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오주석(吳柱錫)을 다시 읽는 즐거움
[좌충우돌] 오주석(吳柱錫)을 다시 읽는 즐거움
  • 경기신문
  • 승인 2011.06.29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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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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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해덕 논설위원
경주박물관장을 지낸 일향(一鄕) 강우방(姜友邦,70)은 우리나라 미술사학계에서 거침없는 독설로 유명하다. 그는 ‘오유(傲遊)’론에 근거한 특유의 직설화법을 즐겨 구사한다. 그가 말하는 ‘오유’란 ‘분명 오만한데 전혀 밉게 보이지 않는 태도’로 “헤프게 덕담이나 하고 가식적 겸손보다는 오유를 택하겠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상대를 에두르지 않고 실명(實名)으로 비판한다. 그러한 대상 가운데 한 명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이다.

일향은 유홍준이 책에서 소개한 작품들의 절반이 위작(僞作)이라고 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사람이 저서에 위작을 그렇게 많이 소개한 것을 보니 그 말이 맞는 말일 수도 있겠다”며 “역사적 사실뿐 아니라 유적의 본질에 대해서도 말해줘야 하는데, 본질은 없고 쓸데없는 것만 말해주니 유홍준은 미술사가 아닌 답사가”라고 했다.

그런 그가 예외적으로 칭찬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오주석(吳柱錫)이다. “오주석은 그림도 알고 한문도 알고 역사도 안 몇 안 되는 미술사학자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람들은 그를 순수하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기억한다. 미술사학계 최고의 실력자로 꼽히면서도 변변한 직함 없이 살았던 이유에서다.

1995년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 주최로 ‘김홍도 특별전’이 열렸을 때 큐레이터는 오주석이었다. 전시를 마치고 뒤풀이 자리에서 술을 한 잔 걸친 그는 “내가 김홍도를 너무 이용해 먹는 것 같다”며 소리 내어 울었다.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1956년 수원에서 태어난 오주석은 서울대 동양사학과와 동 대학원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코리아헤럴드 문화부기자, 그리고 호암미술관과 간송미술관 등을 거쳐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가 됐다.

여기까지의 인생역정은 비교적 순탄해 보인다. 그러나 중앙박물관 졸속 철거 정책이 확정된 직후인 1994년 1월, 오주석은 이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사표를 내고, 이후 ‘미술사학계의 야인’으로 남는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분명했다. 한학(漢學)과 동양 고전은 물론, 주역의 대가인 김석진(金碩鎭)에게 수년간 사사했다. 사람들은 그의 학문적 성취를 두고 “치열한 공부 덕”이라고 말했다. 그가 다른 미술사학자들과의 사이에서 돋보이는 까닭은 단지 ‘미술’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고, 철학적, 사상적, 문학적 배경까지도 두루 꿰고 있기 때문이다.

시 한 수의 출처를 찾기 위해 원전(原典)을 뒤졌고, 작가의 성장 배경을 알기 위해 족보를 찾았다. 폭우 흔적이 역력한 겸재(謙齋)의 ‘인왕제색도’가 언제 그려졌는지 알아보려고 승정원일기의 날씨 기록을 살폈을 정도로 철저했다. 이를 두고 학계는 “엄정한 감식안(鑑識眼)과 작가에 대한 전기(傳記)적 고증으로 회화사의 지평을 넓혔다”고 했다. 이런 평가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그는 글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그의 문장이 주는 고아(古雅)한 맛이 실제 행동이나 어투에서도 고스란히 배어나왔다고 지인들은 기억한다. 그가 쓴 책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에서도 밝혔듯 “무릇 그림이란 마음 가는 바를 따르는 것”이라고 했는데, 그 말대로 그 역시 마음 가는대로 글을 썼고, 글 가는대로 따르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또 기회 닿을 때마다 주역 공부의 즐거움에 대해, 그리고 거문고의 즐거움, 옛 선비들의 삶의 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단호해야 하는 순간엔 물러서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세사(世事)의 바르지 못한 것, 특히 우리 옛 미술을 욕되게 하는 비평과 해석에 대해서는 더욱더 단호했다. 생전에 그는 “사람은 하늘과 땅의 마음을 가진 존재(人者天地之心也)”라는 말을 즐겨 썼다. 비록 지금 세상은 하늘과 땅의 마음을 잊은 채 약삭빠른 천박함이 판을 치지만 ‘좋은 것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처럼 그가 남긴 글과 마음은 오래도록 변하지 않을 또 하나의 새로운 문화유산이 됐다.

2005년 만 49세에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난 오주석을 추모하는 모임이 고향인 수원을 중심으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가히 ‘오주석 열풍’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이해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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