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픔을 안아주는 무등산이 고향의 정자나무처럼 믿음직하며, 어머니처럼 포근하고,변함없는 사랑의 대상이기도 하다.
예향의 도시이기도 한 광주에서는 오지호, 임직순을 비롯한 훌륭한 화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소처럼 우직
해 보이는 무등산을 바라보며 황영성의 작업실을 찾아갔다.
과거 무등산 자락 밑에 위치한 ‘배고픈 다리’ 옆의 널따란 화실에서 그림을 그렸던 그는 여전히 막걸리처럼 텁텁한 서민의 모습이었다.
또한 ‘작품은 변해도 사람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의 말처럼, 무등산의 정기를 한 몸에 받으며 무등산 정상 비석대의 바위처럼 단단함과 넉넉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필자가 고등학교 시절에 보았던 소탈하면서도 넉넉하고 부드러운 웃음도 그대로였다.
황영성은 평생을 변함없이 그림 속의 소처럼 묵묵하게 그림의 밭을 일구고 살아간다.
그의 그림은 아련한 고향의 체취를 느끼게 해주며, 토종 황소를 연상케 해주므로 마음의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는 단비와도 같다.
그러므로 그의 그림에는 사람과 사람 간의 정이 흐르고 가족 간의 애틋한 사랑이 흐른다.
이 사랑은 흑과 백이 어우러진 회색빛의 전율로 보는 이의 마음을 뭉클하게도 해주고, 최근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다채로운 색으로 흐르기도 한다.
60년대 말에, 그는 형상과 색에 대해 고민하다가 흑색과 백색만으로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이르게 되었다. 그리고 어렵사리 전남대학교병원에 근무하는 두 명의 간호사를 모델로 하여 그림을 그렸다. 이 ‘병동의 오후’가 국전에서 특선을 하게 되면서 흰색과 검은 색에 더욱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여기서부터 시작된 황영성의 가족 그림은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평안함을 가져다주는 사랑의 전령사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가족’이라는 한 울타리 안에서 훈훈하게 시작된 황영성의 그림 세계는 현대적인 회화성을 지니면서도 지극히 인간적이고 한국적이며 정적이다.
황영성이 젊은 시절부터 ‘가족’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는 데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예술가로서의 타고난 기질과 성품에 기인한다.
우직한 황소의 모습과 일그러진 초가집 그리고 엄마, 아빠와 아이의 모습, 황토길, 숲 등이 가족이라는 하나의 틀 속에서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며 독특하게 형상화되어 있다.
독특한 공간 의식 속의 단순하고 무기교적인 형상들은 구수하면서도 고향에 대한 시인의 그리움처럼 애처롭기까지 하다.
황영성의 그림은 90년대로 들어서면서 큰 변화를 맞게 되었다. 아마도 2년 여 동안 파리에 체류하고 일 년
여 동안 남미 인디언의 삶의 행적을 몸소 체험한 후부터인 듯싶다.
우리 민족의 뿌리와 밀접한 듯한 남미 인디언의 문화에 대한 관심은 곧 인류학에 대한 열정 및 문화와 역사에 대한 노하우를 의미한다.
그의 예술적인 차원이 극대화되면서 자연스럽게 ‘가족’ 그림에도 영향을 주게 되었고, 그의 가족은 세계의 가족으로 변화하였다.
이 무렵부터 황영성의 작품과 예술세계는 더욱 다원화되면서 세계의 질서와 하나가 된 듯한 이미지를 준다.
‘Family Story(가족 이야기)’라는 최근의 작업들은 가족이라는 정적인 작은 울타리를 넘어 세계적인 가족, 범우주적인 가족으로 확대되어 광범위한 삶의 질서와 함께 숨을 쉰다.
그는 컴퓨터, 텔레비전, 비행기 등 문명의 산물뿐만 아니라 꽃, 나비, 달걀, 공기 등 이 세상 안팎의 모든 잡다한 것까지도 하나의 공동체적인 가족으로 소중히 바라보며 그림으로 승화시킨다.
이렇듯 황영성의 가족 이야기는 범우주적인 생명체와의 순수한 동행이라 하겠다.
심미적, 철학적, 종교적, 인류학적인 테마들은 다양한 이야깃거리와 별개의 개체이면서도 그림 속에서 하나의 가족을 이루고 있다.
각각의 이질적인 것들이 가족처럼 끈끈한 정이나 배려하는 마음이나 교제하는 모습 등으로 혼합과 병렬을 이루며 하나가 되는 흥미로운 일들이 벌어진다.
또한 다양한 색들은 하나의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서 사랑과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빨강색이 있어야 노란 색이 돋보이고, 노란 색이 있어야 파랑색이 아름답듯이, 황영성의 그림 속의 개체들은 마치 인생의 향연을 이루는 가족과도 같이 서로를 존중하며 즐거워한다. 서로 다른 모습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면서 새로운 생명을 노래하는 것이다.
그의 예술가적 마력은 이들과 소통을 이루며 모든 대상을 골고루 소중하게 만든다. 이러한 황영성의 가족은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고 아껴주며 무등(無等)의 빛을 무지개처럼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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