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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종교의 세속화와 대통령의 굴욕

 

이명박 정부 들어 두드러진 현상 가운데 하나가 종교의 세속화(世俗化)다. 그동안 종교는 우리 사회의 갈등을 진정시키는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금의 종교를 보면 오히려 갈등을 앞장서 부추기는 것은 물론이고, 이마저 여의치 않으면 공격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정부의 굵직굵직한 현안에 대해 사사건건 개입하고 간섭을 하려고 든다. 물론 잘못된 정책이라면 바른 대안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 만 부정적인 시각에서 결과를 속단(速斷)하고 태클을 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4대강 사업’이다. 지난 연말 정진석 추기경이 “4대강 개발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발언한데 대해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과 원로사제들이 반발하며 추기경의 사과와 서울대교구장 사퇴를 요구하고 나서기도 했다. 천주교 신부들이 4대강 사업에 대해 다소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는 이유로 한국천주교 최고지도자를 비판하며 물러나라고 요구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한나라당이 2011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는 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지원 예산을 대폭 삭감하자 이번엔 불교계가 들썩였다. 조계종 총무원은 성명을 내고 “국가 요청으로 시작한 사업이 기독교 장로 대통령이 취임한 3년 만에 파국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템플스테이 사업은 월드컵이 열린 2002년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 유치 차원에서 지원하기 시작해 매년 예산이 꾸준히 늘었으나 개신교 단체들은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라며 지원 철회를 주장해왔다. 총무원은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의원들의 사찰 출입 거부와 입장 표명을 보류해왔던 4대강 사업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종교와 정부, 종교와 종교 간에 갈등은 이미 심각한 수준을 넘어섰다. 급기야는 이명박 대통령이 공개적인 자리에서 ‘무릎을 꿇는’ 미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요즘 말로 ‘대통령의 굴욕’이라 할 만 한 사건(?)이다. 개신교에서 하는 ‘통성(通聲)기도’ 모습이라고는 하나 배경에는 최근 ‘이슬람채권(수쿠크)법’을 둘러싼 개신교의 반대 입장과 무관치 않을 거라고 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런 모습은 이 대통령이 지난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국가조찬기도회에 참석했다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인 길자연 목사가 “‘죄인의 심정’으로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향해 통성으로 기도를 하자”고 한데 따른 것이다. 독실한 개신교 신자인 이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겠으나 기독교가 우리나라 국교(國敎)도 아닌데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무릎까지 꿇어야 하는 모양새는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더욱이 길 목사는 앞서 한나라당 안상수 대표를 찾아가 ‘이슬람채권법’을 계속 추진할 경우 내년 총선에서 낙선운동을 벌이겠다고 한 것으로 알려진다. 본인은 이를 부인하지만 일련의 정황상 뭔가 작심하고 한 일은 아니었는지.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원로목사는 국회가 ‘이슬람채권법’을 통과시키면 대통령 하야 운동을 벌이겠다고 했다. 이쯤 되면 길 목사의 낙선운동과 조 목사의 하야 운운은 정치권과 대통령에 대한 ‘공갈’과 ‘협박’이나 다름없다.

이러한 종교지도자들의 오만은 정작 예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어 보인다. 예수 가라사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말씀하셨다. 대통령이 나라를 위해 일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온갖 무거운 짐을 지는 수고를 마다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이런 대통령의 짐을 덜어줘야 할 개신교 입장에서 짐을 덜어주기는 커녕 오히려 부담을 지우려 든다면, 과연 이것이 옳은 일인지. 묻고 싶다. 그렇게 나라가 하는 일에 감 놔라, 대추 놔라 하고 싶으면 정식으로 현실정치에 입문하면 될 일이다.

정치가 경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하는데 지금의 정국을 보면 종교가 정치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OECD국가 가운데 사회갈등지수가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네 번째라는 말이 실감나는 요즘이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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