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내가 만일 김문수 지사라면
[좌충우돌] 내가 만일 김문수 지사라면
  • 경기신문
  • 승인 2011.04.06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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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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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덕 논설위원
이런 가정(假定)을 해본다. 내가 만일 김문수 지사라면 말이다. 손학규 민주당대표가 분당을 보궐선거 출마를 발표했을 때, 이에 맞서 과감하게 출마를 선언했을 것이다. 선거에서 손 대표를 이겼을 경우 대권주자로서 김 지사의 지지도는 엄청나게 오를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직 대권주자로서 지지율이 미미한 그로서는 이것은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유시민 전 복지부장관에 이어 손 대표마저 이긴다면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을 모두 제치는 것과 마찬가지다. 호기(好機)도 이런 호기가 없다. 매도 일찍 맞는 것이 낫다고, 어차피 중도에 그만둘 것이라면, 일찌감치 지사직을 사퇴하고 보궐선거에 나서 당선되면 1년쯤 국회의원 하다가, 자연스럽게 대선 출마를 준비하면 된다. 손 대표가 나오니 명분도 있다. 그런데도 주위의 참모들 가운데 김 지사에게 이런 조언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을까.

손 대표가 분당을 출마를 선언하고 난 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유시민-김문수’ 순이던 지지도가 ‘박근혜-유시민-손학규’로 바뀌었다고 한다. 이처럼 여론은 이슈에 민감하다. 현재 대선구도는 여전히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독주하는 가운데 나머지 후보들은 그야말로 ‘도토리 키 재기’ 상황이다. 특별한 ‘이슈 파이팅’이 없는 한 이런 판세는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김 지사가 전국을 돌며 강연에 나서는 등 최근 들어 부쩍 광폭(廣幅) 행보를 보이고는 있으나 그 정도로 지지율이 상승할 것이라 기대한다면, 그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지지율 반전을 원한다면 스스로 이슈를 만들어 과감한 승부수를 띄울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그의 존재감은 답보(踏步)상태를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김 지사는 1990년 민중 중심의 좌파정당을 지향한 민중당을 이재오, 장기표 등과 함께 만들어 제14대 총선에 비례대표로 나섰으나 낙선했다. 이 일은 그가 그토록 간절히 믿었던, 아니 믿어 의심치 않았던 민중의 실체가 어떤 것인가를 뼈저리게 느끼는 계기가 됐다. 이로 인해 그는 그동안 해왔던 좌파 사회주의 노동운동에서 손을 떼고 1994년 민자당 입당에 이어 1996년 민자당의 후신(後身)인 신한국당 공천으로 제15대 총선에 출마해 당선된 후로 내리 3선을 기록했다.

이를 두고 운동권에서는 그를 ‘변절자’로 규정했다. 그러나 그에게 ‘변절’이라 말하는 것은 민중으로부터 고립된 패배주의자들의 옹색한 자기합리화에 불과하다. ‘변절’이 아닌, ‘변신’이라야 맞다. 1980년대를 마지막으로 운동권은 그 목표를 잃어갔다. 적어도 정치적으로 민주화가 된 마당에 이들 세력의 명분도 자연 소멸돼 갔다. 민중의 반응도 급속히 싸늘해졌다. 노동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민중당을 창당하고 제도권 진입을 시도했으나 그 벽은 엄청 견고했다. 그것을 가장 먼저 간파한 김 지사다.

그런 김 지사에게 보수의 일각에서는 여전히 ‘위장한 좌파’라고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지금은 대권을 위해 속내를 감추고 있지만 언젠가는 본색을 드러낼 것이라는 얘기다. 한 때 그가 극렬한 운동권의 핵심인물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보수의 시선도 무리는 아니다. 그렇다면 그의 주장대로경기도에 초대 이승만 대통령 기념관을 짓는 거다. 물론 동상도 세우고 말이다. 백 번의 항변(抗辯)보다 이만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김영삼 前 대통령은 정치를 ‘세(勢)’로 봤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말고 잡아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민주화 동지들의 비난에도 3당 합당을 통해 대권을 잡은 그의 이력(履歷)에서도 이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김 지사와 손 대표를 제도권 정치인으로 이끈 사람 또한 YS였다. 세상은 ‘3김(金)’을 가리켜 ‘정치 9단’이라고 했다. 지금 정치를 한다하는 사람들을 볼 때 적어도 이 말은 맞는 말이다. DJ는 정치를 ‘생물(生物)’로 봤고, JP는 ‘허업(虛業)’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과연 김 지사에게 정치는 무엇일까. 누구보다 치열하게 좌파를 경험한 그로서는 아마 좌우의 날개로 마음껏 세상을 나는 ‘균형과 평등’의 정치를 꿈꿀 것이 틀림없다. 이를 위해 김 지사는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가야 할 것인지, 지금쯤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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