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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만사] 멋진 사람 만났다

 

현직(顯職)에 오래 머물렀던 사람들은 경험을 으뜸으로 내세워 자리를 유지하려 한다.

그런데 “너무 많은 경험이 되레 방해”라며 솔직히 고백하고 자리를 물러나겠다는 발표를 한 사람이 있다. 미국의 국무장관 게이츠가 바로 주인공이다. 재임기간은 4년 반, 우리나라 6공(共)때 장관평균 수명이 13개월인걸 보면 엄청나게 오래했다.

공화당의 부시로부터 임명받았지만, 훌륭하게 업무를 수행해 민주당의 클린턴에게도 장관직 연임(連任)을 부탁받았다. 그러나 “경험이 많으면 필요 이상 조심스러워지기 때문”이라고 거절했다.

모든 상황을 경험에 바탕을 두고 필요 이상 심사숙고하여 일을 그르칠 수 있다는 말이다. 풍부한 경험이 국정운영에 도움이 되는지, 방해되는지 사안(事案)별로 다르겠지만 얼마나 솔직한 고백인가?

사실 처세(處世)와 처신(處身)은 그 값어치가 다르다. 처세란 세상살이 방법 즉 기술이 바탕이 되지만, 처신이란 살아가는데 모름지기 가져야 할 몸가짐이라고 할 수 있다. 게이츠장관은 처신과 처세 모두를 갖추었구나!! 게이츠 왈, 정치판에 오래 살아남는데 기본이 첫째 아랫사람을 가르치려들지 말아야 하고 동등하게 대할 것, 둘째 언론 때문에 시달림을 받더라도 옳은 것은 인정할 것, 셋째 솔직할 것, 넷째 그러나 너무 솔직하지 말 것.

벼슬 오래하고 싶은 사람 귀담아 들을 말이다.

게이츠는 최근 리비아군사개입에는 대통령과 의견(意見)이 달랐는데, 2년 반 만에 단 한번 이견(異見)이 있었다는 것은 그리 나쁘지 않은 일 이라고 눙쳤다.

그리고 취임 초 국무성의 오바마 대통령을 방문해 “여러분들이 나에게 욕을 얻어먹을 수가 있는데 내 생각과 다른 이야기를 전달하지 않을때는 굉장히 화를 내겠다”고 했단다. 요즘 소통이 이 정권의 화두(話頭)로 자리 잡은지 오랜데 과연?

회고록을 쓰겠다고 했다. 미국은 자서전과 회고록의 나라이다. 클린턴의 요상한 상대인 르윈스키마저도 자서전으로 출판사로부터 거금을 받고 부시와 클린턴 대통령도 어김없이 회고록 발간으로 통장을 두껍게 했다. 회고록이 퇴직금+α의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게이츠장관은 내가 잘못한 일, 실수한 일 들을 쓰겠다고 한다. 자화자찬이나 변명용이 아닌 자신을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 달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하니 재미가 없고 딱딱할 것 같아 출판사에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단다.

이 책에서 공직자로 공개해서는 안 될 비밀은 쓰지 않을 것이라고 분명히 못 박았다. 이 말은 선정적인 내용을 담아서 판매부수를 늘리는데 이용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참 반듯한 양반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 반듯한 선비구나.

더구나 다가오는 대선에 혹시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대통령 선거 후에 발간한다고 못 박았다.

장관자리 얻으려고 청문회 때 구걸하는 후보자들이 떠올랐다. “내가 장관자리를 떠난 후 최선의 일은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퇴임 후의 공복의 자세를 게이츠에게 배워야겠다.

소위 원로들의 분수 모르는 훈수(訓手)에 지쳐있는 우리들에게는 당연한 이 말조차 신선하게 들린다. 혹시 이양반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을 읽은 것은 아닐까?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선생을 흠모하던 이들이 월남독립의 아버지라 불리던 호찌민이 목민심서를 머리맡에 두면서 가까이 하고 기일(忌日)까지 챙겼다는 억지 주장이 한때 세상을 떠돌아다닌 웃지 못 할 주장이 떠올라서 괜히 한번해본소리...

하여간 오랜만에 멋진 사람 만났다. /김기한 객원 논설위원·前 방송인 예천천문우주센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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