 공간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 여겨 적당하게 거리를 두어야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곁을 내줄 정도의 다정함에 끌려 더 이상 숨길 것 없이 속을 보이고 나면 관계가 나빠진 상황이 됐을 때 더 할 수 없는 상처의 칼날로 마음을 다쳤던 적도 부지기수다. 감정이란 것이 예고를 하고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신기루처럼 불현듯 다가설 때도 있고 소나기처럼 잠깐 왔다가 언제인가 싶게 물러가기도 하며 먹어도 헛헛하고 가늠할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는 것이라 사람에게 느끼는 마음이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어려운 것이라 여겼다. 사람을 얻으려거나 혹은 단호하지 못해 원하지 않은 기계적인 관계만 유지하며 살다보니 우정이란 관념에 흥미를 잃었던 것도 있었다.

이렇듯 마음의 눈을 반쯤은 닫고 우정에는 메마른 나를 일깨운 하나의 일화를 소개하려 한다.

며칠 전 들른 가게의 원장과 나눈 잠깐의 이야기는 나이가 이만큼이 되도록 갖고는 싶었으나 갖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였다. 대화중에 찾아와 원장과 저녁약속을 하고 간 친구가 친구라고만 하기엔 대화가 친밀하여 나를 궁금하게 했다. 실례가 되는 줄 알면서 누구시냐고 물은 즉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한번의 헤어짐도 없이 단짝이었던 친구이자 지금은 시누이와 올케의 인연이란다. 다툼 한번 없이 오래된 스스로도 신기한 둘의 인연을 지속시키려 남동생을 소개시켜 시누이와 올케가 된 반강제의 의미도 포함된 결혼이었다고 웃었다.

동생의 신혼이 시작되고 몇 개월 되지 않았을 때 아직 아이도 어린 원장의 가정에 문제가 생겨 더할 나위 없는 상처만 안은 채 남편과는 헤어졌고 몇 번이나 나쁜마음을 먹기도 하며 어디서도 위안을 얻기 힘들었던 그녀에게 몇 평 되지 않는 작은 신혼집에 함께 기거하기를 흔쾌히 허락하고 거기다 더하여 산지 얼마되지 않은 자신의 차를 기꺼이 팔아 재활의 발판이 되도록 힘을 보태주었다 한다.

상처를 준 나쁜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사는 것이 네가 아픔을 극복하는 길이라며 최고의 가전제품과 가정물품으로 최대한 멋지게 집을 꾸미고 건강하고 당당한 너의 새로운 삶을 마련하라는 격려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서로 가족으로 거듭나기 위한 혼돈의 시간이 잠깐 있기도 했지만 자신과는 가족보다 더 가까운 친구라는 정체성을 느끼며 예전의 우정을 회복하였고 자신보다 더 소중한 존재로 부모 동기간보다 더 가깝게 함께 할 것을 믿고 있다고 했다. 참으로 아름다웠다.

나이가 들면서 사람이 점점 그립다. 그저 오랜 시간을 지나며 머리칼이 하얗게 세어가고 피부가 주름졌다고 인생을 잘 산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생존한 것이 아니라 잘살았다고 할 수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한 기본 덕목에 이런 우정이 있을까.

내 이야기를 조용히 들어주고 내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며 남에게는 내 편이 되어주고 자신의 생각을 재기넘치게 나눌 수 있는 친구를 만날 것이라 내심은 기다리는 중이다. 이런 기대가 채워지지 않을 것이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는 것은 어떨까 호기도 내 보았으나 나 역시 속되어 몇 번의 호의에 그걸 되갚지 않는 사람은 마음에서 멀리하니 내게 그런 숭고한 우정은 애당초 기대하기가 어렵다.

제한된 시간 안에 세상에 살게 되었으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몇 개의 기쁨중에 이런 우정을 얻는 건 어떨까 그사람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자신의 전부를 내 주는 것이 어떤 마음인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속된 마음이지만 서로에 대해 아깝지 않은 그 마음에 마음이 흠뻑 움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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