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석의 작가탐방<8>-임립 의 예술세계
장준석의 작가탐방<8>-임립 의 예술세계
  • 경기신문
  • 승인 2007.04.1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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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美’ 세계로 이끈… 예술 외교관

2006년 대전구장, 한국프로야구 코리언시리즈 준 플레이오프 개막전에서 낯익은 한 미술인이 야구공을 던진다. 나이 예순 줄에 멋지게 시구를 하는 화가 임립. 그가 던진 공은 멋지게 글러브에 말려들어갔다.

2006년 대전구장, 한국프로야구 코리언시리즈 준 플레이오프 개막전에서 낯익은 한 미술인이 야구공을 던진다. 나이 예순 줄에 멋지게 시구를 하는 화가 임립. 그가 던진 공은 멋지게 글러브에 말려들어갔다.

화가가 코리언시리즈에서 시구를 한다는 게 흥미롭기도 하지만, 한국 미술사에서 보기 드문 모습이기도 하다.

필자는 임립을 만나러 가면서, 그가 조금은 외로운 예술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자신은 인덕이 없는 사람이라고 푸념을 하던 모습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다. 나는 예술가의 길이 결코 쉽지만은 않은 길이라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다.

순수하고 깨끗한 심성과 무한한 상상력이 필요한 곳이 이곳 미술계이지만 만만치 않은 질시가 끝없이 뒤따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는 선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화가로서의 진로를 택하고 시골을 떠났다. 서울에서의 삶은 춥고 외로우며 고달픈 것이었지만 모진 고생 속에서 더욱 성숙해질 수 있었다. 그는 어려운 일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단단해져 갔다.

임립은 작업실만을 지키는 화가가 아니며, 남다른 강인한 추진력과 리더십 및 의지를 지니고 있다. 온갖 질투와 비방에도 꿈적 않고 공주국제미술제를 이끈 지가 벌써 5년째이다.

그 동안 여러 국가에서 많은 화가들이 초청되었고, 공주와 대전을 비롯한 중부 지역의 문화적 갈증을 해소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자신의 고향인 충남 계룡산 자락에서 펼쳐진 국제미술제는 외국에서 온 많은 화가들을 탄복시키고 말았다.

▲ 작가 임립
“오 원더풀! 이번 국제전의 축제는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외국인들의 입은 다물 줄을 몰랐다. 그들은 아름다운 산을 둘러싸고 내려앉은 임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열린 공주국제미술제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화가 임립은 국가적으로도 치르기 힘든 명실상부한 국제적 미술제를 규모 있는 미술제로 변모시켜가고 있다. 그는 이처럼 굳은 의지의 화가이자 강단이 있는 예술행정가이다.

한국의 미술을 세계의 미술과 화합시켜야만 열악한 한국미술을 더욱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질시와 비난을 극복하면서 쉼 없이 밀어붙인 결과라 할 것이다. 더욱이 공주국제미술제는 한국의 독특한 민속놀이를 미술과 융화시켜 한국의 문화와 미술의 우월성을 외국의 미술인들에게 느끼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는 곧 한국 미술의 또 하나의 비상이라 할만하다.

교육자이자 화가로서 국제미술제를 주도하는 임립의 저력은 공주의 한 농촌에서부터 꿈틀거리기 시작하였다. 임립은 산골에 살았으므로 시오리 이상 걸어서 초등학교에 다녔다. 하교 길에는 산토끼를 쫓거나 메뚜기와 잠자리 등에 시선을 빼앗기기도 하였다. 어느 때는 아름다운 들풀들과 꽃들 속에 흠뻑 취하여 그들과 하나가 되기도 하였다.

육남매의 막내로 어머니의 정을 듬뿍 받았던 임립은 남달리 의지가 강했고 공부도 썩 잘하였다. 크레파스가 귀했던 그 시절에 둘째 형수님이 사주신 크레파스를 신주 모시듯이 하면서 아껴가며 그림을 그렸으며, 그림을 너무 잘 그렸다는 선생님의 극찬을 듣곤 하였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지요. 예술가로서 타당한 말이 아니겠어요. 저 역시 이를 바탕으로 하고 있어요. 농촌에서 자랐기 때문에 특히 그러하지요.”

시골의 그을린 아궁이를 보면 뭉클한 감동을 느낀다는 임립은 현저하게 추상적이거나 모사적인 자연주의적 그림에 그다지 호감을 갖지 않는다. 그의 그림은 새로운 미메시스적 구상으로서, 존재하는 대상에서 그 외적 형태를 가져오더라도 작가의 손에 의해 전혀 다른 또 하나의 생명체로 탄생되는 것을 주요한 이슈로 하고 있다.

이것은 이전의 일루젼 회화와는 다른 것으로서, 변모하는 인간과 오브제를 투영시키는 심적 표현의 회화라 할 수 있다. 그가 즐겨 다루는 한국의 토속적 이미지와 정신을 담은 소재들도 이에 해당된다. 이는 어린 시절의 추억을 새롭게 이미지화 시킨 수준 높은 구상이라 생각된다. 천진난만한 동심의 세계를 회복시켜주는 교량자 역할을 한 것이다. 잃어버린 마음의 고향을 찾아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기에 그의 그림은 동양과 서양의 범주를 넘어 지극히 인간적인 향수의 세계를 좆아 간다. 마치 자신을 그토록 아껴주고 사랑했던 어머니의 품을 간직하듯이 그의 그림은 정감이 있고 사랑이 넘친다. 그러기에 그의 바탕은 겸손하고 마음이 여리다. 자신의 그림을 특별하게 내세우려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

▲ 수중지대 (165×67cm) 재료 mixed media(2007년作)
그는 “그냥 붓을 들고 마음에서 가슴으로 그림을 그려요. 영감도 주어진 노력에 의해서 얻어지죠. 오십년 그림을 그렸는데 아직도 알듯 말듯 해요.”라고 자신의 예술세계를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림을 그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화가로 살아남기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기에 어떤 화가들은 자신의 위치를 잃지 않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다. 임립 역시 노력을 강조한다. “예술은 누가 더 노력을 하느냐에 달려있어요. 열심히 부지런하게 그림을 그리는 게 화가가 가야할 길이라고 생각해요. 그림은 열심히 매일 그려야 합니다. 재주 있는 사람은 금방 그려지거든요.

그러나 그런 그림은 오래가지가 않아요. 고흐도 다작을 했어요. 몰입을 한 거지요. 자기 재주만 믿고 그린 그림은 사람을 속일 수야 있겠지만 나중에 오랜 시간 뒤 역사가 보면 알 수 있을 거예요.”

그는 색 가운데서도 가장 사용하기 어렵다는 흑색을 자주 사용한다. 흑색을 잘못 사용하면 자칫 그림이 탁하게 되고 버리기 십상이다. 그러나 임립은 그림을 본격적으로 그리면서부터 아궁이나 굴뚝 혹은 담벼락의 그을림에서 진한 감흥을 얻는다.

한국의 먹색과 같은 깊이 감을 자신의 작품을 위해 찾고 또 찾는 것이다. 또한 그는 항상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나의 체질 속에 한국인의 정신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으로 해서 서정미 넘치는 한국의 이미지와 체취가 물씬 풍기며, 자연에서의 귀의와 불가(佛家)에서의 윤회설(輪廻說) 같은 상징성을 나타내고자 합니다.”

한국인만이 그려낼 수 있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 임립은 우리 시대의 깨어있는 몇 안 되는 예술가 중 한 사람임에 분명하다./글=장준석(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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