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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달을 보는 즐거움

 

10월의 한낮에 길을 걷는다. 해를 마주하고 풀밭 길을 걸으니 앞산 가을구름 한가롭고 햇살은 다사하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이용의 ‘잊혀진 계절’을 콧노래로 불러본다. 사랑하는 딸이 입시를 앞두고 학원에서 공부 할 때다. 나는 퇴근해 딸을 응원할 겸 미술공부를 하겠다고 스케치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해 가을 10월이었다. 학원 밖 팔달로 네거리 악기점에서는 축음기에 연결된 대형 스피커를 가게 문 밖으로 내놓고서 욕심껏 틀어대고 있었다. 감정이 무뎌질 나이지만 껴안고 사는 슬픔이 만만치 않아서인지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에서, ‘나를 울려요’라는 가사가 가슴에 각인되면서 눈물 대신 꿈을 위한 슬픈 에너지가 가슴에 위로가 되고 힘이 되어주는 역 감정 같은 것을 느꼈다.

 

베토벤은 찬물을 머리에 부어가면서 머리를 일깨워 ‘걸작의 숲’을 완성하고 ‘고난을 통해서 환희로’의 교향곡(운명)을 작곡했다고 한다. 쓸데없이 슬프다고 입버릇처럼 뇌까릴 일이 아니다. 올 테면 오라 나는 용감히 대처하겠다는 예술인 괴테의 정신을 생각나게도 했다. 내게 있는 서러움을 모두 모아 흐르는 강물에 던져버리고 ‘과거를 해방시켜야 미래를 해방할 수 있다.’는 정신이 내게도 필요할 것 같다. 어떤 평론가는 ‘때때로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악이 없는 시대도 존재했는데 역사 철학자들은 행복하고 평화스러운 시대에 대해서는 무관심할 뿐만 아니라 행복했던 시대를 백지 상태로 넘겨 두기도 한다고 했다. 나의 삶과 생활도 그런 점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잘나가거나 자유롭게 살 때는 당연한 것처럼 지냈다는 것이다.

 

삶의 목적이 무엇일까. 때때로 내가 내게 던져보는 질문이다. 철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니지만 맑은 날 강변에 나앉아 있으면 흐르는 강물을 보며 생각하게 된다. 행복일까 성공일까 성공해서 행복하게 산다는 것, 이것이 평범한 생각일 수 있다. 에머슨은 「성공이란 무엇인가」라는 시에서 밝혔다. ‘자주 그리고 많이 웃을 것/ 지혜로운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아이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로부터 인정을 받고/ 못된 친구들의 배신도 참아내는 것/ 아름다운 진가를 알아내는 것/… 작은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이것이 성공이라고 했다.

 

자아 신뢰와 충족에 초점을 맞추고 우주자연의 법칙을 강조한 19세기 미국 사상가요 시인답다. 그는 성공이란 것이 쟁취하기 어렵고 어마어마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가을이 오면 그대의 미소가 아름다웠어요. 창 밖에 앉은 바람 같은 사람아! 이문세의 <나는 행복한 사람>이라는 노래를 가끔 부르곤 했던 그 사람은 가고 세 번째 가을을 맞았다. 그는 ‘겸손은 천하를 얻고 교만은 깡통을 찬다.’는 철학을 마음 속 깊이 간직한 듯 말 한마디 웃음 한 번 실없이 짓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세상 삶을 접을 때도 혼자서 태없이 매듭짓고 떠났다.

 

맑고 고운 햇살 아래서 조선 전기 문신이었던 남효온의 추강냉화(秋江冷話)라는 한문수필을 읽어야겠다. 이 책은 작가가 시화(詩話)와 빼어난 일화(逸話) 등을 모아 엮은 책으로서 그의 문집인 '추강집' 권 7에 수록되어 있는 66편의 이야기다.

 

이어서 달 밝은 밤이면 그 길을 걷고 싶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행복이 있다. 출세의 행복, 재산을 모으는 행복, 명예를 추구하는 행복, 장수의 행복. 이것들은 속세의 본능적인 것이다. 남 보기에는 사소해 보이고 촌스러워 보일지라도 나는 의미가 있는 작은 행복을 찾아갈 것이다. 달 밝은 밤 누군가가 찾아와 창문을 노크한다는 가슴일 때, 소양천 언덕길을 걸을 것이다. 그리고 달을 보면서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과 '까마귀 나는 밀밭'을 상상하며 달과 함께 걸을 것이다. 내 마음 한가로이 편안해질 때까지, 달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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