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난다 <5>
남한산성 세계문화유산으로 거듭난다 <5>
  • 이동훈 기자
  • 승인 2011.11.10 19:05
  • 댓글 0
  • 전자신문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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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등재 우선 추진대상 선정

유사시에 왕이 머물기 위한 행궁에 관련된 시설과 각종 제사시설 누정(누각(樓閣)과 정자(亭子)의 줄인 말. 멀리 볼 수 있으며 편히쉴 수 있는 곳)에 대해 조선시대에서 현재까지 각 시설물의 위치와 범위에 대해 살펴보았다.


5. 행궁과 단묘 부지

◇행궁, 좌전, 행궁영역의 정자들

지적원도(1912)에서 행궁은 935번지와 937번지 두필지로 돼 있었다. 좌전은 936번지이고 주변의 국유지는 진입로 북쪽부분의 지목이 전인 938번지이다.

937번지는 935번지 안에 있는데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광주군 중부면 사무소가 있었던 곳이다. 중정 남한지에 좌전은 행전의 북쪽 담장 밖에 있다고 했으며 지적원도에는 936번지 하나의 필지로 되어 있고 지목은 ‘사사지(賜死地)’였다.

936번지는 동쪽으로 길죽하게 튀어나와 있는데 이곳은 좌전의 담장 밖에 있었던 완대정과 우희정 자리이다. 동쪽부터 북, 서쪽으로 둘러싸고 있는 임야 산24번지가 국유지로 돼 있어서 좌전 담장 밖의 일정 공간이 완충지대로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우실(右室·오른쪽에 위치한 방)

우실은 중정 남한지에 남안문에 있다는 사실만 적혀 있어 문헌상으로는 구체적인 위치를 잡기 어려우나 조선시대의 지도자료에는 남문에서 북문까지 성안을 관통하는 도로의 동쪽에 행궁을 향해 그려져 있는 모습을 공통적으로 찾을 수 있다.

이 지도상의 위치에 해당하는 국유지는 지적원도에서 지목이 사사지인 1072번지이다

또 임야조사서(1919)에는 1072번지에 인접란 ‘ㄴ’ 자형의 150평 정도 되는 임야 산 31번지의 비고란에 ‘남사직단 부지’라고 적혀 있어서 이곳이 우실이 있었던 부지임을 알 수 있다.

우실터는 2010년에는 개인소유로 1072번지는 1953년에 지목을 전으로 변경했다가 2001년 1072-1번지를 분할하면서 대지로 지목을 변경했다. 1953년에 이곳에 건물이 없었으므로 지목이 전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인화관(人和館·1624년에 건립된 객관)

인화관의 위치는 중정 남한지에서 행궁의 동편에 있으니 객관이라고 했으며 행궁의 밖에 위치한다고 했으며 조선시대 지도에 의하면 향궁의 남동쪽에 남향으로 그려져 있다.

현재는 550-14번지 일대로 되어 있다. 1900년대에 조사된 광주부양안에는 제일 첫 번째인 제1호 관우가 남북으로 긴 장방형의 땅 모습에 면적이 1천785 평방칙으로 기록돼 있어서 제법 규모가 크며 토지조사부(1911)에서 550번지는 국유지로 돼 있다.

지적원도에는 550번지가 하나의 필지이었으나 이 지번은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번 -1에서 -17번지까지 분할과 합병이 이루어져 현재는 550-1, 550-3, 550-14, 550-16, 550-17번지의 5개 필지로 돼있다.

2005년까지 국유지인 550-14번지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사유지였고 2005년에서 2006년 사이에 경기도로 수용됐다.

550-14번지는 1978년 565-1번지(면적116㎡)와 합병되어 원래의 550번지에서 북서쪽 부분이 부가됐다.

▲ 1937년경 숭렬전(좌) 숭렬전(우)

◇숭렬전(崇烈殿·온조왕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

숭렬전은 문헌에는 서문 안에 있다고만 돼 있다. 숭렬전 부지인 717번지는 그 면적과 범위가 현재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다만 1977년 지목이 사사지에서 사적지로 바뀌었다. 임야조사서(1919)에는 산19, 산20의 비고란에 숭렬전부지라고 적혀 있는데 숭렬전 주변을 임야인 산 19번지와 산 20번지가 에워싸고 있다.

현재는 숭렬전 남서쪽의 731번지가 분할돼 731-2번지까지 국유지로 확보, 산 19번지 서쪽으로 완충지역을 확장했다.

◇현절사(顯節祠·병자호란(1636) 때 3학사 윤집·홍익한·오달제의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사당)

현절사는 연무관 동쪽 민가가 끝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1912년에는 310번지대와 동편으로 건물 후면 쪽으로 산11-2임야가 인접하고 있다.

