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한의세상만사]고난의 수학여행
[김기한의세상만사]고난의 수학여행
  • 경기신문
  • 승인 2012.07.09 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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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자신문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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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객원논설위원·前방송인예천천문우주센터 회장

가이드의 취향과 수준에 따라 여행의 질이 달라지는 것처럼 꽉 막힌 선생님을 만나면 수학여행이 군사훈련이 된다.

우리 고장에서는 봉제사 접빈객(奉祭祀 接賓客)을 사람 살아가는데 기본 예의로 간주한다. 다른 것은 좀 소홀하더라도 이 두 가지만 잘 지키려고 노력하면 설령 작은 허물이 있더라도 그런대로 용서 받을 수 있다. 조상 제사 잘 모시고 찾아오는 손님 정성스럽게 대접한다는 봉제사 접빈객이라…….

제사 귀찮아서 교회 나간다는 사람도 있고, 내 돈 백 원은 당신 돈 만원. 이런 각박한 요즘, 어떻게 됐던 아름다운 전통이다.

얼마 전 ‘우즈베키스탄’에 다녀왔다. “실크로드의 중심에 위치한 나라”, “광물자원이 풍부해서 장래가 희망 있는 나라”, “세계의 화약고인 아프가니스탄과 국경을 같이 하는 나라” 또 하나 있다.

“김 태희가 논 메고, 한 고은이 소 몰고 다니는” 무지무지하게 예쁜 여자들이 거리에 넘쳐난다는 나라. 더욱 고마운 것은 그 나라의 속담에도 “찾아오는 손님을 아버지의 윗자리에 모셔라” 거기도 접빈객을 으뜸으로 친단다. 고맙기도 하지…….

떠나기 전, “아버지 안돌아올지도 몰라요”, “아이고! 앞으로 화려하게 펼쳐질 내 팔자!” 모자간의 농담이 듣기에 뭣했지만 처음 가는 나라, 처음 만나는 사람, 처음 맛보게 될 음식. 그까짓 게 대수인가!

가이드의 취향(?)과 수준(?)에 따라 여행의 질이 달라진다. 일일이 열거 할 수 없지만 문화도 종류가 퍽 다양하다. 그런데 앞뒤 꽉 막힌 선생님을 만나면 수학여행(修學旅行)이 군사 훈련이 된다. 솔직히 여행이 주는 매력 가운데 일탈(逸脫)도 있지 않은가? 넥타이를 풀고 예비군복을 입고 교육을 받을 때 윤리(倫理)선생도 가끔 무너진다. 탓하기보다 인간적으로 보이더라. 우즈백 가이드는 키도 크고 얼굴도 희멀끔하고 하여간 한 인물 했다. 2년 동안 교환학생으로 한국에 왔었단다.

호텔에 짐을 풀고 근처 호수 노변 카페에서 근무시간이라고 딱 한잔의 맥주도 거절하는 것이 아닌가. “저는 겨우 두 달 된 여식(女息)의 아버지로……. 긍지를 갖고 이번 여행이 끝낼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 말의 뜻을 알아차렸다. 이런 모진(?)말을 듣게 만든 앞서 다녀간 여행 선배들 행적(行蹟)이 짐작갔다. 한편 앞으로 전개될 고난의 수학여행이 걱정스러웠다. 별 것 아닌 유적지 앞에서도 자랑이 끝이 없었고 좀 그럴듯한 곳에서는 거품을 물었다. 그러나 어딘가 이상했다. 서울 흑석동 유학 시절 이야기는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그래, 미안하다. 이젠 좀 살게 되었다고 대한민국이 길 설고 낯선 스무 살 갓 넘은 너에게 무던히도 상처를 주었나보다!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전쟁’에 개입한 후 마약이 엄청나게 유통되고 있다는 등 소위 강대국에 뼈저린 원망이 많았다. 좋게 보면 개념 청년이고, 나쁘게 보면 아직은 영글지 않은 민족주의자랄까? 자기의 생각이 절대적 진리라고 다른 이의 목소를 외면한 채 동조하면 우군(友軍), 그렇지 않으면 적군(敵軍)이라고 독을 품는 그 또래의 우리나라 청년들이 생각났다. 자기들 나라도 미래가 밝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좋은 지도자를 만났을 경우라고 단서를 붙였다. 아서라! 좋은 지도자를 만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인가? 그리고 좀 더 살아봐서 하는 소리인데 지도자가 결코 메시아가 될 수 없다는 사실!!! 나중에 크게 실망하기 전에 이 말 명심하도록 하거라…….

곧 여행사를 독립해서 돈을 많이 번 후 정치를 하겠다는 꿈을 슬며시 이야기했다. 기특했다. 그 꿈마저 없다면 딸아이의 아버지로 용납 못할 갑의 요구에 가슴 먹먹해옴을 무슨 수로 이길 수 있을까? 한국이름은 강철이라고 했다. 그 뒤부터 자연스럽게 그는 강 의원(議員)으로 불렀다. 강 의원! 언제든지, 어느 경우가 되더라도 마음 깊은 곳에 독을 품지마라. 내가 알기로 정치란 깊이보다는 넓은 것을 더욱 필요로 한다. 동냥하는 거지를 여행객들에게 너무 부끄러워하지 마라. 어느 나라에도 흔히 있다. 그리고 너무 매몰차게 대하지 마라, 강 의원 말대로 설령 그것이 버릇이 된다고 해도!!! 하여간 여러 면에서 이번 수학여행이 고마웠다. 다시가면 복습(復習)이 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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