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팽소선(若烹小鮮)이라는 사자성어가 있어요.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치대국약팽소선(治大國若烹小鮮)’의 준말인데요, 직역하면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작은 생선을 삶듯이 해야 한다’쯤이 될 거예요. 살이 연해서 부서지기 쉬운 작은 생선을 요리할 때와 같이, 정사(政事)를 다루는 데도 차분하게 기다리며 세심하게 살피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의미를 품고 있대요.
바야흐로 20대 대통령선거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네요. 워낙 ‘비호감 대선’이니, ‘막장 드라마’니 하는 악평이 지배한 선거전이어서 난생처음 보는 험궂은 장면들이 넘쳐나고 있지요. 국민의 마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는 감동적인 비전도 딱히 없고, 시대정신을 표상하는 구호도 없어요. 시종일관 네거티브로 점철된 선거전이 유권자들의 시름만 깊어지게 만든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예요.
그래도, 사뭇 전개되는 팽팽한 진영 대결 구도만큼은 예나 마찬가지인 듯해요. 상대방의 약점만 골라 침소봉대하는 흠집 내기 일변도, 나라 살림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우선 환심을 사고 보자는 식의 포퓰리즘 난무, 정치 수준을 높일 개혁 프로그램 경쟁의 실종 등을 특징으로 정리해도 될 것 같네요. 최선도 차선도 아닌 차악(次惡)을 골라야 하는 괴로운 선거라는 민초들의 비명이 난무하는군요.
그래도 이번 대선을 계기로 한번 들여다볼 만한 개혁과제는 구닥다리 대통령문화의 청산이 아닌가 싶어요. 선거전에서 나타난 왕(王) 놀이 논란에서 읽히듯이 후보들이나 선거캠프 구성원들의 인식은 구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듯해요. 막강한 왕을 옹립하고, 그 그늘에서 화려하게 공신놀음을 하면서 한바탕 누려볼 요량으로 달려든 악착같은 부나비들이 수두룩해 보이거든요.
이제 일주일 후면 누구든, 앞으로 이 나라를 영도해나갈 지도자로 결정되겠지요. 그런데 근년에 나타난 민심으로 볼 때, 이제 제왕처럼 군림하는 대통령이 만기친람(萬機親覽)하면서 전지전능을 착각하는 정치를 했다가는 반드시 실패할 거예요. 여당 후보가 막판에 내세운 ‘정치개혁’ 구호도 그렇고, 야당 후보들의 다짐들도 우선 대통령과 청와대의 과대한 권한을 분산하는 방향이잖아요.
세상은 이미 오래전에 바뀌었어요. 이기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일도, 이겼다고 마음대로 하는 것도 민심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 시대가 됐어요. 욕심부린 만큼 실패할 가능성, 패가망신할 확률이 높아지는 구조예요. 대한민국은 이제 쌀알을 일일이 세어가며 밥을 지어 먹여도 되는 수미이취(數米而炊)의 소국이 아니에요. 우선 민주화가 깊어졌고, 되도록 권력을 분산하여 약팽소선으로 정책들을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도록, 매우 다양한 국민이 주인 노릇을 하는 큰 나라가 됐지요. 차기 대통령은 만기친람의 유혹부터 과감히 떨쳐버려야 할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허튼 영광으로 포장된 처참한 비극이 또다시 잉태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