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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 황지우 詩人과 문예창작학과

 

삶에 영향을 준 詩人을 읽는다. 공직에서 문학의 사치를 걷는 동안 염불과 잿밥은 왜 먹으려했던 것인가? 직장은 수상한 시대를 이겨야 했고, 학문에서는 어떤 이념과 현실에 적응해야 했다. 시대도, 이념도, 그 인식과 의식의 오류는 모두 내가 만든 문학의 오솔길이었다. 이 수상한 문창과 시절, 황지우 시인을 통해 나의 문학은 좌충우돌 하면서 멀고 어려운 강을 건너야만 했다. 시인은 한국예술종합학교로 갔고 총장을 끝으로, 고향인 해남으로 돌아왔다. “뜻이 이끄는 대로 뚜벅뚜벅 먼 길을” 가라는 방향의 키를 잡아준 것도, “지식과 덕성을 1%로만 토해 내라”는 것도 스승의 가르침이셨다.

 

백련재에서 스승과 제자로 재회했다. 아버지 소천은 슬픔과 회자정리(會者定離)로 간단하지 않았다. 귀촌과 귀농은 아내의 동의를 얻는데 성공했다. 詩人도 2년 시름 끝에 해남에 둥지를 마련했지만 여의치 않은 일들이 많아 곁에서 바라보는 나는 속이 까맣게 타들어갔다. 제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없었다. 육각형 한옥건축을 계획하고, 고향땅을 밟으면서 발품을 팔았다. 스승과 나는 우수영과 땅끝을 오가면서 땅의 기운이 문학과 영혼의 안식처가 될 수 있도록 오관의 작용을 동원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문제이든 실패의 연속이다. 그 실패는 거의가 전문가를 넘어 두뇌를 고품격으로 쓰기 때문이다. 익숙하고 참신한 멋과 고즈넉한 한옥의 전통성을 고집한 것은 나무가 내게 말을 걸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시인은, 그 스승의 그 제자라는 말을 듣는 어떤 부담감이 따랐던 모양이다. 육각형과 기역자 한옥 설계도를 펼쳐두고 숙의를 했지만 삶과 현실의 두 사이를 오가는 동안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스승의 책, 트럭 3대 분량을 문창과 제자들과 옮겼다. 문학적인 성취와 정신의 사유를 안정된 서재에 정리를 해 드릴 수 있을까 하는 게 나의 숙제였다.

 

책을 만지면서 스승의 삶을 읽다가 김현 문학평론가 전집이 눈에 들어왔다. 김현은 시인의 스승이기도 하셨거니와 시인은 김현에 대한 회고를 자주했다. 김현을 백낙청은 ‘새것’이라 했고, 사는 이유를 성찰에 있다는 김우창은 ‘정확하고, 따뜻하다고’ 말했다. 황지우 시인은 “한 번이라도 김현의 비평의 대상이 되어본 적이 있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더 많이 알고 있지 않나 하는 불안감, 자신에게도 이런 점이 있었나 하는 의혹, 아니면 들켰구나 하는 은밀한 반가움 따위를” 김현전집에서 밝혔다. 열림과 일굼에서 김현은 시 한 편 분석하려고 최소한 여섯 번을 읽는다고 했다. 단순하게 읽고, 의미론적으로 분절해 읽고, 리듬 구조에 따라 읽고, 마음의 움직임에 따라 읽고서 자신을 강하게 울린 어휘를 찾아내고, 그리고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두 번 더 읽는다고 한다. 이제 화광동진(和光同塵)으로 스승과 뼈를 묻히는 날까지 제자로서 고향의 언덕을 바라봐야 할 시간들이다.

 

시인의 사모님께서는 따뜻한 국물거리와 밥상을 제자인 나의 방으로 내어주신다. 공격적인 현장에서 전투복을 입었고, 수갑도 채워봤다. 인간애와 의무의 틈바구니에서 문학의 씨를 뿌리고 심었던 밭들이, 아련한 감회와 회억들로 벅차다. 그늘진 울적함으로 정신을 실천하는 나날이, 나의 문학에도 어떤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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