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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라는 이름의 희생

이 땅의 모든 딸들에게 있어 '엄마'란 존재는 자신의 거울과도 같다. 때론 그의 인생이 너무 가엾어, 너무 서러워 닮고 싶지 않지만 어느새 그의 전철을 밟아가고 있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사회의 비주류 라인에 서 있는 같은 여성인 딸들에게 '엄마'의 존재는 내 속의 타자이며 분신이다. 그리고 아픈 신화다.
방송작가인 고혜정씨에게도 '친정엄마'는 그러한 존재다. 최근 펴낸 '친정엄마'(도서출판 함께 펴냄)에서 그는 이러한 엄마 이야기를 한다.
이야기의 시작은 전북 정읍에서 보낸 어린시절, 매맞는 엄마에 대한 기억에서부터다. 자식들에게는 끔찍할 정도로 잘해 줬지만 화만 나면 엄마를 때렸던 아버지. 엄마는 소리도 내지 않은 채 맞기만 했다. 이런 엄마가 싫어서 "차라리 죽어, 죽어버려 아니면 서울로 도망가버려"라고 소리치자, 엄마는 "내가 없으믄 니가 고생이여, 엄마가 허던 일 니가 다 히야 헐 것 아녀? 빨래허고, 동생들 치다꺼리허고, 핵교도 지대로 갈랑가도 모르고, 나 고생 안 헐라고 내 새끼 똥구덩이에 밀어넣겄냐? 나 하나 참으믄 될 것을…"이라고 답했단다.
서울로 공부하러 올라가는 딸에게 라면 봉지에 꼭꼭 싼, 아버지 몰래 모은 동전을 내밀던 엄마, 딸이 서울로 올라간 뒤 내 새끼 빼놓고 차마 먹을 수 없다며 딸이 좋아하는 반찬을 먹지 못했다는 엄마, 딸이 얼마나 고생하고 썼을까라는 생각에 심장이 떨려 딸이 쓴 프로그램을 한번도 보지 못했던 엄마. 이렇게 작가는 지난 세월속 엄마의 일화들을 풀어놓는다.
결혼전, 시댁에서 여러 모로 기운다며 결혼을 반대할 때 "나 땜 시 이 결혼 못허믄 나는 에미도 아니여, 자식 앞길 막는 멍텅구 리지”라며 엉엉 울어버린 엄마, 그리고 분만실 밖에서 "혜정아 엄마 여기있다"고 외치던 엄마의 목소리도 들어가 있다. 작가가 엄마 얘기를 책으로 내겠다고 말하자 엄마는 목이 메어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디, 늘 너한테는 부족헌 엄마였는디, 그리서 내가 너를 낳은 것을 너무나 미안해 험서 살았는디 …"라고 말했다.
아버지한테 맞고 살면서도 자신이 없으면 딸이 당할 고통을 생각하며 꾹꾹 참았던 엄마, 서울로 유학간 딸을 위해 철마다 무거운 보따리를 무거운 줄도 모르고 해날랐던 엄마, 결혼을 반대하는 시어머니 앞에서 가슴을 쥐어 뜯었던 엄마, 그렇게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딸을 제일로 사랑했던 엄마를 추억한 책이다. 부를 때마다 고맙고 가슴 아픈 엄마를 더없이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담아냈다.
저자의 직업은 방송작가이다. 그래서인지 저자의 엄마 이야기는 잘근잘근 가슴을 씹는 매력이 있다. 걸러지지 않은 문체로 짚어가는 엄마와의 뜨거운 기억들이 눈물을 삼키게 한다. 자신의 일에 바빠 언제나 엄마를 뒤로 밀어놓아야 했던, 그래서 늘 엄마에게 미안했던 딸들에게 엄마와 함께 나누고 생각할 기회를 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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