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석의 작가탐방<7>-전수천의 예술세계
장준석의 작가탐방<7>-전수천의 예술세계
  • 경기신문
  • 승인 2007.04.10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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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美 대륙에 그린 하얀 드로잉의 축제

전수천은 그리 체구가 크지 않지만 생각이 깊고 다부진 예술가이다. 그는 1990년 초에 미국에서 미술을 새롭게 접하게 되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호기심 어린 눈으로 미국의 여러 곳을 보며 그의 예리한 눈은 빠르게 움직였다. 그는 커다란 평지가 끝없이 펼쳐지는 곳, 너무도 거대하고 다양한 문화가 있는 그곳이 미국 땅이라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은 역시 생각했던 대로 만만한 곳이 아니었다.

미국에서의 작업이 전수천에게는 문화적 충격이었다. 서부의 비옥함과 동부의 사막화 등 동서부의 계절적 환경이 조국 대한민국과는 크게 달랐다. 세계 여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미국 역시 자국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므로, 약소국 예술가의 눈에는 대단히 이기주의적인 나라로 보였다. 조금은 위축되기도 했지만 곧바로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그에게 있어 미국은 개척자처럼 기회의 땅이었으며, 그곳에서의 예술은 시작에 불과하였다.

▲ 작가 전수천
전수천은 피가 거꾸로 솟듯이 예술적 충동이 자신의 심장부로부터 꿈틀거림을 느낄 수가 있었다. “음, 미국 땅이라…. 언젠가 이곳에서 나의 예술세계가 펼쳐질 때가 있겠지. 이 거대한 땅을 캔버스 삼아 휘갈기듯이 그림을 그린다면 어떨까. 언젠가는 이곳을 무대로 나의 작품을 만들 거야. 이 광활한 땅이 나의 캔버스가 되는 거지” 야무지고 당찬 꿈은 전수천의 예술가적 끼를 더욱 뜨겁게 달구어놓았다.

전수천은 초등학교 때부터 미술을 좋아했으며,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신나고 즐거웠다. 그의 그림에 대한 애정은 대단하였으며,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너무도 자랑스러워서 겉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자신의 옷에 물감을 듬뿍 묻히고 학교에 나타난 적도 있었다. 이는 훗날 광활한 미국 대륙에 한국의 예술 혼을 불사를 비범한 화가의 출현을 예견케 하는 전주곡이었다.

그는 풍족하지 못한 가정에서 자랐고, 부모는 ‘중학교를 가지 말고 집안일을 도우라’고 했다. 어린 나이에 그의 마음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졌다. 삼일 동안 밥을 먹지 않고 울었다. 그는 공부를 하고 싶었기에 중학교부터는 100% 혼자 힘으로 다녀야 했으며, 고등학교도 검정고시로 마쳤다. 가난한 전수천의 미국 유학은 항상 변화를 갈망하던 그의 도전 정신에서 비롯됐고, 이것이 미국 유학에서도 드러났다. 땅을 파거나 페인트를 칠하며 도로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면서 약소국의 서러움을 느꼈다. 그렇지만 좀 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예술과 관련된 아르바이트는 조금도 하지 않았다. 예술과 자신은 하나였기에 더욱 그러했고 자존심 문제이기도 했다.

▲ 명상의 공간
전수천의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20여 년을 포기하지 않고 보내는 동안 영원한 꿈으로 끝날 것만 같았다. 그러다가 2005년에 한국 정부와 대기업 등에서 10억여 원의 작품 제작비를 지원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정부의 계속되는 의문과 추궁 및 행정상의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왜 하필이면 미국을 기차로 관통해야 하는가.” 철도를 사용하기 위한 허가도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철로와 철로 사이가 좁은 것도 큰 걸림돌이 되었다. 가장 큰 염려는 열차에 천을 씌우고 120~130km로 달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만한 속도로 달리는 열차에 덮여진 천이 받는 바람의 압력은 2500km 이상 속력을 내는 경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불이 안 붙는다는 보장도 없었다. 혹 누군가가 라이터 불로 장난이라도 한다면 최악의 경우 미국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따라서 방염(防炎) 약품으로 처리된 천을 덮고 샌디에고에서 시카고까지 다섯 시간 이상 시험 운행을 하였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백색 천으로 덮여진 15칸의 열차는 멋진 위용을 자랑하였다. 전수천이 그토록 꿈꾸었던, 이 세상에 단 하나 밖에 없는 멋진 ‘한국의 붓’이었다. 이제 저 광활한 미국 대륙을 캔버스로 한 멋진 백색 드로잉의 축제만을 남겨 놓은 순간이었다. 이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렸던 순간인가!

