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청산도(靑山島)에서
[좌충우돌] 청산도(靑山島)에서
  • 경기신문
  • 승인 2011.04.20 1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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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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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덕 논설위원
인생을 알려거든 청산도(靑山島)로 가라. 청보리밭과 유채꽃 흐드러진 돌담길 따라, 청아한 소리와 북장단이 어우러지는 영화 ‘서편제(1993년)’로 빛났던 섬, 바로 그 청산도엘 갔다. 마침 영화 속 4월이다.

지금 청산도에선 이달 말까지 ‘느림은 행복이다’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슬로우 걷기 축제’가 열리고 있다. 청산도는 ‘슬로 시티’다. 시간이 정지된 듯 산도 물도 길도 바다도 그저 천천히 흘러간다. 언론과 방송매체 등을 통해 워낙 유명세를 타서일까. 너무나 익숙하면서도 쉽게 떠날 엄두를 못 냈던 청산도. 그 섬은 내게 말없이 오라하고, 또 그렇게 가라했다.

완도군 문화관광해설사인 김미경 씨는 청산도를 가리켜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섬’이라고 했다. 마치 물결치듯 겹겹이 흘러내리는 청산도의 논과 밭마다 무덤이 있다. 사람들은 양지바른 곳에 무덤을 모시고 산다. 무덤은 하나같이 깔끔하게 정돈돼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선 청산도 사람들의 죽은 사람에 대한 예우는 살아있을 적과 변함없이 한결같다고나 할까. 전라도의 여느 섬에서와 같이 아직도 남아 있는 장례풍속인 풍장(風葬)을 위해 정성껏 초분(草墳)을 꾸미는 사람들. 사람들은 그렇게 초분에서 육탈(肉脫)이 되고, 그렇게 생전에 고단했던 심신을 벗어버린 채 바람으로 돌아간다.

청계리에는 일남이가 산다. 올해 중3인 일남이는 청계리의 유일한 중학생이다. 지난 해까지만 해도 한 살 위인 동네 누나가 있었는데 뭍으로 유학을 갔다.

고등학교가 없는 청산도 아이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뭍으로 떠나간다. 일남이와 같이 중3 아들을 둔 김미경 씨는 요즘 학교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볼 때면 왠지 가슴이 짠해진다고 한다.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할 날들이 가까워오기 때문이란다. 청산도 아이들은 또 그렇게 뭍으로 나가 또 다른 인생을 배울 것이다.

청산도 슬로길은 마라톤코스와 같은 42.195km다. 11개 구간으로 나뉘어 길 따라 색다른 멋과 맛을 준다. 도중에 만나는 범바위는 슬로길의 백미(白眉)다.

전망 좋은 이곳에 가면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의 수호신과 만난다. 땅의 수호신인 범바위에서 바라다 보이는 매봉산은 이름 그대로 매들의 거처다. 이 때문에 청산도엔 꿩이 없다고 한다. 매는 하늘의 수호신이다. 범바위 옆 전망대에 오르면 좌우로 거북이 모양으로 돌출된 지형이 바라다 보인다. 바다의 수호신이다. 따라서 범바위에 오르면 강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고 청산도 사람들은 굳게 믿고 있다.

상서리는 돌담으로 유명해진 마을이다. 이 마을 돌담은 문화재로 등록됐다. 어느 곳보다 마을 인심이 후하고 이웃 간에 단합이 잘되는 마을이 상서리다. 다랑치논이라 불리는 풍경도 이곳에 가면 한 눈에 들어온다. 구들장같은 돌로 쌓아 구들장논이라고도 부른다. 하나하나 쌓아 올린 돌담에서 청산도 사람들의 공력(功力)을 읽을 수 있다. 아마도 그들은 돌을 쌓으며 먼 훗날을 기약했을 것이다. 지금 다 쌓지를 못한다면 아들, 아들에 아들, 손자의 손자…. 누군가 이 일을 해주겠거니. 그리고 그들은 흙으로 돌아갔다.

그러면 이쯤해서 서두의 말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인생에서 허기지면 청산도로 가라고. 청산도에 와서 인생을 알았다면, 이젠 허기를 채워야 한다. 그래야만 이 섬을 떠날 준비가 끝이 난다. 청산도 길을 걸으며 느림의 미학(美學)을 느낀 것만으로도 이 섬에 온 의미는 충분하다. 그렇다고 너무 알려고 들지는 마라. 나옹선사의 이름처럼 ‘청산은 나를 보고/말없이 살라하고/창공은 나를 보고/티 없이 살라하네/사랑도 벗어놓고/미움도 벗어놓고/물같이 바람같이/살다가 가라하네’. 그것으로 충분한 청산도다.

청산도엔 사쓰레피 나무가 지천이다. 길을 걸으면 어디선가 고약한 냄새가 풍겨오는데 바로 이 나무에서 나는 냄새다. 이 냄새는 공기를 정화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청산도엔 이런 모순(矛盾)도 있다. 모순은 이게 다가 아니다. 섬으로 들어올 때 설렘은 떠날 때도 마찬가지로 설렌다는 사실. 인생을 알고, 그렇게 허기도 채웠으니 다시 돌아가는 일상이 기대될 수밖에 없잖은가. 들어올 때 맑던 하늘에서 비바람이 몰아친다. 언제고 허기질 때면 다시 찾으마. 이내 무심한 배는 도청리 부두에서 닻을 올린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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