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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석의 작가탐방<12>-서세옥의 예술세계

 

강직한 선비, 큰 그림을 그리다


모름지기 화가는 말보다는 그림이지요…
화가는 자신을 진솔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그래서 첫째가 절대 해방, 둘째도 절대 자유입니다


서세옥은 널리 알려져 있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원로 작가 중 한 사람이다. 필자가 서세옥의 작품과 약력을 보고 화단을 이끄는 중진 작가라고 생각했던 때가 미술 대학 1학년 때였다. 참으로 오랜 시간 동안 한결같은 길을 걷고 있는 작가인 것이다. 작가와는 나이 차이가 많고, 학연 등도 없어서인지 화랑에서 가벼운 인사나 짧은 이야기 정도를 나누었던 게 전부이다. 그렇지만 그 동안 많은 지면과 방송매체를 통해 서세옥의 작품을 보아왔으므로 몇 번은 만났던 것처럼 느껴졌다.

 

그 동안 주변에 있는 미술인들에게서 서세옥에 대해 자연스럽게 들었던 이야기도 많았던 터라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커져갔다. 작년이던가! 덕수궁 미술관 서세옥 초대전에서 작가를 만났었다. 여든을 넘어선 고령에도 불구하고 빈틈이 없어 보였으며,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이 느껴졌다. 화랑에서 잠깐 동안 대화를 나누면서 ‘한번 집으로 놀러 오라’던 말에 ‘꼭 한번 뵙겠습니다’ 라고 했던 약속을 떠올리며 자동차에 올랐다.

서울 성북동 작가의 작업실까지는 네비게이션에 의지해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몇 번의 통화 후에야 비로소 단아하면서도 멋지게 생긴 한옥 앞에 주차할 수 있었다. 듣던 대로 보기 드물게 잘 조성된 정원과 많은 괴석들이 빼어난 한옥과 한데 어우러져 한국 전통 가옥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마치 작가의 혼이 그대로 담겨있는 듯하였다. 어려서부터 수만 권의 책과 함께 살면서 다양한 종류의 책들을 읽었다는 서세옥의 서가에는 많은 책들이 있었다. 그에게서는 외골수적인 학자 같은 냄새마저 풍겨져왔다. 그의 단박한 그림과 더불어, 소동파가 말한 ‘시서화일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린다는 느낌도 들었다.

작가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야기해달라는 필자의 말에 조금은 부담을 느끼는 것 같았다. 말하는 게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는 적합하지 않다고 하면서 소동파의 예술가적 삶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였다. 거침없이 나오는 예술에 대한 이야기에는 문기가 서려있어 흥미로웠다. 동정호를 유람하며 그림 이야기를 나누던 소동파나 미불, 사공도 등이 떠올랐다. 미술에 몸담은 이후 모처럼 맛보는, 서기(書氣)와 문기(文氣)가 한데 어우러진 화가와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끄러운 사람이 떠드는 경우가 많아요. 아무 쓸모가 없어요. 모름지기 화가는 말보다는 그림이지요. 나는 남다르게 많은 책을 보았어요. 그 결론은 백 권의 책이 있으면 그 중 구십구 권은 쓸모없는 책이라는 거예요. 잘못된 것을 진리처럼 착각하고 베끼는 경우가 많아요. 자기 이야기가 없어요. 이처럼 잘못된 책은 자기도 남도 해치는 것이에요. 글도 마찬가지죠. 그 진실을 잘못 전달하고 왜곡시키는 게 허다합디다.” 오랜 세월 그림과 더불어 책 읽기를 즐겨하면서 터득한 노화가의 뼈있는 한 마디였다. 글 쓰는 것을 주업으로 하는 필자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글은 사람을 움직일 수 있는 큰 힘을 가질 수도 있지만, 그만큼 책임이 뒤따른다는 생각을 필자도 가끔씩 하였던 터라 더 공감이 되었다.

