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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사칼럼] 전문대학원 유감

비싼 등록금 진입문턱 높여
도입 의도와 다르게 변질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는 임기 중에 강력한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식 교육의 대표적 모델이라 할 수 있는 전문대학원 체제를 출범시켰다. 대학 교육을 정상화시킨다는 명분 하에 학부과정에서 의대와 법대를 없애고 의사와 변호사의 양성은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이 책임지는 체제를 만들어낸 것이다.

당시 노무현 정권이 이러한 전문대학원 체제를 추진한 가장 큰 명분은 필자가 보기에 크게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학교공부는 도외시하고 오로지 고시에만 매달리는 잘못된 풍토, 평생을 사법고시에 매달리며 인생을 망치는 풍토를 교정하겠다는 것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서울대가 부동의 위치에서 사회 유력인사와 지배층을 생산해내는 구조를 깨부수겠다는 것이었다. 특히 후자의 경우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울대를 가리켜 1등만을 뽑아서 1등으로 교육하는 일이 뭐가 어려운 일이냐, 그런 교육은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고 빈정거린 사실에서 알 수 있듯 서울대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 특유의 반감까지 작용하고 있었다.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에서 사법고시는 오랫동안 출세의 지름길이었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사법고시 합격을 암행어사 출도를 외치며 가난과 억울함에 지친 인생을 일거에 바꿀 수 있는 현대판 장원급제로 믿는 경향이 형성되었다. 우리나라 사람에게 이런 모습이 어느 정도인지는 지난해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에덴의 동쪽’을 떠올려보면 잘 알 수 있다. 이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 중 하나는 사법고시 준비생이며, 그의 고시합격은 숨죽이며 한 맺힌 인생을 살아온 가족이 세상을 향해 당당하게 그들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유일무이의 방법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전문대학원 체제로의 전환은 고시합격에 운명을 걸고 수십년을 매달리는 현실,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또 다른 시험을 향해 달려가는 현실, 서울대 법대와 의대가 우리나라 법조계와 의학계를 지배하는 현실을 개선하는 데는 확실히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전문대학원 체제는 근본적으로 그러한 문제를 해결하는 장치는 못 될 것이다. 전문대학원 체제는 필자 입장에서 볼 때 기왕의 체제가 가졌던 문제점을 현상만 달라져 보이는 다른 문제로 전환시키는 촉매에 불과해 보인다.

전문대학원 체제는 엄격하게 응시자격과 회수를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인생을 바꾸어줄 도깨비 방망이의 획득을 꿈꾸며 평생을 고시에 매달리는 사람들이 없어질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그렇지만 가난한 수재들에게 의사와 변호사라는 직업은 점점 더 그림의 떡이 될 것이란 점에서는 이전의 제도보다 훨씬 부정적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교육비가 비싸질수록 그리고 교육기간이 길어질수록 감당하기가 어렵다. 그런데 전문대학원 체제는 학습자에게 늘어난 교육기간과 무척 비싼 등록금을 감당하라고 요구한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나는 일은 앞으로 없어질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학부가 서울대인 사람들이 사법고시 합격자의 50% 가까이를 차지하던 부정적 풍토는 전문대학원 체제에서 근원적으로 불가능해졌다고 생각하겠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사정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 점은 전국 법학전문대학원 재학생 중 학부가 서울대인 사람의 비율이 사법고시에서 서울대 출신이 차지하던 비율보다 결코 낮지 않다는 사실로 알 수 있다. 전문대학원 체제 출범으로 서울대를 비롯한 여러 명문대학의 학부교육은 정상화된 것이 아니라 전문대학원 입학을 준비하는 예비 수험생들을 잠시 보관해주는 장소가 되었으며, 학문적인 분위기는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나에겐 전문대학원 체제가 유감스럽다.

프로필
▶1953년 경북 예천 출생
▶1981년 서울대 문리대학원 박사 졸업
▶1992년~현재 인하대학교 교수
▶2008년~현재 문학과 지성사 대표이사
▶2009년~현재 인하대학교 문과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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