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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한의 세상만사]술에 대한 나름의 분석

 

가까이 하다 정이 들어서 이 사람과 평생 함께 해야겠구나 이런 마음먹었지만 거리를 두고 멀리 떨어져서 바라보면 “아! 이건 아니구나”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술과 사람의 관계가 그러하더라. 사회생활을 적극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최소한 2~3차례 술자리를 가져야 한다고 매우 애매모호한 기준을 당당히 말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조합(組合)에 새로운 인물이 편입(編入)되는 경우는 드문 법이다. 해그름하면 며칠 전 함께 마셔 인사불성이 됐던 친구를 또 불러내 “그 날 집에 잘 들어갔어?” 이런 말로 술자리가 되풀이 된다.

요즘 피치못할 사정 때문에 금주(禁酒)를 하고 있다. 막연한 친구들은 비뇨기과 계통의 질환이라고 농하지만 그 방면을 넘보는 것은 우리 모두의 희망사항일 뿐이고 직설적으로 그 놈의 이(齒牙) 때문이다. 돌이켜보니 젊을 때 내과에 가는 숫자의 십분의 일만큼도 치과에 가질 않았는데 괄시한 것 때문에 보복을 당하는 기분이다. 기름칠도 게을리 했는데 국산품을 60년 넘게 사용했으니 고장 날 만도 하지만 술 마시고 귀가한 날 귀찮아서 양치질 거른 것도 지금은 후회막심이다. 치통도 술 몇 잔이면 깨끗이 없어지는 걸로 착각하는데 그건 엄청난 오해!!! 몇 시간 동안 이놈들은 잠복하고 있다가 일시에 날을 세우고 달려든다.

금주를 강제(强制) 받고 있는 요즘 술에 대해 객관적 분석(?)에 들어갔다. 옛 어른들이야 소학(小學)에서부터 술 마시는 예절을 가르치면서 적당히 마시면 양약 지나치면 독약ㅡ천당과 지옥 가는 길을 교육했지만……. 어디 배운다고 모두 따르는 사람 몇이나 될까? 고려시대의 문호 이규보(李奎報)는 아들 성명이 ‘이 삼백’인데 아들을 위해 시를 썼다. 이를테면 계주문인 셈이다. ‘네가 어린 나이에 벌써 술을 마시니 앞으로 창자가 녹을까봐 두렵구나. 네 아비의 늘 취하는 버릇을 배우지 마라. 한평생 남들에게 욕먹는단다. 한평생 몸을 망치게 한 것이 오로지 술인데 이젠 너까지 좋아하게 된 것은 어쩐 일인고, 삼백이라 이름 지은 것 이제야 후회되나니 날마다 삼백 잔씩 마실까 두렵구나’ 기가 막힌 자기 반성문이며, 자식 사랑이 절절하다. 맥아더 장군도 자기 아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약할 때 자신을 분별할 수 있는 힘과 두려울 때 자신을 잃지 않는 용기 정직한 패배 앞에 당당하고 태연하며 승리할 때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이 되도록 해주소서] 등등 주옥같은 말로 하나님께 부탁했지만 이규보선생 아들이 술을 절제했는지, 맥아더 장군의 아들이 인격적인 삶을 살았는지는 알 수 없고……. 그러나 이규보 선생이 하신 말씀이 더욱 마음에 와 닿는다.

계영배(戒盈杯)라고 있다. 상도에 나오는 조선시대의 거상 임상옥이 항상 곁에 두고 스스로 마음을 다스렸다는 술잔이다. 술을 어느 정도 부으면 넘치지 않지만 7할 이상을 채우면 밑으로 술이 쏟아지는데, 넘침을 경계하는 잔, 가득 참을 경계하는 교훈의 술잔이다. 북핵 6차 회담에서 미국 측 대표가 억지를 쓰는 북한 대표에게 계영배의 교훈을 예로 들었다. 당신의 유식함의 원천을 물었더니 당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로부터 계영배를 선물 받았다고 답해 화제가 됐다.

이재(理財)에 밝은 도공(陶工)들이 너도나도 이 술잔을 만들어 한 때 선물 중 최고인기품목으로 등장했는데 이처럼 거룩한 술잔에 넘치도록 부어서 흐르는 술을 탁자 끝에 입을 데고 마신 적이 있다. 모자라는 맛이 있으면 넘치는 맛도 있는 법이라고 낄낄대면서 웃었다. 참으로 감당 못 할 치기! 맹숭한 정신으로 술자리에 끼여있어보면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흥분하지 않아도 될 대목에 핏대 세우고... 하여간 얼마 전 내 모습을 빤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참으로 가관이다. 그러나 어쩌나, 한 번 마음 준 사이인데 어서 빨리 치료가 끝나 “역시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된 것이 좋다!” 이런 말 하고 싶다.

치통도 술 몇잔이면 깨끗이

없어지는 걸로 착각했지만

잠복하고 있다 달려든다



한번 마음 준 사이인데 어서

빨리치료가 끝나 ‘역시 친구와

포도주는 오래된 것이 좋다’

이런 말을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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