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6.02 (일)

  • 맑음동두천 23.1℃
  • 흐림강릉 18.9℃
  • 맑음서울 23.1℃
  • 맑음대전 23.6℃
  • 구름조금대구 24.0℃
  • 구름많음울산 20.5℃
  • 구름많음광주 23.6℃
  • 구름많음부산 21.8℃
  • 구름많음고창 23.8℃
  • 구름많음제주 22.1℃
  • 맑음강화 22.7℃
  • 맑음보은 23.2℃
  • 맑음금산 23.3℃
  • 구름많음강진군 23.9℃
  • 구름많음경주시 24.1℃
  • 구름많음거제 23.7℃
기상청 제공

자신만의 은신처 찾기…노태호 개인전 ‘레푸기움; 평안의 기술’

은신처, 피난처 뜻하는 ‘레푸기움’, 칼 구스타프 융에게 영감
안양시 ‘신진예술가 지원’에 선정… 16일까지 안양 아트 포 랩

 

자연미술이라는 장르가 있다. 자연에 작품을 만들어 놓고 전시를 거쳐 자연히 그 작품이 사라지게 하는 방식이다.

 

재료는 자연에 존재하는 돌멩이, 나뭇잎, 가지, 흙 등이다. 곤충이 탈피한 흔적도 재료가 된다. 사진 한 장으로 작품이 남으면 작품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

 

안양 아트포랩에서 전시되는 노태호 작가의 ‘레푸기움; 평안의 기술’ 전에서는 자연미술 작품을 포함한 4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레피기움은 라틴어로 ‘피난처’, ‘은신처’를 뜻한다. 자연미술을 작업 방식으로 채택한 노태호 작가는 노자의 도덕경에서 ‘무위(無爲)’의 개념을 중요시했다. 인위적으로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 무위의 개념에 따라 작품은 자연의 일부가 된다.

 

‘환경보호’ 측면에서 자연의 관심을 촉구하는 서양의 ‘생태미술(Ecological Art)’과는 또 다르다. 노태호 작가는 무위의 개념을 중요시해 미술의 초점을 ‘사라짐’에 두었고, 미술 작업의 결과보다는 창작의 실현 과정을 보여주려 했다.

 

그의 작품 ‘이끼와 유목 사이’는 콘크리트에 흙이 쌓아져 있는 형태다. 흙기둥은 아래에 가까울수록 건조한데, 흙을 쌓아 올릴수록 무너지고 다른 나무 가지가 자라는 등 이탈이 일어난다. 위로 곧게 자라는 성공을 향한 삶을 추구하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옷장 속 럼주’는 작가 개인의 경험이 응축된 작품이다. 중국에서 오래 산 작가는 어느 날 힘든 일을 겪고 술을 마셔야겠다고 생각해 옷장 속에 ‘럼’을 사다 놓는다. 막상 술을 마시려고 꺼냈을 때 너무 독해 마시지 못하고 향만 맡았다는 작가의 경험 속에서 시간의 이동을 느낄 수 있다.

 

옷장을 열면 실제 럼을 볼 수 있고, 관객들은 럼의 향을 맡으면서 작가가 되어 볼 수 있다. 작가는 그 경험을 노래로 만들어 보관하고 있는데, 관객들은 노래를 들으며 작가가 당시 느꼈을 허무함이나 허탈감을 느낄 수 있다.

 

 

작가는 이끼와 나무를 주로 사용하는데, 자신이 자라난 곳을 벗어나면 빠르게 죽어가는 이끼와 죽어도 생명력을 잃지 않는 나무를 사용해 작가가 경험한 유학 생활을 표현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무 사이로 새로운 이끼가 드러나는 형태를 통해 해방감을 느끼기도 한다.

 

작가의 ‘은신처’는 체계적이고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균열을 내며 숨을 쉴 공간을 내어주는 안정의 공간이다. 심리학자 구스타프 칼 융에서 영감을 받은 작가는 은신처를 평안의 기술로 확장시켰고, 외부에서 힘든 일을 겪더라도 은신처에서 쉼을 가지면 다시 회복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작가는 은신처의 평안의 기술을 관람객들에게 전달하며 각자 자신만의 ‘레푸기움’을 찾길 바란다고 말한다. 또 ‘이끼 정원’을 통해 레푸기움끼리 관계망을 형성하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사람과 자연이 유기적인 관계에 있음을 보여준다. 은신처끼리 연결 된 모습은 한 마을을 연상시킨다.

 

작가의 미학은 개인이 갖고 있는 방어기제 속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평안을 기술을 찾는 것에 있다. 자신만의 레푸기움에서 평안의 기술을 찾고 자신의 평안의 기술이 어디쯤에 와 있는지 찾아보는 전시는 맹목적인 유토피아를 추구하는 삶에서 벗어나 안정을 주는 위로가 된다.

 

전시 ‘레푸기움; 평안의 기술’은 안양시와 안양문화예술재단이 주최 및 후원하는 ‘2023 안양 문화예술인 지원사업’의 ‘신진예술가 지원’에 선정됐다.

 

전시는 16일까지 진행되며 관람 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다. 전시 기간 중에는 휴무 없이 개방한다. 관람료는 2000원이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