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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 근원 김용준의 수필

 

한때 화제가 됐었던 책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잠깐 동안 고민에 빠졌었다. 90년대 생들은 긴 글과 골치 아픈 글을 기피한다는 대목에서였다. 독자들이 점점 더 진지한 글을 읽지 않게 되면 직업이 글을 쓰는 사람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90년대 생들이 지루해 하지 않도록 발랄한 문체를 구사해야 할까. 문체야 그렇다 치고 주제 자체가 진지한 경우는 어떤가.

 

잠깐 동안이지만 고민이 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들이 진지한 글을 기피하고 있다는 사실이 나에게는 너무나 불리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천성이 워낙 진지한 때문이기도 하지만 몸 담고 있는 비평이란 분야 자체도 진지하다. 이런 유의 글을 쓰는 사람들은 점점 더 설자리가 없겠구나 싶어 애통한 기분이 잠깐 들었었는데, 뭐 이런 유의 글이 인기 없는 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니까, 그냥 고민을 접어두기로 했다.

 

글을 쓰는 이들은 시대에 민감한 편이다. 하지만 비평가들은 시대와 동떨어져 보이는 것들에도 매달려야 한다. 일을 하다 보면 역사와 과거를 더듬어야 하고 수많은 개념들과 씨름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이 먼 곳까지 왔는지, 현실로부터 시작한 고민이 어찌하여 이처럼 먼 곳으로 나를 이끌었는지 헤맬 때도 있다. 물론 현실을 잠시 벗어나 질서 정연한 그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때 느끼는 희열이 나를 이 분야로 이끌었던 것도 일말의 사실이다.

 

요즘처럼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엔, 전시를 다 차려놓고도 손님이 들지 않아 전전긍긍하고 있을 작가나 기획자들이 안타깝긴 하지만 집 밖을 나서기가 머뭇거려진다. 그 김에 한동안은 전시장을 둘러보는 대신 잠시 손을 놓고 있었던 ‘근원수필(近園隨筆)’을 집어 들기로 했다.

 

근원 김용준은 식민지와 해방공간에서 활동했던 화가이자 비평가, 교육가였다. 학문적 업적이나 당대의 영향력으로 보면 우리나라의 미술사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이지만 1950년 돌연 월북을 하는 바람에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2000년 근원 김용준의 글을 모아 총 5권의 수필 전집 ‘근원수필’이 발행되었다. 조선미술사, 고구려 미술사, 당시 미술계에 대한 시론에 관한 것뿐만 아니라 개인사와 시류에 관한 수필들도 함께 엮어졌다.

 

서문에서 비평가 최열은 ‘풍속이 보이는가 싶으면 무슨 취미도 보이고, 어떤 사람도 보이다가 어느덧 예술가가 나서는가 싶더니 금세 고전의 향기가 코를 찌른다’며 김용준의 글을 칭송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근원은 고전을 체득해 그 향기를 전할 정도로 고전에 능란할 뿐만 아니라 속세와 고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고 있으니, 완성형 비평가라 할 수 있다. 1권의 경우 전문 분야가 아닌 일상과 시류에 관한 수필이 주로 담겨 있으며, 글들이 짤막하고 재치 있으니 90년대 생들도 도전해볼 수 있는 책이다.

 

가난을 벗하는 예술가의 삶은 지금도 여전하지만 해방공간에서는 그 설움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근원은 처량한 처지를 자주 한탄한다. 특히 ‘털보’라는 글에서는 (당시 조선은행에서 발행한 화폐에는 털이 수북한 노인이 그려져 있었다.) ‘돈처럼 천하고 더러운 것이 없다’면서도 아무리 애쓰고 일해도 ‘집집이 식구들이 영양불량으로 병이 생기고 빈혈로 쓰러지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털보는 모이는 데로만 모인다’며 역정을 낸다. 당시 화폐 도안이 일본은행권의 것을 그대로 베낀 것이라 하니 ‘털보’만 보면 근원은 속이 뒤집혔던 모양이다.

 

‘검려지기(黔驢之技)’라는 글에서는 아호에 대한 재밌는 일화가 소개된다. ‘호를 자주 갈 거나 여러 가지를 쓰는 이들은 남 보기에 요란스럽다며’ 그는 하나의 호만을 고수했다가 결국에는 요란스러운 일행에 끼고 말았다. ‘매정(梅丁)’, ‘노시산인(老柿山人)’, ‘근원(近猿)’, 또 다른 ‘근원(近園)’ 등의 호를 써버리고 만 것이다. 수필을 읽다 보면 근원 김용준은 작은 일에도 자주 감탄하곤 한다. 그러니 호가 여러 번 갈릴 수밖에….

 

동무의 집에 핀 매화를 보아도 감탄했고, 앞마당에 심어진 감나무를 보아도 감탄했다. 고전을 펼치면 그 익살스러움에, 혹은 그 주옥같음에 감탄했다. 빈곤하고 억눌렸던 시절 메마르기보다는 그처럼 자주 감탄하고 애통해 한 그였으니, 그 점이야말로 그가 지녔던 진정한 문필가의 면모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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