현절사 북쪽으로 7필지, 동쪽에 1필지,남쪽에 1필지의 전이 국유지였다. 광주부양안에는 현절사 주변에 현절사의 위토가 다섯 개의 지번에 13좌가 있는데 그 위치가 지적도의 국유지와 일치하고 있어서 현절사 주변의 국유지 전은 현절사의 위토였음을 알수있다.

현절사 부지인 310번지는 1953년 진입로와 진입로 양쪽의 땅이 분할되어 개인소유로 넘어갔다가 1972년 다시 현절사 소유가 됐다.

결국 분할되기는 했으나 원래의 부지 범위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현절사 위토는 모두 타 법인의 소유로 바뀌었다. 현절사는 동쪽이 높은 서향의 부지이며 현절사에도 좌전, 숭렬전과 같이 뒤쪽으로 일정폭의 임야 산 11-2번지가 있어서 단묘시설 배후의 완충시설로 추정된다.

▲ 침괘정
◇침괘정(枕戈亭·남한산성에 있는 정각)

침괘정이 위치한 부지는 지적원도(1912)에 남쪽의 도록면에서 침괘정까지 591번지대 하나의 필지로 되어있었다. 591번지는 침괘정이 있는 부분은 높은 언덕이고, 언덕 아래에서 도로까지는 지형의 높이에 차이가 있다. 이처럼 지형상으로 분리되어 있는 부지가 1912년에 하나의 필지로 묶여 국유지로 된 것을 보면 침괘정 언덕 아래쪽에 다른 공해시설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592번지 서쪽의 570, 571번지 또한 1912년에 이미 개인소유로 돼 있었다. 이처럼 지적원도(1912)의 분석결과에 따라 세운 가설을 가지고 광주부양안(1900)을 살펴보면 침괘정 남쪽에는 동쪽으로부터 성기고, 아병청, 악공청이 있었던 것으로 돼있다.

침괘정 부지는 1973년 591-7번지로 분할된 동남쪽 부분을 제외하고는 1953년에 부번 -6번지까지 분할된다. 침괘정이 자리하고 있는 언덕 위 부분만 591-1번지가 되고 나머지 남쪽의 언덕 아래 부분은 분할되면서 지목도 전이 됐다.

행궁과 마찬가지로 침괘정 남쪽의 공해시설이 있었던 부지도 1953년 농지개혁 때에 분할돼 유상으로 분배됐다.

소유권은 1953년 이래 개인소유로 되었다가 2005년 경기도에 수용됐다.

591-6번지는 서쪽편의 1953년 563번지와 합병되어 사유지가 됐으나 현재는 563번지와 그 북쪽의 592번지, 593번지까지 모두 도에서 수용해 침괘정 주변은 1912년 당시보다 국유지 범위가 확대됐다.

◇광주부 사직단(종묘와 함께 토지의 신과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

광주부 읍치의 사직단은 각각 다른 시기에 제작된 세 개의 광주부읍지와 중정남한지에서 모두 남단사 오른쪽에 있다.

임야조사서(1919)에는 산33번지의 비고란에 ‘동사직단부지’라고 적혀 있어서 우실에 대하여 상대적으로 동쪽에 있는 광주부 읍치의 사직단을 마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남단사의 오른쪽이라는 문헌기록과 지도상의 한흥사와 남단사 사이의 위치가 산35번지의 위치와 일치하고 있다.

이곳은 지적도 작성당시 건물이 있지 않고 단만 설치돼 있었으므로 지목이 대지로 정해지지 못하고 임야로 지정됐다.

현재까지 지목과 지번이 유지되고 있으며 소유도 산림청 관할의 국유지로 유지되고 있다.

◇지수당(地水堂·조선 현종 13년(1672)에 이세화(1630∼1701)가 지은 건물로 당시 고관들이 낚시를 즐기던 곳)

지수당은 지적원도(1912)에서 124번지(지소)에 해당된다. 지수당은 부지의 동쪽 끝에 있고 부지의 서쪽에 방형의 연못이 있다. 124번지 동쪽의 130번지도 1912년 조사당시에는 국유지였으므로 원래 지수당의 영역이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원래 지수당에는 앞뒤로 연못이 3개 있었다고 하므로 130번지에 연못이 있었을 수 있다. 124번지와 130번지는 1912년 이후 부지의 규모에 큰 변화가 없었으며 1973년 북측이 도로에 편입되어 각각 124-1, 124-2, 130-1, 130-2번지로 분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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