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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의 향기]동냥 글과 자식 사랑

 

 

 

옛날 우리나라에서는 글을 배우는 입문서로서 천자문이 널리 사용되어왔다.

오늘날까지도 한자(漢字)를 알든 모르든 대부분 사람들은 천자문이 무슨 책인지 정도는 알고 있을 만큼 일반화되어 있는 교과서이다.

이 책은 원래 중국 양나라 주흥사라는 사람이 하룻밤 사이에 만들고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해서 흔히 ‘백수문(白首文)’이라고도 한다. 이 책이 우리나라에 언제 들어왔는지는 확실한 기록이 없지만, 일본서기(日本書紀)에 285년 백제의 왕인(王仁)이 일본에 ‘천자문(千字文)’과 ‘논어(論語)’를 전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이보다 먼저 보급되었을 것으로 추측이 된다.

우리에게 가장 널리 알려진 천자문으로는 명필 한호(韓濩)가 쓴 ‘한석봉천자문(韓石峯千字文)’이 있지만 이밖에도 많은 판본의 천자문이 시대마다 지방마다 또는 집집마다 다양하게 사용되어 왔다. 이렇게 시대와 계층, 지역을 망라하여 천자문은 한자교육의 기본 입문서 이자 백성들이 말과 글을 배우는 첫 관문이라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중요한 교재였다.

왕가에서 세자나 대군들이 배우는 천자문은 비단이나 채색된 고급 장지에 당대 최고의 석학이 써서 만들었고, 사대부가나 일반 서민들은 주변에서 가장 학덕이 높은 어른에게 글씨를 받아 책을 만드는가 하면 심지어 천 사람에게서 한 글자씩 동냥으로 받은 글씨로 책을 만들어 자녀들이 공부하도록 하였다.

물론 목판으로 찍어 양산하여 보급한 목판본 천자문이 일반적이기는 하였으나, 대부분 필사본이 많이 전해지고 있는 것은 집집마다 만든 형편과 정성이 다 다르기 때문이었다. 퇴계선생께서도 자식교육을 위해 직접 천자문을 써서 만든 판본이 전해지는 것을 보면, 제왕으로부터 일반 사서인(士庶人)에 이르기까지 자식교육에 대한 부모의 마음은 다르지 않았다. 글공부 시작하는 자식을 위해 천명이나 되는 유식자들을 찾아다니며 한 글자씩 글 동냥하여 책을 만든 부모의 마음이 옛날이라고 다를 리 없는 것이다.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의 교육환경을 위해 세 번이나 주거지를 옮겼다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교육열을 보아도 자식 교육에 대한 부모의 정성과 열망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학군에 따라 부동산 가격이 정해지는 기현상(奇現象)은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우리나라만의 교육과열 현상이라고는 하지만, 어쩌면 이 세상 모든 부모가 숙명처럼 쌓아 온 업보가 아닐까 한다. 지난 몇 달 동안 나라 안의 뉴스는 온통 ‘조국(曺國)’으로 가득했다. 조국 장관 자녀들의 부정입학 관련 의혹에 대하여는 범법의 유무를 차치하고 조 장관 부부의 잘못된 자식 사랑과 무딘 도덕성에 대하여 국민들은 지탄하고 있는 것이다. 성과(成果) 지상주의에 몰입하는 사회적 속물구조의 민낯을 그대로 보고 있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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