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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사람으로 산다는 것

  • 박병두
  • 등록 2020.08.24 06:43:56
  • 인천 1면

 

장마가 삶을 할퀴고 갔다. 세상이 격변하는 물결들로 적응하며 사는게 어렵다. 해남 백련재는 강풍이 다녀가더니 밤새 기와 위로 솔가지가 흩어져 누워 잠을 잔다. 새벽바람은 거셌고 창문소리는 컸다.

 

땅끝순례문학관 산책길을 걸으면서 문득 사람으로 산다는 사념(思念)에 잠긴다. 가깝게는 흙과 더불어 살아가는 작은형님 댁이, 얼마전 어머님 기일을 지키지 못한 죄스러움이, 애경사 초청장을 받고도 답례를 못하고 사는 일이, 나이 듦 탓일까 지인들의 애경사에 주말이면 정숙한 미안함으로 심사가 불편하다. 더욱이 경사 보다는 애사에 어쩌다 조문을 하지 못하면 한주 내내 마음이 무겁다.

 

오래전부터 경사는 참석 않는 원칙을 정했지만, 애사는 꼭 조문한다. 어머님께서는 집안이 어렵거나, 상가집 방문에는 반드시 밥을 두 그릇 이상 권면한 탓에 가끔 부고가 두 세건 겹치는 날에는 배가 남산만 하게 불러 나오기 일쑤다.

 

산을 보고 들녘에서 일하는 시골사람들을 본다. 자연스럽게 산에서 배운다. 사람들이 넘어질 때는 큰 산이 아니다. 작은 뿌리에 걸려 넘어진다. 겸손하게 사는 일도 어려운 법이다. 살아가는 일이 현장이 다르고 정서가 달라서 만족하게 또는 충족하게 주변을 챙기며 산다는 일은 불가능하다. 산도 땀을 흘려야 오를 수 있고 사색이 깊어야 성찰을 발견 할 수 있다. 도시의 번잡한 곳에서 사람들과 마주하는 공간은 말과 말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많다. 황량한 시대를 살며 세상과 저만치 거리를 두고 사는 것도 행복하다. 회상해 보면 하고 싶은 말만 한 것은 아닌지, 상대방이 이해하고, 듣고 싶은 말도, 해줄 배려를 알면서도 놓친 일은 없는지, 자문자답해 본다.

 

고(故)이병철 회장은 사업 성패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는데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반반의 확률밖에는 자신이 없다고 하셨다. 구본무 회장은 겸손을 강조했고, 지나치게 친절하거나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했다. 중도를 강조한 것인데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인문학의 근본이 인간에 대한 배려와 나눔이라고 생각하면서 가장 짧고 인간의 영혼을 만질 수 있는 시(詩)를 독자들에게 전하거나 필자들에게 전하다 보면 내가 먼저 지친다. 기다림을 채워주는 일이 때론 경솔할 때도 있다. 과연 자신이 옳다고 믿고 실천하는 배려와 나눔이 상대방에게 불편하지는 않고 유익한 도움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다.

 

아픈 사람들을 어루만지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인 의사들이 어쩌다 거리로 뛰쳐나와 집단행동에 이르렀는지 안타깝다. 만델라 대통령은 자신을 탄압한 백인들에게 내민 화해와 용서의 손길은 남아공의 인종 갈등을 치유하는 계기가 되었다. 언어를 가지고 소통하고 공유하며 세상을 읽으며, 관심을 가지고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말이 안 되는 소리도 들어야 하고 오해도 받으며 살아야 할 우리네 삶이다. 낮은 자세로 정직한 가슴을 가지고 진솔한 마음으로 진심을 담아 다가오는데 거부할 사람이 있겠는가? 오현스님은 시 한편 잘 쓰는 것이 절 한 채 짓는 것보다 낫다고 했다. 세상사 장애를 넘고, 벽을 넘어 알아가며, 이해하고 느끼면서 살아가는 수밖에 답이 없다.

 

빅토르위고, 레미제라블에서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날들은 아직 우리가 살지 않는 날들이다” 라고 했다. 오늘 살아있다는 이 시간을 성찰하고 사색할 수 있다는 지금이 희망이다. 너무 잘하려 하지 말고 대충 살아보자. 여성들이 보통 남자를 싫어하는 게 있다고 한다. 못생긴 것, 더러운 것 촌스러운 것이라 한다.

 

내 거울을 비추니 참 못생겼다는 생각이 든다. 효도보다는 불효를 더 많이 했던 아들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그 믿음으로 세상에 미안한 많은 것들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구한다. 어떤 일이든 잘 꾸려가는 리더가 될 수 있지만 리더는 불편하다. 관심과 배려와 나눔이 서툰 삶으로 부족할지라도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위해 한번 살아 볼 일이다.

 

바다와 산이 두룬 고향 해남 주변은 조용하고, 사람들에게 따뜻한 휴식 공간 한옥으로서 구조적인 애잔함과 슬픔들을 위로도 하고 때론 망각하며 이제 살기로 한다. 숨차게 걸어 왔던 길과 사람으로 살아야 할 이 길에 정의로운 어떤 소명의식과 책임도 멀리하고, 이제는 삶이란 직무유기를 할 수가 있다면 행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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