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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10월은 잔인한 달

과학분야 노벨상 수상 언제나
사회전반 과학문화 형성 필요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추억과 욕정을 뒤섞고/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미국계 영국 시인 T.S.엘리엇은 황무지란 제목의 장문의 시에서 이처럼 썼다. 과학을 전공하는 필자로서는 4월이 아닌 10월이 한국인들에게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말하고 싶다.

매년 10월이 되면 어김없이 먼 스웨덴에서 노벨상 수상자 발표소식이 들려온다. 지금까지 혹시나 올해는 하고 기대해보았지만 역시나 한국인, 아니 한국계 수상자는 없었다. 그러면서도 올해 노벨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는 한국인이 비단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혹시 고인이 되신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여 노벨상에 대한 한국인들의 한을 풀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생각은 다르다. 노벨평화상을 비하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노벨평화상이 다른 분야(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경제학, 문학)의 노벨상과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다른 분야의 노벨상은 모두 스웨덴에서 결정하고 수여하는데 비해 노벨평화상만 노르웨이에서 수상자를 선정하고 수여한다. 노벨이 살아있던 시절 노르웨이는 스웨덴에 병합되어 있던 자치국이었고 1905년이 되어서야 독립을 했다. 이런 이유로 스웨덴 정부는 노벨평화상의 수상자 선정 및 시상을 노르웨이가 자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또한 한반도 통일이라는 숙제를 풀기도 전에 상을 미리 받아 개운하지 않다.

노벨상은 지금까지 주로 북미와 유럽의 서구인들이 수상해 오고 있다. 미국 건국 200주년인 1976년에는 노벨상 수상자가 모두 미국인이어서 스웨덴이 미국에 바친 최고의 선물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10월의 잔인함은 서구인들이 아닌 주위 아시아 국가의 노벨상 수상자들을 통해 극명히 드러난다. 경기에서 지면 대대적인 비난이 쏟아지는 축구 한일전과 달리 노벨상 한일전은 연전연패가 아니라 아예 초등학생 대 성인의 경기처럼 상대가 되지 않음에도 사회적인 비난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

2005년 필자는 답답한 마음에 일반인과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아시아를 빛낸 노벨상 수상자’라는 책을 발간하였다. 필자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일본은 지금까지 평화상을 제외하고도 물리학상 7명, 화학상 5명, 생리의학상 1명, 문학상 2명 등 총 15명의 수상자를 배출하였다. 그 가운데는 박사학위도 없는 시마즈 제작소의 평범한 회사원 다나카 고이치가 노벨 화학상을 받은 것도 포함되어 있다. 작년에는 화학상 1명, 물리학상 3명 총 4명의 일본인 수상자가 나와 일본 열도를 흥분시켰다. 일본 이외에도 중국은 물리학상 수상자 5명, 문학상 수상자 1명을 배출하였고, 심지어 대만, 인도, 파키스탄 같은 국가들도 노벨 물리학상, 화학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바가 있다.

물론 노벨상이 한 국가의 국력이나 민족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지표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 국가의 노벨상 수상자수를 과소평가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노벨상은 올림픽 메달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메달 유망주를 선발하고 집중훈련을 통해 메달을 얻을 수 있는 올림픽 경기와는 달리 노벨상을 수상하려면 장기간에 걸쳐 문화, 즉 저변이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특히 과학 분야의 노벨상을 타려면 사회가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과학자들을 키우고 격려해야 한다. 또 과학자들은 과학에만 매달려야 하며, 적극적으로 해외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활용하여 업적을 인정받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와 같이 과학문화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돈만 퍼붓는다면 황우석 사건과 같은 창피한 일이 반복될 뿐이고 노벨상 수상은 요원해질 것이다.

프로필

▶1954년 전남 광주 출생
▶1990년 美캘리포니아대학 물리학 박사
▶1990년~현재 아주대학교 자연과학부 교수
▶2006~2008년 아주대학교 자연과학대학 학장
▶2007년~현재 한국물리학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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