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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심우도] 배움 없으면 막말되느니-‘적폐’의 문자학

 

헝겊(巾·수건 건)을 막대기로 치면(攵 또는 攴·칠 복) 너덜너덜해진다. 천 조각과 먼지 날리는 모양, 막대기의 그림이 敝(해질 폐)다. 그 헝겊을 두 손으로 들면(廾·받들 공), 폐단(弊端) 적폐(積弊)의 弊다. 그 敝를 헝겊(巾) 위에 올리면, 폐백(幣帛) 화폐(貨幣·돈)의 幣다.

 

사람 인(人)에 다른 그림이 붙어 굴복할 복(伏)이 되고, 어질 인(仁)도 되는 것처럼 문자(한자)는 그림에서 비롯해 그림의 합체나 변화로 여러 갈래 뜻을 짓는다. 뜻글자 표의문자(表意文字)다. 상(商)나라 때의 갑골문이 바탕이다.

 

그림을 간략하게 한 기호에 소릿값(발음)을 정하고, 영어의 알파벳 같은 기호로 인간의 여러 말(소리)을 적는 것은 소리글자 표음문자(表音文字)다. 발음기호 기능과 문화적 적립(積立)이 합쳐져 소통의 도구가 된다. 한글도 소리글자다. 이집트상형문자가 바탕이다.

 

폐단(弊端)은 나쁜 것이다. 폐백(幣帛)은 제사나 시댁에 올리는 음식이나 비단(帛)이니 좋은(좋아야 하는) 것이다. 발음 같은 ‘폐’의 두 뜻이 하늘과 땅의 차이(天壤之差 천양지차)처럼 크다. 그 차이가 ‘문화적 적립’ 중 하나다. 영어의 라틴어, 한국어의 한자어 역할 같은 것이다.

 

‘오래 쌓인(積) 폐단’ 적폐(積弊)는 치워야 한다. 글머리에서 살핀 것처럼, 한자의 그림은 말샘(어원)이면서 문화현상의 본디다. 한자에서 그림을 읽으면 세상이 보이는 이치다.

 

한 대통령 후보가 문 대통령의 현 정부를 ‘적폐’라며 ‘수사하겠다’고 공언했다. 탁월한 정부가 아닐 수는 있다. 부동산 등의 분야에서 꽤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하다 안 되는 것, 능력이 달리거나 시대의 운수(運數)가 맞지 않아 성과를 못 낸 것을 폐단이라고 하진 않는다.

 

익히 아는, 전(前) 정권들의 적폐세력처럼 도둑질을 했는가? 악의(惡意) 악기(惡氣) 악심(惡心)으로 세상 망치려고 푸닥거리를 했는가? 그 ‘적폐’는 적절하지 않은 단어 선택이다.

 

해진 천을 손에 들어(弊) ‘폐단’의 뜻으로 쓰는 것은 오래된 사회적 약속이다. 헝겊(巾) 하나 더해(幣) 신에게 바치는 제물 ‘폐백’의 폐(幣)로 쓰는 것도 그렇다. ‘어떤 경우를 무엇이라고 부르자.’는 논리학의 ‘조작적 정의’와 흡사하다. 배워 익혀야 이런 교양은 몸에 밴다.

 

윤석열 후보 적폐론의 ‘적폐’ 단어는 현대 한국사회가 쓰는 일반적인 ‘적폐’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과장하거나 오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몰라서 그랬던지. 사회적 약속이나 조작적 정의의 뜻에 비춰 봐도 그렇다.

 

말은 생각(뜻)의 표현이다. 말한 사람의 마음 상태나 생각의 틀을 알 수 있게 한다. ‘바르고 고운 말’이 세상을 바르고 곱게 짓는다. 정치 현장의 공인(公人)의 언어는 교과서다. 공부가 필요하다. 아니면 막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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