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석의 작가탐방<17>-한진섭의 예술세계
장준석의 작가탐방<17>-한진섭의 예술세계
  • 경기신문
  • 승인 2007.06.19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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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작품들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내 작품이 돈 많은 사람들의
거실이나 정원을 꾸미는 데만
쓰이는 것을 볼 때면 속이 상해요.
돈이 없거나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들도 함께 보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무심한 돌에 땀방울 스며 생명이 되다… 돌의 연금술사

얼마 전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돌을 쪼아 동물의 형상을 만든 조각전이 열렸다. 자동차를 운전하는 말, 까치 호랑이, 돼지 등등 재기가 넘치는 동물 형상들이 꽤 넓은 전시장에 자리하여 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조금은 귀여우면서도 밝은 모습의 동물들과 마주한 사람들의 표정은 꽤 즐거운 듯하였다. 다른 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흥미진진함이 흐르고 있었다. 귀여운 동물 조각들의 주인이라 할 수 있는 한진섭의 표정도 이들 동물들과 함께 신나보였다.

작가 한진섭은 돌을 쪼아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선사하는 감각이 있는 돌 조각가이다. 그는 조각을 한 이래 돌만을 고집하며 우리가 전혀 생각지 못한 감흥을 돌 속에서 연달아 만들어내는 재주꾼이다. 또한 자그마한 체구이지만 거칠고 단단한 돌을 상대하다 보니 아마도 세졌을 법한 근력으로 훌륭한 조각품을 창조하는 다부진 작가이기도 하다. 나이에 비해 동안(童顔)인 듯하면서도 돌처럼 깊고 담담하며 무미(無味)하고 묵묵할 듯한 그의 얼굴에서는 타고난 돌조각가의 면모가 느껴진다.

한진섭의 작업장은 경기도 안성 미리내성지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천혜의 돌 작업 공간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그 곳을 산이 ㄷ자형으로 감싸고 있다. 필자는 풍수에 대해서 문외한이지만 작업장을 둘러싼 산들이 겨울에 찬바람을 막아주고 여름에는 시원한 공기를 불어넣어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비가 이천여 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작업장은 푸른 잔디로 덮여있었는데, 그의 돌 작품들이 거기에 우직스럽게 서있어서 작품을 감상하는 데 더없이 좋은 배경이 되었다. 작가의 안내로 실내에 들어서자 돌로 만든 테이블이 반겨주었다. 작은 방처럼 생긴 공간에도 돌로 만든 돌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장의 실내는 장식대를 비롯한 거의 모든 게 돌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의 작업 공간이 있는 진입로 마을 입구에는 돌로 만든 함박웃음의 농부가 서있었다. 작가가 왜 그 곳에까지 그러한 돌 작품을 두었는지는 흥미로운 화젯거리가 되었는데, 작가의 말을 듣고 그 연유를 알게 되었다. “내가 만든 작품들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보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내 작품이 돈 많은 사람들의 거실이나 정원을 꾸미는 데만 쓰이는 것을 볼 때면 속이 상해요. 돈이 없거나 교육을 많이 받지 않은 사람들도 함께 보고 즐겼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한진섭은 자신의 작품이 돈 있는 몇몇 부유층의 전유물이 되기보다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기를 원하였다.

그래서인지 한진섭의 작품은 현대 조각처럼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다. 그의 작품은 추상성을 띤 작품이라도 대개가 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작가의 작품은 어떤 형상을 표현한 건지 알 수 없는 경우에도 따뜻한 인간미가 흐르며,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한진섭은 아이처럼 심성이 여리면서도 감수성이 남다르게 발달한 특이한 인성의 소유자라 여겨졌다.

▲ '행복한 하늘이' 대리석 96×53×100㎝/2006년
그의 이러한 성품은 예술적인 기질이 농후하며, 이는 곧 작품을 하는 데 특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힘으로 발산되고 있었다. 그가 오직 돌만을 고집하는 것도 순수함이 예술성과 하나로 융화되어 흐르는 예술가적 기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에게는 아이와 같은 순수함과 여린 심성이 내면에 무의식적으로 흐르고 있는 듯했다.

