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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경영]영화 ‘브이 포 벤데타, V for Vendetta’

 

 

 

 

 

하얀 얼굴에 올라간 입꼬리. 집회나 시위 현장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는 가면(假面)이 있다. 이른바 ‘벤데타 가면’ 또는 ‘가이 포크스 가면’이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이 가면을 쓰고 나오는 걸까? 그리고 이 가면의 의미는 어떤 것일까.

동물을 사냥하기 위한 변장에서 시작된 가면은 이후 주술, 신앙, 축제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사용되면서 문화의 주요한 부분으로 자리 잡게 됐다. 무엇보다 사람의 얼굴을 숨길 수 있는 기능은 가면을 착용한 이들로 하여금 일상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행동도 가능케 하는 대범함을 심어주기도 한다. 영화 ‘브이 포 벤데타’를 통해서도 우리는 그처럼 가면이 주는 용기를 만날 수 있다.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후 2040년 영국. 정부 지도자와 피부색, 성적 취향,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들은 수용소로 끌려간 후 사라지고, 거리 곳곳에 카메라와 녹음 장치가 설치돼 모든 이들이 통제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세상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평온한 삶을 유지한다.

영화는 파시즘이 만연한 미래의 영국을 배경으로, 왜곡된 정보로 국민을 기만하고, 독재가 횡행하는 경찰 국가에서 겪는 숨 막히는 삶과 그에 대항하는 인간의 신념을 보여준다.

권력을 잡은 집단이 수용소에서 생체실험을 자행하고, 지옥 같은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주인공은 자신의 얼굴을 잃은 대신 평범하지 않은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권력에 대한 심판을 시작한다. 영화 속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무정부주의자 ‘V(브이)’는 영국 역사에서 저항과 혁명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 중 하나인 가이 포크스(Guy Fawkes)의 가면을 쓰고 다니며 V자 표식을 남기는 것이 특징이다.

주인공이 쓰고 있는 가면은 17세기 초 영국 정부에 저항하다가 처형당한 가이 포크스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즉,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의 모습을 빌려와 권력에 저항하는 브이의 의지를 이미지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이 포크스가 살았던 당시, 영국에서는 종교적·정치적 이유로 국민들에 대한 탄압이 자행됐다. 그래서 그는 카톨릭을 배척하고 성공회를 우대하던 제임스 1세는 물론 의원들까지 모두 살해하기 위해 의회 의사당을 폭파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미수에 그치게 되고,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다. 1605년 11월 5일의 이른바 화약음모사건(Gunpowder Plot)이다.

이후 매년 같은 날, 영국 의회는 왕의 무사함을 기뻐하는 의미에서 감사절로 정하고 불꽃놀이를 했으나, 많은 사람들은 가이 포크스의 실패를 아쉬워하는 의미에서 이 날을 ‘가이 포크스 데이’라고 부르며 불꽃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그리고는 언제부터인가 불꽃놀이와 함께 참가자들이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행진을 하는 행사가 시작됐고, 가이 포크스의 가면은 영국과 영연방 국가에서 저항과 혁명의 상징이 됐다.

가이 포크스를 전 세계적인 인물로 탈바꿈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 2006년 제임스 맥티그(James McTeigue) 감독의 영화 ‘브이 포 벤데타’이다. 영화개봉 이후 가이 포크스와 그의 가면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전 세계적인 저항과 혁명의 상징으로 확산된다.

‘vendetta’의 사전적 의미는 ‘복수’이다. 권력의 정점을 향해 다가가는 주인공 ‘V(브이)’의 신념은 개인적인 원한에 대한 앙갚음을 넘어 불행한 자신을 낳게 한 ‘시스템’에 맞선 항거로 볼 수 있다. 그는 ‘생체실험’을 기획하고 주도한 권력층을 심판함으로써 올바르지 못한 일이 만들어지게 된 근원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고자 했다.

유명한 해커 집단인 어나니머스(Anonymous)가 자신들의 메시지를 외부에 공개하며 경고와 위협의 의미로 가이 포크스의 가면을 쓰고 나타나는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2011년 ‘월가시위(Occupy Wall Street)’에 참가한 많은 사람들이 착용하면서 ‘저항의 아이콘’으로서 가이 포크스 가면이 주목받게 됐다.

춥고 어두운 밤을 따뜻하게 비췄던 촛불과 가이 포크스 가면은 권력을 바꿨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요구하고 있다. 저항의 아이콘’ 가이 포크스 가면이 홍콩 시위에도 어김없이 등장했다.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 시행에 들어가면서다. ‘국민이 정부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국민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브이 포 벤데타’의 명대사가 생각나는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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