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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장유유서(長幼有序)

 

우리는 가끔 나이가 많은 이들에게 버릇없이 행동하는 사람을 보게 된다. 십년 이상 연상인 분들에게 예절 없이 대하는 경우를 목도한다. 당하는 쪽은 기분을 짐작을 해보지만, 곁에서 보는 사람들 역시 떫은 감을 씹는 것 같은 느낌은 마찬가지인 것이다.

내 어렸을 때는, 그런 일도 보기 힘들었지만 어쩌다 어른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면 어른들은 대발 노발했다. “야, 너는 애비 에미도 없냐?” 이 정도로 호령이라도 치면, 기가 팍 죽어버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쳤다. 어떤 경우는, "이런, 후레자식이!“

이렇게 극심한 표현을 쓰는 노인들도 만나게 되는데, 그럴 때 역시 어린 시절 얼굴을 홍당무로 만들며 화를 낸 노인에게 사죄를 하곤 했다. 요즘은 어떤가? 내 경우는 직업이 사건과 사고의 현장 목도가 잦다보니, 여러 일을 만나고 겪게 된다.

장유유서(長幼有序)가 부재한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닐 일들이 주변에서는 많이 벌어지고 있다.

얼마 전 직접 겪은 일이다. 그날은 꽃샘추위가 닥친 날이라 아침 바람이 쌀쌀했다. 잡지사에 넘겨야 할 글을 쓰느라 출근 시간이 늦어 집을 나서 택시를 급히 잡았다. 택시의 운전기사는 머리칼이 허연 영감님이었다. “어서 오세요. 날씨가 쌀쌀하지요?” 부드러운 말씨에 자상한 얼굴이었다.

촉박한 출근시간 때문에 두서가 없는 정신이 순간 정돈이 되는 것 같았다. 행선지를 말하고 운전기사를 찬찬히 살펴보니, 노련한 운전에,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내가 건성으로 물었다. “일 하시기 힘드시지요?” “밤 시간에 젊은 애들 술주정 받느라, 그게 힘들지, 뭐”

운전기사는 씩 웃어 보였다. 사무실에 도착해 요금을 계산하고, 황급히 문을 열었는데, 뭔가 문에 부딪치는 게 있었다. 놀라서 살펴보니, 삼십대 중반쯤의 주부가 초등학생 두 명이 자전거와 함께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자전거로 아이들을 학교로 등교시키던 아주머니가 내가 밀어낸 택시의 차문에 부딪친 것이었다.

“야, 이 늙은이야! 운전 좀 똑똑히 해라!” 택시 운전기사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쓰러졌으면 먼저 아이들부터 보살펴야 옳을 터인데, 악을 쓰며 머리칼이 센 영감님에게 화풀이부터 하는 것이었다. 차에서 내리던 나는 머쓱해서 아주머니를 바라보기만 했다.

“저 애들을 봐, 애들이 일어나질 못하잖아. 어쩔테야, 이 영감쟁이야!”

삿대질을 하며 소리를 지르는 여성을 보면서, 나는 이 여자가 의도하는 바를 간파할 수 있었다. 여자는 뭔가를 알고 있었다. 분명히 차문은 내가 열었다. 내가 연 문에 여자는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부딪쳐 넘어진 것이었다. 문을 연 내게 죄가 있는 게 아닌가? 도로교통법은 그렇지가 않다. 운전기사에게 그 안전의 책임이었다. 60대 후반의 운전기사가 미소를 지으며 나섰다.

“아주머니, 나와 조용히 얘길 합시다” 그제야 수그러드는 여자였고, 출근시간이 바쁜 나는 멍청히 서서 한숨만 내쉬었다. /박병두 작가

▲ 한신대 문창과, 아주대국문학과 졸업 ▲ 원광대 박사학위 ▲ 장편소설 <그림자 밟기> ▲ 산문집 <흔들려도 당신은 꽃> ▲ 전태일문학상과 이육사문학상 수상 ▲ 경찰대 전문상담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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