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박선희의 작품을 보면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곤 한다. 이는 장롱 속에서 묵은 한복을 꺼냈을 때 느껴지는 맛과도 같다. 선조들의 오래된 책들에서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모티브를 얻어 만든 여러 형태들은 신선함을 준다.
특히 우리 문화의 삶을 느끼게 해주는 여러 약초의 향내는 미묘한 예술적인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그렇다고 해서 박선희의 그림이 전통을 고수하거나 과거 지향적인 부류의 그림인 것은 아니다. 우리들의 삶과 정서가 오롯하게 담겨있으면서도 오히려 현대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일본인 화가이자 디렉터인 쿠로다 쿄코는 박선희의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공감되는 견해를 보였다.
“박선희의 티백(tea bag) 작업을 보노라면, 그녀가 시대의 흐름을 느끼고 그 영향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감성으로 그것을 이해하고 소화시킬 수 있을 때까지 천천히 시간을 들여 자신의 작업을 계속해 왔다는 것이 느껴진다.
‘천천히’라는 것이 바쁜 현대사회에서는 마이너스 이미지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은 결코 세상의 일반적이고 동일한 가치관으로는 판단될 수 없는 것이다.……. 그녀의 작품은 그 간의 작업들을 연구한 결과, 한국문화의 전통적인 개념을 내포하면서 현대적인 표현양식을 보인다.…….”
확실히 박선희의 작품에는 우리 문화의 전통성을 드러내면서도 현대적인 감성에 부합되는 어떤 특별함이 존재하는 것 같다. 또한 박선희의 예술세계에 대한 쿠로다 쿄코의 ‘천천히’라는 표현은 예리하고도 적절한 표현이라 하겠다. 이는 아마도 꾸준히 하나의 작업 방향을 유지함에서 온 듯하다. 마치 물이 한 방울씩 떨어져 커다란 양동이를 채우듯이 천천히 자연스럽게 변화의 흔적들이 나타나는 것이다.
예술가는 희로애락이나 감정의 흐름 등등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개념을 예술성 담긴 흔적으로 남길 수 있다. 이러한 흔적은 특별하고도 예술적인 가치가 있으며 우리의 마음에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 있다.
박선희의 작품들은 삶을 진지하고 은유적으로 승화시킨 흔적이라고 할 수 있다. 마치 슬픈 시간이 지나가고 희망의 새벽 별들이 영롱함을 뽐내듯이 자신을 속이지 않는 진지함으로 이루어진 환희의 흔적인 것이다. 그 때문인지 박선희의 작품은 신비한 자연의 현상 중에서 하나를 표현한 듯이 기묘하다. 황금색도 아니고 황토색도 아닌, 조물주가 인간을 만들면서 사용했을 것만 같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색이 오롯이 투영되어 있는 것이다.
박선희는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세계를 담기 위해 무지개를 잡는 어린 소녀의 마음처럼 미지의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나아간다. 자연의 본성으로부터 흐르는 순수 자체를 사랑하는 작가의 순수함은 미적 관조(觀照)를 통하여 온 우주 공간과의 만남을 가능하게 하며, 이 만남은 아름답게 승화되어 우리 마음에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박선희는 마시고 난 티백이 서서히 변화되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어, 더디지만 지속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추구하게 되었다.
어린 시절에 보았던, 시골의 한약방 천장에 매달린 약재들의 강한 이미지를 티백을 통하여 이삼 차원의 공간에서 전통적인 미감으로 승화시키고자 한 것이다. 티백을 곱게 펴서 봉지 속의 차(茶)들을 버리고 말린 다음에 접거나 변형시킨다. 이는 기존의 티백과는 다른 새로운 생명의 탄생이며 또 다른 실체와의 만남이다.
우리는 티백을 통해 한국인의 체취가 담긴 새로운 생명의 빛을 독특한 형상과 은유적으로 담아내는 미적 감성에 공감할 수 있다. 이 형상은 태초의 세계인 듯도 하고, 은하수 너머의 미지의 세계를 투영시켜 놓은 것 같기도 하다.
박선희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이런 마력과 매력은 아마도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많은 시간을 꾸준히 작업실에서 보낸 열정과 진지함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싶다.
일찌감치 스승 안상철 선생의 눈에 들만큼 학창 시절부터 일 년이면 삼백 육십일 이상 거의 매일같이 열심히 작업을 했다. 그 때문인지 작업 하나하나가 오랜 숙련을 거친 것처럼 대단히 섬세하고 깊이가 있으며 진지하다. 열심히 연구하면서 후학들을 양성하는 교육자이자 예술가로 소박하게 살아가기를 원하는 이 노력파의 열정과 고민과 진지함은 작업실을 방문한 필자의 눈앞에 신선한 이미지의 자연의 색들과 형상들을 펼쳐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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