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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윤의 좌충우돌] 불편해도 괜찮아

 

 

며칠 전 내 아이가 엄마는 장애인들의 출근길 기습시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물었다. 질문에 짜증 섞인 느낌이었다. 그 순간, 파노라마처럼 함께 했던 장애 친구들의 비통한 일상이 떠올랐다. 청년 시절 장애인 야학에서 활동한 덕분에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존재들의 삶에 대해 알게 되었다.

 

달걀처럼 뼈가 쉽게 부서져 평생 영화관에 가본 적이 없는 친구, 매일 도뇨관을 삽입해 소변을 빼줘야 하는 친구, 스스로 몸을 뒤집을 수 없어 욕창을 걱정하는 친구, 외출을 할 때면 계단과 10cm 턱을 넘지 못해 단박에 갈 곳을 돌고 돌아서 가야하는 친구, 겨울 거리에서 두 시간 이상 추위에 떨며 휠체어를 실을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를 기다려야 했던 친구 등 중증장애인이 내 친구들이었다.

 

세상에 있지만 마치 없는 것처럼 존재하는 중증장애인의 곁을 들여다보면서 나에게 당연한 일이 그들에게는 생존의 문제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타게 해달라며 휠체어로 거리를 점거하거나, 쇠사슬을 묶어 전철을 멈춰 세우는 장면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그 시위에는 생존의 문제와 함께 “인간의 존엄”이라는 무게가 실려 있기 때문이었다.

 

2001년 오이도역, 2002년 발산역에서 장애인이 목숨을 잃었다. 장애인용 리프트가 추락하는 사고였다. 이 사건은 켜켜이 쌓인 고통이 분출된 계기가 되었다. 2004년 교통약자를 위한 법,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이 통과되어 국가는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설치, 저상버스 도입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미적대는 사이 2017년 신길역에서 또다시 휠체어 리프트에서 장애인이 떨어져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그렇게 20여년 무용(無用)의 법 앞에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외침은 단순하다. 법에 따라 교통약자, 즉 장애인, 노인, 임산부,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 어린이까지 지하철과 버스를 타는데 문제가 없도록 예산을 편성해달라는 것이다. 자유롭고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달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고 늙어 노인이 된다. 아이를 가지면 임산부가 되고 아이를 낳으면 영유아를 동반한 사람이 된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게 되어 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전철역 엘리베이터와 저상버스는 비장애인에게는 ‘편의’지만 장애인에게는 ‘필수’라는 차이가 있을 뿐 모두를 위한 복지인 셈이다. 올리버 색스는 자신이 나이가 들어 쓰게 된 기구들이 모두 장애인 운동의 결과물이라는 것에 놀라며 감사했다.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에는 장애인의 목숨값이 숨겨져 있다.

 

출근길 기습시위의 불편함을 이해한다. 하지만 지금 겪는 당장의 고통에 머물기 전에 잠시 타인의 고통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전철을 타려다 목숨을 잃게 되기도 하는 운명. 처참한 일상과 이를 견뎌온 세월, 그러면서도 안간힘을 쓰며 버티는 이들이 우리 곁에 있다는 걸. 모두 함께 사는 사회를 위해 잠시 불편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이들이 늘어날 때 세상은 달라질 것이다. 연대는 혐오보다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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