신실한 가톨릭 신자이기도 한 그의 가톨릭 성향의 작품도 주목할 만하다. 그는 어느 날 강원도 원주의 한 신부로부터 성당 신축 조형에 함께 참여할 것을 제안 받았다. 이에 그는 여러 가지로 바쁜 환경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하는 작업에 대해 일체 간섭을 받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하였다. 한진섭의 독특한 천주교적인 조형물이 원주 대화성당을 한국적인 정서가 물씬 풍기는 독특한 성당으로 변모시켰다.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님 시리즈와 독서대, 제대(祭臺), 감실 등에서는 유럽의 어느 성당에서도 볼 수 없는 우리의 정서가 물씬 풍기게 된 것이다. 여기에 변승훈, 김남용의 작품들이 가세하여 원주의 대화성당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훌륭한 우리 감성이 흐르는 성당으로 역사에 길이 남게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정서와 잘 맞는 한진섭의 작품은 서양의 단순한 조각과는 달라서, 비구상적인 작품들에서도 된장국 같은 구수함이 흐른다. 차갑기만 한 한낱 돌들이 일단 그의 손을 거치면 따스한 온기를 지닌 표정 있는 생명체가 된다. 한진섭의 작품에는 서산의 마애불처럼 온화하면서도 다소곳한 느낌이 있다. 그것은 한진섭만의 순수함과 타의 추중을 불허할 정도로 많은 시간의 작업량으로부터 얻어진 산물이다. 무심한 돌에 작가의 땀방울이 점차 스미면서 숨을 쉬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의 작업장 안팎에 있는 작품들은 저마다 어떤 느낌을 지니고 있다.

▲ '가득한 사랑' 대리석 130×48×150㎝/2007년
한진섭이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는 작업실 내의 또 다른 공간에는 작가의 초기부터 최근까지의 다양한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추상성이 농후한 작품으로부터 누가 보아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구상 작품까지 각각 그 나름의 독특한 면모를 자랑하고 있었다. 일상에 요긴한 의자와 테이블 및 기타 여러 형태의 작품들은 그가 다양한 작품세계와 접해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는 이태리에서 조각을 공부했음에도 ‘우리 식으로 해석해 내는 힘을 기르고 싶다.’고 하였다. 우리의 미술은 국수주의적이어서도 안 되겠지만, 해바라기나 갈대처럼 정체성도 주체성도 없이 무비판적으로 서양미술만을 좇아가서는 안 될 것이다. 분명한 우리의 언어가 있는 한진섭의 작업세계는 앞으로 더 좋은 우리의 미감을 찾아낼 것으로 기대된다./글=장준석(미술평론가)

[약 력]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 졸업
홍익대학교 대학원 조각과 졸업
이탈리아 Carrara 국립아카데미 졸업

[수 상]
이탈리아 Carrara 국제조각심포지움 1등상
이탈리아 Fannano 국제조각심포지움 특별상
프랑스 Digne 국제조각심포지움 3등상
일본 하코네 야외미술관주최 로댕대상전 우수상
이탈리아 까라라 국제조각심포지움
(이탈리아 베로나 축구경기장 상징 조각물로 선정)
목우회 공모전 대상
93 오늘의 한국미술전 우수상
이천 국제조각심포지움 3등상
제2회 미술세계작가상

[개 인 전]
제1회 개인전 진화랑
제2회 개인전 Astrolabio화랑, 로마
제3회 개인전 La Pantera화랑, 피사
제4회 개인전 진화랑
제5회 개인전 가나화랑
제6회 개인전 가나화랑
제7회 개인전 가나화랑
제8회 개인전 가나아트갤러리
제9회 개인전 원주 대화성당
제10회 개인전 가나아트갤러리
제11회 개인전 가나아트갤러리

[작품소장]

이탈리아 Fannano 시청
이탈리아 Teulada 시청
프랑스 Digne 시청
프랑스 대통령궁
이탈리아 Verona 스타디움
프랑스 Toulouse 미술관
이탈리아 Pietrasanta 시립모형미술관
일본 하코네 야외미술관
호암미술관
아라리오미술관
LG빌딩 여의도 본사
남해군 조각공원 외 여러 곳에 작품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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