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대탐험] 6.훼손되는 고구려 유적지
[고구려대탐험] 6.훼손되는 고구려 유적지
  • 고구려문화유적탐사단
  • 승인 2008.01.16 20:09
  • 댓글 0
  •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군총·광개토태왕릉 등 보존상태 엉망
중국 관광지 개발만 눈독 관리감독 소홀

고구려는 700년 동안이나 중국을 위협한 위대한 ‘성의 나라’이다. 중국 내 강변을 끼고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는 곳이면 여지없이 고구려성이 존재하고 있다.

지형을 최대한 이용한 위치 선정과 자연절벽을 이용한 방어위치 선정, 옹성과 치를 비롯한 체계적인 방어구조물 등은 한마디로 천하의 요새, 바로 그 것이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무너지고, 허물어지고,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 있지 못한 고구려의 성벽이지만 당대의 어느 누구도 이러한 고구려성을 넘지 못했다.

특히 고구려성은 중국과의 끊임없는 전쟁을 통한 승리의 영광과 패배의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700년 고구려 역사의 증인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그 700년 역사를 증명하는 증거이다. 이러한 증거는 우리 역사상 가장 자랑스러운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태자하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말이 없지만 1천500년 전 이곳에서 사선을 넘나들며 천하를 풍미했던 고구려인들의 기상과 말발굽 소리는 우리들의 마음 속에 깊이 자리잡아 부활의 시기를 고대하고 있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고구려 석성의 기원
2.천혜의 요새 봉황산성-환도산성
3.평지토성 국내성-하고성자성
4.국내에 알려지지 않은 고구려 유적지
5.역사왜곡의 현장
6.훼손되는 고구려 유적지
7.연천 호로고루성, 당포성, 은대리성
8.구리의 아차산성

고구려 문화유적지를 탐사한 결과 상당수 유적들이 이미 사라졌거나 훼손되는 등 중국의 관리감독이 매우 소홀한 것으로 나타났다.

고구려의 수도였던 집안은 도심 전체에 고구려 고분이 산재해 있지만 주민들이 과수원을 개발하기 위해 마구 파헤쳐 상당수가 사라졌으며, 국내성의 긴 석벽은 오래전에 아파트단지의 지반으로 전락했고 무너진 성벽은 원형은 커녕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상태다.

특히 대륙 곳곳에 세워진 고구려성의 성벽은 인근 주민들이 집을 개보수하면서 담장으로 사용하고, 광개토대왕릉이나 장군총 등은 체계적인 관리가 이뤄지지 않아 관광객들의 발길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중국은 드넓은 대륙을 지배했던 고구려의 유적지를 관광지로 개발하는 데만 눈독을 들일뿐 보존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 10월 고구려 왕들이 하늘에 제사지내던 국동대혈(國東大穴) 장상애(長想愛).
인간의 탐욕과 무관심에 고구려 뿌리가 무너지다

◇장수태왕릉(장군총)

광개토태왕의 맏아들인 거련(巨連), 즉 20대 장수태왕의 무덤으로 알려지고 있는 장군총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고구려 고분 중 가장 크고, 완벽한 형태로 남아 있다.

동방의 피라미드로 격찬받는 장수태왕릉은 화강석으로 축조됐으며 방단(方壇)을 계단형으로 쌓았다. 고분의 높이는 14.2m, 한 면의 길이는 31.58m로 면마다 거대한 받침돌이 무덤을 받치고 있다. 어른 키보다 큰 받침돌은 12개로 알려졌으나, 지금은 11개가 남아 있다. 장군총이 1천500여년이 지나도록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는 것은 돌과 돌을 끼워 맞춰 서로 들여쌓기를 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2004년 지안의 고구려 유적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왕릉 앞에 잔디와 키 작은 나무로 세계문화유산 표지를 만드는 등 외형을 잘 조성해 놓았지만 릉의 보존상태는 엉망이다.

왕릉은 한면에 3개의 큰 석등이 받치고 있으나 왕릉 뒷편은 석등이 2개 뿐이어서 모서리 부분의 돌들이 조금씩 무너져 내리고 있는 상태다.

특히 분묘를 이루는 돌 위에 나무 기둥을 세우고 계단을 만들어 관광객들이 상층부에 있는 묘실 내부까지 들어갈 수 있도록 해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시신이 묻혀 있는 무덤 위에 올라가는 것은 불경스런 일일뿐만 아니라 수 많은 사람들이 무덤 위를 오르내릴 경우 하중에 못이겨 무덤이 점점 아래로 내려앉지나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묘실 갈라진 벽면은 습기로 인해 곰팡이가 끼고 먼지도 가득 쌓여 있었으며, 관을 덮은 유리보호대 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벌레들이 죽은채 듬성듬성 놓여있었다. 문화재보호국 직원이 묘실 입구를 지키고 있었지만 문화재 관리보다는 관광객들의 사진촬영만을 감시하고 있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문화재를 이렇게 소홀하게 관리한다니 할말이 없었다.

◇광개토태왕릉

광개토태왕릉은 장수태왕릉에 비해 훨씬 크나 안타깝게도 원형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무너져 내린 상태다.

묘 자체는 거의 붕괴되어 기단과 반파된 제2방단의 일부만 남아 있었다. 기단 각 변의 길이는 약 66m이고, 큰 석재 7매를 쌓아 축조했는데 위로 올라가면서 석재의 높이를 줄이고 방단의 내부는 막돌과 강돌로 채웠다.

