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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 50년 전 보길도에는

 

청보리가 일렁이는 1970년 5월, 목포에서 출발한 여객선을 타고 네 시간 만에 보길도에 내렸다. 안개비를 맞으며 첫 부임지인 보길초등학교에 도착했을 때, 옅은 막걸리 냄새가 섞인 교장 선생님의 환영사에 정을 느꼈다. 완도군에서 가장 빼어난 자연환경의 학교라며 축하해주던 곳이 멀고 깊은 섬이라니.

 

고산 윤선도가 제주도로 은신하러 가는 중에 풍랑을 만나 들렸다가 13년을 지낸 보길도는 그분의 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첫발을 디딘 곳을 ‘등문’이라 하고, 잠시 고향에 가기 위해 배를 탄 곳을 ‘청별’이라 한 지명이 어찌 그리 예쁘던가. 고산이 머문 집터의 주춧돌이나, 이집 저집 안방에 붙어 있는 먹물 묻은 벽지에 숨어 있는 이야기는 값진 보물이었다.

 

고산이 정성을 쏟아 조성하고 아낀 운동장 옆의 새연정은 아이들의 미술실이고, 냇물을 타고 온 수달이 밤에 비단잉어를 사냥하고 머리만 남겨 놓은 새연지 안의 바위는 생태계의 학습장이 아니던가. 밤새 뚝뚝 떨어지는 동백꽃과 돛대 끝에서 떨고 있는 칼바람 하며, 제비와 동박새가 멱살잡이로 차지하려는 둥지와, 허기진 주민의 삶도 가공하지 않은 글 소재였다.

 

어느 교수가 고산 연구차 왔을 때 고산 집이 있던 부용동의 주민이 보여 준 의문의 문서를 자세히 살펴보고 돌려주겠다 하고 가져가서는 감감소식이기에 편지를 해도 연락이 없었다. 주민들이 나서서 광주시의 대학교에 찾아가서 돌려 달랐더니 특별한 것이 아니라서 없어졌다며 횡설수설하여 원성을 산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런가 하면 자신들은 고산이 나이 찬 처녀들을 임의로 불러들여 생겨난 버려진 후손으로 근근이 살아왔다는 숨겨진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학교 뒤 유지의 텃밭에는 슬픔을 간직한 묘가 생겨났다. 그 집 총각과 동네 처녀가 깊은 사랑에 빠졌는데, 친척 관계로 혼인을 할 수 없기에 두 사람은 극단의 결정을 약속했다. 그리하여 깊은 밤, 총각 방에서 같이 약을 마시기로 했건만, 총각이 변절하여 꽃다운 처녀만 이슬이 되고 말았다. 처녀는 고결한 사랑으로 영원한 행복을 꿈꾸었으리라. 허구와 실재가 혼동될 만큼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한동안 섬을 암울하게 한 후 서서히 잦아들었다.

 

이 동네 저 동네의 시집갈 처자들이 총각 선생 방에 몰려와 분 냄새 풍기면서 미주알고주알 신상을 탐지하며 밤잠 설치게 하고 우르르 떠나던 일도 한 편의 수필이 아니던가.

 

아이들은 이슬처럼 고왔다. 그들은 수업 중에 밖을 내다보며 꿈을 좇는 허황한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원했다. 하늘까지 닿는 장대로 별을 따서 구슬치기하는 이야기라든지, 호수에 종이배를 띄워놓고 무지개를 잡는, 그야말로 얼토당토아니한 허풍에도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을 굴리며 빨려 들어왔다. 어부사시사나 오우가를 탄생시킨 유명한 환경보다는 동화 같은 분위기에 젖어 나 또한 동화되곤 하였다.

 

보길도 생활에서 현대문학지도 한몫했다. 박경리의 토지에서 최 참판 댁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사건이나, 잎담배 수매장의 등위 조작으로 순박한 산골 사람들의 등골을 휘게 하는 단편소설 등이 영락없이 보길도에서 이루어지는 사실처럼 간주 되어서다.

 

나는 황금기인 3년을 보내고 보길도를 떠나왔다. 그 후 몇 번 보길도에 갈 기회가 있는데도 일부로 가지 아니한다. 50년 전에 새겨진 맑고 고운 모습과 기억을 발전된 지금의 모습으로 결코 바꾸고 싶지 않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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