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은 한 개인에게는 소중한 기억이자 추억이요, 사회나 국가적으로는 귀중한 역사자료다. 우리는 때로 구구절절하게 쓰여진 글에서보다 한 장의 사진에서 당시의 역사를 더 명쾌하게 알 수 있다.
글쓴이는 어렸을 적인 60여 년 전 시골 고향의 큰아버지 댁에 결려 있던 얼굴사진 액자 두 개가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다. 웃는 표정, 안 웃는 모습 두 종류였는데 웃는 얼굴 사진의 기억이 조금 더 또렷하다.
디지털 카메라와 휴대폰이 보편화하기 이전 카메라는 그 집의 잘 사는 정도를 가늠하는 잣대 중 하나였고, 가보와 같이 귀중한 대접을 받았다.
카메라의 역사는 1세대 흑백에서 시작해 2세대 칼라, 3세대 디지털카메라, 4세대 스마트폰 카메라의 길을 걸어왔다.
흔히 ‘카메라의 혁명’으로 불리는 디지털 카메라는 언제, 누구에 의해 발명됐을까?
요즘 디지털 카메라 생산업체로 유명한 곳은 캐논이나 니콘이지만 정작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발명한 곳은 코닥이다. 코닥의 엔지니어였던 스티브 새손(Steve Sasson)은 1975년 12월 새로운 발명품 하나를 만들어냈는데, 그것이 혁신적 발명품이 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바로 세계 최초의 디지털 카메라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이 혁신적 발명품의 크기는 토스트 굽는 기계만해서 지금의 디지털 카메라와는 차원이 다르다. 또 단지 100x100 크기의 흑백 이미지만을 담아낼 수 있었다.
최근 디카 해상도가 1000만 픽셀 운운할 정도로 고해상도인 점에 비해 불과 10000(0.01메가) 픽셀 정도였다고 한다. 촬영된 이미지는 카세트 테입에 저장했으며 한번 촬영하면 약 23초 정도
걸렸다고 한다. 이 제품은 모토롤라의 ADC, 코닥 렌즈, 페어차일드의 CCD 칩으로 구성됐으며 현재의 디지털 카메라도 같은 방식을 이어받고 있다.
미국 우주항공국 나사가 달나라를 가면서 코닥에 필름 없는 카메라를 개발해 달라고 의뢰한 것이 혁명이 시작된 계기로 알려져 있다. 역설적으로, 세계인을 매혹시켰던 최신기술의 뒤안길에서 오랜동안 수명을 이어오던 필름생산업체들은 쓸쓸히 퇴장하기 시작했다.
사진과 관련해 지금까지도 전해오는 일화들이 많다. 한때 ‘허바허바’는 사진관의 대명사였고, 서울 란사진관은 직원 50명, 인천 현대칼라 현상소의 경우 직원만 100명에 달한 적도 있었다.
인천 중구 신포동에 있었던 허바허바사진관 송학선 사장은 연예인들이 줄서서 촬영할 정도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시 오기도 힘든 그야말로 옛날 이야기다.
사진은 무엇을 찍을 것이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 명제는 사진작가나 사진기자 모두에게 그럴 것이다.
신문 방송 보도사진기자들은 역사가 전개되는 최전방에서 사진을 통해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우크라이나-러시아 간 전쟁이 한창인 피비린내 가득한 현장을 목숨을 건채 누비고 있다. 투철한 기자정신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안방에 앉아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이나 사고들의 생생한 장면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것은 이들 덕분이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이들의 직업정신에 찬사를 보낸다.
일본의 다큐멘터리 사진가 구와바라 시세이는 “기록해야 할 역사를 그 시대의 유산으로 남겨두지 못한 사진가는 다만 그 시대를 살았을뿐 한 사람의 방관자에 지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사람들의 삶을 풍성하게,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사진이 꿈 꾸는 세상이 아닐까? / 구재규·세계봉사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