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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충우돌] 불필요한 불안으로 포장되는 사회

 

요즘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두가 시사평론가요, 사회비평가들 뿐이다. 그만큼 사회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다는 말인데, ‘팩트(fact)’를 읽는 시각의 다양성과 수준에 적잖이 당황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어 최근 일어난 일본 동북부 지방의 대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전(原電)의 방사능 유출사고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그것이다. 대지진과 쓰나미에 대한 해석은 태평양판과 유라시아판이 등장하는가 하면 중국 산샤(三峽)댐 건설이 원인이라는 이들까지. 들어보면 전문가 뺨치는 수준의 대화가 오간다.

이런 가운데 심각한 것은 방사능 유출에 대한 문제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여파로 전국 곳곳에서 요오드와 세슘 등 방사성 물질이 잇따라 나오면서 불안감은 커져만 간다. 검출된 방사성 물질이 극히 적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다는 정부의 설명도 아랑곳 없다.

‘인재(人災)는 분란을 낳고 천재(天災)는 단합을 가져온다’는 말이 있다. 일본 대재앙의 경우 이 말은 대체로 들어맞는다. 지진과 쓰나미가 천재라면 원전사고는 인재에 해당한다. 처음 엄청난 지진과 쓰나미가 닥쳤을 때 매뉴얼에 충실한 일본인들답게 놀라우리만치 침착하게 재난에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줘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원전사고가 일어나자 급속히 흔들렸다. 이러한 일본 사회의 불안은 이웃인 우리 사회에도 급속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 발생한 지진으로 두 차례에 걸쳐 쓰나미 피해를 입은 적이 있다. 기상청 자료에 따르면 1983년 5월 26일 일본 혼슈 아키다현 서쪽 근해에서 발생한 규모 7.7의 지진으로 동해안에 1시간 30분 동안 10분 주기로 쓰나미가 몰려와 사상자 5명이 발생하는 피해가 있었다. 1993년 7월 12일에는 홋카이도 오쿠시리섬 북서 해역에서 규모 7.8의 지진이 발생해 쓰나미가 우리나라 동해를 덮쳤고, 정박해 있던 소형 선박 35척이 부서졌다. 그러니 이번에 엄청난 쓰나미로 후쿠시마 원전이 폭발하면서 충격적인 피해가 잇따르자 국내 전문가들을 중심으로 원전에 대한 비판적인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쓰나미에 이목이 집중되는 가운데 지난 27일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동해안에 최대 1m 높이의 쓰나미가 78년마다 발생할 수 있다고 밝혀 한반도가 더 이상 이들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의견이 우세한 상황이다.

불안은 포장되고, 사회는 새로운 불안을 이야기 한다. 몰랐던 사실도 새롭게 들춰내면 불안한 것이 인지상정이다. 새로운 ‘야만’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아도르노는 호르크하이머와 비판이론의 탁월한 저작으로 손꼽히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이렇게 썼다. ‘자연의 폭력으로부터 한 걸음 한 걸음 빠져나올 때마다 인간에 대한 체계적인 폭력이 점점 커져가는 부조리한 상황은 ‘이성적인 사회’의 이성을 쓸데없는 사족으로 간주한다.’ 인간은 대자연의 지배로부터 권력을 빼앗아 내는 데 성공했는지는 모르나, 그 성공이 귀결하는 바는 인간에 의한 인간의 지배와 억압이라는 또 다른 ‘야만의 시작’에 불과하다는 것으로 곧 ‘불안한 사회’를 말한다. 이러한 ‘잘못된 사회 가운데 올바른 삶이란 없다’는 것이 아도르노의 생각이었다.

불안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철학자가 키르케고르다. 그는 불안에 대해 ‘자유가 경험하는 현기증’이라고 표현했다. 따라서 인생의 동반자와도 같은 불안은 우리를 힘들게 하는 동시에 삶을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심신을 갉아먹는 나쁜 불안은 분명 몰아내야 한다. 그럼에도 불안을 모두 버리지 말아야하는 것은 불안한 마음이 우리를 행동으로 이끄는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적당한 긴장감이다. 하지만 요즘처럼 불필요한 불안으로 지나치게 포장되는 사회는 마치 3천 년 전에 하늘이 무너질까봐 안절부절 못하던 중국 기(杞)나라 사람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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