전수천은 기대감과 긴장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백색은 우리 한민족의 상징이다. 백색은 자연의 기본색이자 모든 환경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백색은 모든 회화와 드로잉의 기본이다. 기차를 백색으로 덮는 것은 완벽한 드로잉이자 한민족의 정신이 담긴 것이야.”

2
▲ who knows the value
005년 9월 14일 드디어 전수천의 한국의 붓은 미 대륙을 캔버스 삼아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의 예술적 상상이 작품으로 승화되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3천마일이라는 광활한 대지를 팔일 동안 달리면서 전수천의 한국의 붓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거대한 대지를 끝없이 달리는 예술 열차는 한국인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시시각각으로 다른 냄새와 색채를 뿜어내면서, 중부에서 뉴멕시코, 애리조나로 이어지는 광활한 내륙을 달리며, 그의 붓은 아름다운 백색의 향연을 시작하였다. 윌리엄에서 킹멘으로 이어지는 평야와 구릉을 지나면서 그의 거대한 붓에서는 끝없이 이어지는 선의 영원성이 표현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그림을 그린 화가 전수천. 그가 미 대륙을 지나는 곳곳은 아름다운 그림으로 수놓아졌다. 삶의 흔적을 담은 열차로 그려지는 그림은 곧 전수천이 생각하던 움직이는 예술이었다. 열차의 움직임은 곧 움직이는 드로잉이자 움직이는 선이었다. 대지가 끝없이 펼쳐지듯 그의 예술 세계는 오늘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이 여과 없이 담겨있다. 한국인의 정신은 그가 광활한 미 대륙에 남긴 변화무쌍한 선 안에서, 인종의 차별을 넘고 지역의 한계를 넘어 모든 민족과 세계가 하나가 되는 사랑의 그림이 된 것이다. 가슴 뭉클한 서사적 감동이 앞으로도 전수천의 작품을 통해 펼쳐지기를 기대해 본다. /글=장준석(미술평론가)



전수천 (1947~)

무사시노 미술대학, 도쿄
와코 대학 예술학과 및 동대학원, 도쿄
프랫 인스티튜트, 뉴욕
1995 베니스 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국민문화훈장 은관 수상
1996 일신미술상 수상
1997 최우수 예술인상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교수

2007 드로잉 자료展, 서울문화재단 (서울)
2006 바코드로 오브제 읽기, 가나화랑 (서울)
선 드로잉, 울란바트로 국립공원 몽골리아
2005 전수천의 움직이는 드로잉, 뉴욕에서 로스
앤젤레스까지
자연의 지오메틱칼 오브제 드로잉 전, 성산
일출봉 (제주)
2004 전수천의 시간들, 대구MBC M갤러리 (대구)
2006 풍경화, 광주비엔날레 (광주)
2003 real time & different real time, 갤러리헬
호프, 프랑크프르트
2002 인간의 모습을 찾아서, 의정부 예술의 전당
특별초대전 (의정부)
2000 시간 속의 현실, 랑도우스키 미술관 (파리)
사람의 얼굴, 가나아트센터 (서울)
1997 토우 그 한국인의 정신, 노스크버그벅스 미
술관 콩스버그 (노르웨이)
사유의 공간, 조선일보 미술관 (서울)
1996 토우 리 캐스트, 헌팅턴 갤러리 메사추세츠
주립대학 (보스턴)
명상의 공간, 상파울로 비엔날레 아시아 대표
1995 mother land,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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