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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애眞誠愛칼럼] 촛불의 미학

 

촛불은 제 눈물을 녹이며 혼자서 탄다. 문학적 상상력은 혼자의 외로운 작업이라는 점에서 촛불의 미학과도 같다. 문학만이 그러한가. 미술도, 음악도 무용도 연주도 마찬가지다. 누구도 도울 수 없는 혼자만의 외로운 작업이라는 점에서 촛불과 같다. 혼자 타오른다. 누가 뭐라 해도 굳힘도 없이 꿋꿋이. 혼자만의 절대적인 힘이 있다. 그러나 정말 중요한 것은 그것으로 주변을 밝힌다는 사실이다. 자신을 죽이며 어둠을 밝힌다. 어둠이 없다면 촛불은 초라해진다. 있는지 없는지 그 존재를 알기 힘들다. 소란한 곳에서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촛불은 죽음과도 같은 침묵을 지녔다. 빈소에 촛불을 켜는 순간 빈소는 거룩해진다. 망자를 위하여 누구도 험한 말을 하지 않는다. 지나온 날을 반추하며 아름다운 시절을 회상하게 한다. 어디 함부로의 죽음이 있는가. 다 사연이 있고 아픔이 있는 것이 죽음이다.

 

촛불은 신성한 힘을 지녔다. ‘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 신화시대와 같은 절대 권력을 지녔다. 촛불 앞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 큰소리를 하는 순간 촛불은 꺼진다. 촛불은 조용하면서도 수직으로 상승하는 힘을 지녔다. 옆으로 눕지 않는다. 빛을 발하며 어둠을 밝힌다. “불꽃은 위쪽을 향해서 흐르는 모래 시계다.” “불꽃은 우리에게 상상할 것을 강요한다.” 프랑스의 과학철학자, 문학 비평가, 시인으로 독보적인 존재인 가스통 바슐라르는 촛불의 미학에 대해 많은 얘기를 들려준다.

 

촛불은 모이면 큰 힘을 만든다. 비슷한 의견을 가진 다수가 교감하며 공감을 토로한다. 잘못된 일에 항의를 하기도 하고 추모를 하기도 한다. 폭력적이어서는 안된다. 폭력을 앞세울 때 촛불은 꺼지고 그림자만 남는다. 평화시위의 촛불집회(candlelight vigil) 1968년 베트남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일 때 미국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 등 반전 운동가들이 촛불을 들었다.

 

1988년에는 체코슬로바키아(지금의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에서 주로 가톨릭 신자들이 공산주의 독재 정권에 종교의 자유와 인권 존중을 요구하며 촛불을 들었다. 한국에서는 2002년 중학생 신효순·심미선 추모 촛불시위,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촛불집회가 있었고 2008년에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2016년과 2017년에는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촛불집회가 있었다.

 

촛불은 변화를 불러오는 마력을 지녔다. 처음에는 여리고 힘이 없지만 설득력이 실리면 크게 바뀐다. 처음에는 단순히 여중생을 죽음을 애도하던 추모 집회가 미군 법정의 사고 장갑차 운전병들에게 무죄 판결이 기름을 부어 반미(反美) 시위로 불타올랐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도 ‘촛불소녀’라 명명된 10대 여학생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 점에서 촛불은 누구든 주인으로 섬긴다. 일정한 주체가 세력을 만들지 않아도 너도 주인이 되고 나도 주인이 된다. 중고생들로부터 대학생, 일반 회사원과 유모차를 끄는 이들에 이르기까지 시민 모두가 주인이 된다. 코로나가 다시 위험 수위를 달리고 있다. 거리두기를 하면서 자아성찰을 위한 자신만의 촛불을 한 번 켜보기를 권한다.

 

불은 타오르기 위해/ 끊임없이 요구한다/ 꾸준한 연료의 공급/ 헛된 욕망 버무린다/ 끝없이 속에서 타는 불, 남자의 불이다// 꺼질 듯 흔들리는 불/ 절대 얕보지 마라/ 타버린 재속에서 불씨 다시 모은다/ 위장의 달콤한 유혹, 여자의 불이다// 같은 불이면서도/ 촛불은 따로 탄다/ 다 닳아질 때까지 스스로 숨죽인다/ 사람이 고독할 수 있는 건/ 혼자 타는 저 힘 때문// 불이 꿈꾼 몽상의 시학/ 거기 가 닿을 절벽 있다/ 삼동의 긴 적막, 속 깊은 눈사람들 / 어두운 마음 한 켠에 / 촛불 하나 켜두고 산다 (‘촛불의 미학’, 제3회 외솔시조문학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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