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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갑의 難讀日記 (난독일기)] 집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 아니다. 하루가 열렸다가 닫히는 곳이 집이고, 한 사람의 생애가 시작되었다가 마무리되는 곳이 집이다. 집은,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의 자궁이고, 가족을 품은 울타리이고, 문명을 보듬은 사회이고, 국민을 보살피는 국가이고, 생명을 품은 녹색의 별 지구이고, 천지만물의 조화가 싹트는 우주다. 그런 점에서, 셀 수도 측정할 수도 없는 광활한 영역의 집을 네 개의 벽에 둘러싸인 몇 평짜리 공간으로 규정짓는 것은 인간의 착각이다. 지구에 사는 그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집을 규정하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사회의 비극도 거기에서 출발되었는지 모른다. 땅에 기둥을 세우고 지금부터 이곳은 내 집이니 들어오지 말라고 우기는 순간, 자연의 일부였던 집은 욕심의 일부가 되고 만다. 집이 빚어낸 욕심은 마당과 논밭으로 확장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땅에 선을 긋고 자신의 영역이라 우겨대기 시작했다. 인간들의 영역표시는, 땅을 품은 자연이 보기에 어이없는 행동이었다. 땅과 물과 공기를 빌려 쓰는 동물이 어찌 그것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땅과 바다와 하늘에 선을 긋고 제 것이라 우겼다.

 

우긴다고 땅과 바다와 하늘이 누구의 것이 될 수 있을까. 생명을 지닌 것들은 결국 자연으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자연의 일부가 모여 생명이 탄생하듯이, 생명의 소멸 역시 자연의 일부로 흩어지는 것이다. 나고 자라고 흩어지는 과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대자연의 법칙이다. 그것이 아닌, 절대불변의 생명체를 나는 아직껏 발견하지 못했다. 생명이 다 해 자연으로 돌아간 것 중에 흙과 물과 공기로 변해 흩어지지 않는 것은 없다. 죽고 나면, 한 줌 티끌로 변해 흩어지고 말 자연의 일부가 대자연에 선을 긋고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흩어져서 사라지고 말 것이 변치 않고 지켜내는 것을 소유할 수 있는가. 전체를 이루는 일부가 전체를 소유할 수 있는가. 억지이고 모순임에도 우리사회에서는 소유권이 인정된다. 땅에 선을 긋고 죽은 뒤에도 권리와 증서를 물려줄 수 있다. 그것이 우리사회가 처한 불평등의 또 다른 출발점이다. 집과 땅을 인간과 인간집단이 서로 나누어가질 때, 나아가 집과 땅에 인접한 바다와 하늘까지 소유의 주체를 놓고 다툴 때, 나누고 다투는 기준은 힘이고 권력이었다. 당연히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없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나눠지지 않았다.

 

집과 땅과 바다와 하늘에 대한, 도저히 소유할 수 없는 것을 소유할 수 있게 문서화한 인간의 역사는 지금도 여전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소유를 다투는 힘과 권력의 균형추가 총칼에서 부(富)로 기운 것이다. 돈이 집과 땅을 소유하고 거래하는 주체가 되면서, 집과 땅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아니다. 머물고 쉬고 사랑하고 협력하는 공동체 개념마저 퇴색하고 말았다. 우리사회에서 집과 땅은 돈이고 인격이고 신분이고 특권이다. 좀 더 많이, 좀 더 넓게, 소유한 사람일수록 많이 벌고 넓게 누린다. 이제는 사람 대신 돈이 집에서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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