기단의 각 변에는 5개의 호석(護石·릉의 기단을 받쳐서 보호하기 위한 돌)을 세웠는데 너비가 약 1.8m, 높이가 약 6m인 자연석이다.

▲ 광개토태왕릉의 내부 모습.
구조는 동서 2.82m, 남북 3.16m의 방형인 현실(玄室)안에 2개의 관상(棺床)이 놓여 있다. 관상은 전벽·후벽 위에 3단으로 괴었고, 그 위에 뚜껑돌로 동서 지름 4.55m, 두께 0.8m나 되는 큰 화강암 판석을 덮었다.

태왕릉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니 장수태왕릉의 입구가 확연히 보였고, 석실 안의 석판 머리 방향이 53도 북동쪽으로 놓여있었는데 이는 장수태왕릉과 연결하면 바로 백두산 천지와 만난다. 광개토태왕릉도 이미 토대가 소실돼 상당부분 내려앉은 상태로 관리가 허술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중국은 광개토태왕릉이 거의 무너지다시피 한 상태인데도 장수태왕릉과 마찬가지로 무덤 위에 말뚝을 박고 계단을 만들어 꼭대기 묘실까지 관광객들이 들어갈 수 있도록 해놓았다.

계단 양쪽엔 무너져 내린 큰 돌과 자갈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도굴의 흔적도 눈에 띄었다.

탐사단이 찾은 날이 겨울이고 관광객이 적어서 인지 10여년만에 처음으로 현실 내부를 자세히 카메라에 담을수 있었다.

탐사단이 안으로 들어가 바라본 현실 천장에는 발굴 전에 도굴꾼들이 휩쓸고 간 통로가 덩그렇게 방치돼 있었으며, 석관 뚜껑은 도굴꾼에 의해 여기저기 부숴진 상태다.

벽면 곳곳은 금이 가고 깨진 상태였으며, 갈라진 벽면 곳곳엔 말라 비틀어진 거무죽죽한 곰팡이가 붙어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특히 벽면 내려 앉은 부분에 시멘트를 발라 끼워놓은 돌이 떨어져 나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등 소중한 세계문화유산이 중국의무성의한 관리로 훼손되고 있었다.

◇광개토태왕비

광개토태왕릉으로부터 약 300m 떨어진 곳에 있다. 비는 고구려 19대왕 광개토태왕의 아들인 장수태왕 3년 때(414년) 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으로 높이 6.39m, 너비 1.35m~2m, 무게 약 37t이나 되는 거대한 입석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대륙을 향해 달리던 태왕의 말발굽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비문의 내용은 고구려를 건국한 추모왕(주몽)의 이야기와 광개토태왕의 즉위와 사망까지의 정복활동 및 영토관리, 태왕릉을 지키는 묘지기에 대한 제도 등 크게 3부분으로 되어 있다.

비석의 글자는 1천500여년을 버티면서 심하게 마모된 데다 간체자와 이(異)체자가 많아 1천590자만 판독이 가능하고, 나머지 석문은 완벽하게 해독하기 어렵다고 한다.

▲ 평지성인 국내성은 성벽 너비는 약 7∼10m, 높이는 5~6m로 총 길이는 2,686m에 달했으나 지금은 북쪽 성벽만 남아있다. 그나마 일부 성벽은 고증 없는 복원으로 원형을 잃어가고 있다.
고주몽 성제의 고구려 창업과 광개토태왕의 치적 등을 기록한 광개토태왕비는 현재 방탄유리 속에서 고구려의 기상과 함께 갇혀 있다. 중국이 지난 2004년 훼손을 막기 위해 방탄유리를 씌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통풍이 제대로 안돼 습기가 차는 등 오히려 비석의 부식이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비석을 보호하기 위한 철저한 보존대책이 마련되기를 바랄 뿐이다.

이밖에 ‘오회분 5호 무덤’은 묘실 개방으로 인해 바깥공기가 내부로 유입되면서 벽면엔 손바닥에 물이 묻어날 정도로 습기가 차고 있는 상태다. 이로 인해 사신도를 비롯해 해신, 달신, 북두칠성 등 오직 고구려 무덤에서만 볼 수 있는 찬란한 벽화들이 형태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흐려지는 등 훼손되고 있는 실정이다.

환도산성도 인근 주민들이 성터 내부를 포토밭으로 마구 개간하면서 고분들이 과수원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상태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만큼 성터 원형을 보존해야 함에도 중국 정부는 성곽 보존에만 열을 올리고 있을 뿐이다.

또 집안에서 동쪽 17㎞에 위치한 ‘국동대혈’은 고구려 왕들이 매년 10월 군신들을 거느리고 찾아와 제사를 지냈던 곳으로 고구려 민족의 풍속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중요한 곳이지만 외곽에 떨어져 있고 관광객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는 이유로 방치되고 있다.

동굴 내에는 중국인들이 관음상을 비롯해 재물신과 의신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부자 및 건강하기를 기원하고 있으며, 동굴 입구를 막아논 철책 위에는 인근 주민들이 재배한 담배를 말리고 있는 등 중국측의 무성의한 문화재 관리에 한숨만 나올 뿐이다.

관광자원이 될 가능성이 높은 곳은 적극적으로 개발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하더라고 투자를 하지 않는 중국 정부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