서세옥은 우리 근대 미술사에 더없이 훌륭한 족적을 남긴 김용준, 길진섭 등과의 만남을 통해 그림에 입문하게 되었다. 김용준과 길진섭은 비평과 그림을 함께 하면서도 당시의 여느 작가들과는 행보가 무척 다른, 투명하고 선이 굵은 화가들이다. 김용준의 글은 감각적이면서도 힘이 있어 많은 화가들에게 어필하였고, 길진섭은 길선주 목사의 자제로서 이성적인 평문으로 뛰어난 글 솜씨를 드러냈다. 서세옥을 어려서부터 책벌레로 여겼던 길진섭은 어느 날 김용준을 그의 그림선생으로 추천해주었다. “자네 말이야! 자네한테 꼭 맞는 선생이 있는데 한번 만나볼 텐가? 자네 책도 많이 읽었고, 자네 글 쓰는 것 보니까 그냥 쓰는 정도가 아니고 마치 전문가가 쓰는 것 같아.” 길진섭의 눈에 서세옥은 예사롭지 않은 예비 화가였다. 그의 화가로서의 길은 운명과도 같았을지도 모른다. 서세옥은 나중에 통일이 되면 북으로 간 이 두 분의 선생을 꼭 찾아뵙겠다고 한다.

 

첫눈에도 서세옥의 수묵 그림들은 문기가 흘렀다. 실제로 그림에 나타나 있는 것만큼이나 그의 생각은 자유스럽다. 필자가 보기에 그 자유스러움은 노장(老莊)적인 사유에 가깝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서세옥에게는 자신만이 가질 수 있는 자유로운 철학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는 이러한 자유스러운 생각으로 인해 기존의 화단으로부터 많은 질시와 비난을 받았던 때도 있다. 그러나 우리 미술의 본성을 찾고자 하였으므로, 보이지 않게 진행되는 이러한 질시에 아랑곳하지 않았던 것 같다. 예술가적 심성에서 표출되는 강한 문기만큼이나 강인한 추진력과 응집력 및 의지가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은 서세옥의 점자 추상과 인간 시리즈로 더욱 빛을 발하지 않았나 싶다.

작가와의 만남은 좋은 선배를 만나 오랜만에 맛보는 풍요로움과도 같았다. 화가의 삶에 대한 그의 인생철학과도 같은 말을 되새기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가는 자기 자신을 진솔하게 표현해야 한다. 그림뿐만 아니라 내 삶, 산다고 하는 자체도 집착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무엇에 자꾸 매달리는 것에서 해방되어야 한다. 그 때는 더 큰 것을 내가 수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늘 얘기합니다만, 내가 손에 쥐고 놓지 않고 있으면, 이보다 더 엄청난 보물이 있어도 못 잡는단 말이야. 이것을 놓았을 때는 모든 것을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 이겁니다. 예술에서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래서 첫째가 절대 해방이고, 둘째도 절대 자유입니다.” /글=장준석(미술평론가)

[약력]
1950년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졸업
서울대학교 교수 역임

[개인전]
2005년 국립현대미술관(덕수궁미술관) 서울
2003년 비줏수까이미술관, 동경서세옥 초대전, 의제미술관
2000년 서세옥전, 광주비엔날레 본전시 특별전, 광주
1997년 갤러리 현대, 서울 바젤아트페어, 바젤, 스위스
1996년 갤러리 현대, 서울휘약, 파리, 프랑스
1989년 현대화랑, 서울
1983년 퍼시픽아시아박물관, 파사디나, 캘리포니아, 미국
1979년 우에다화랑, 동경
1974년 현대화랑, 서울
1971년 산정 서세옥 도화전, 신세계화랑 서울

[작품소장]
기당미술관, 제주
고려대학교박물관, 서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대영박물관, 영국, 런던
대전시립미술관, 대전
로드아일랜드 스쿨 오브 디자인박물관, 온타리오, 캐나다
버건미술관, 버건 카운티, 뉴저지, 미국
불란서 문화성, 팔, 프랑스
서울대학교 미술관, 서울
선재미술관, 경주
연세대학교 박물관, 서울
원광대학교 미술관, 이리
퍼시픽 아시아 박물관, 파사디나, 캘리포니아, 미국
원광대학교 미술관, 서울
호암미술관, 용인
후꾸오카 미술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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