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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곽재용"4년에 한 편 ‘올림픽 영화감독’"

 

런던 올림픽이 한창이다. 영화계에 올림픽 감독이란 말이 있다. 올림픽이 4년마다 열리듯 4년에 한 편 꼴로 영화를 만드는 감독을 일컫는 말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감독이 누군지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어느 감독이 몇 년 만에 어떤 영화를 찍었고 개봉했는지에 대해 별 관심이 없다. 하지만 감독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영화 한편을 만드는 일은 올림픽을 준비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이다. 그리고 매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과는 달리 감독에게서 영화를 만드는 일은 4년이 될지 아니면 10년이 될지 또는 영영 영화판에서 내 영화가 사라질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전 성공한 ‘화차’의 변영주 감독은 8년 만에 영화를 내놓았고, 성공했다. ‘후궁’의 김대승 감독은 ‘번지점프를 하다’란 명작을 남겼지만 다시 스크린으로 돌아오는데 7년이 걸렸다. 왜 이렇게 오래들 걸리는 것일까. 일반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독들은 투자를 받고 캐스팅이 이뤄질 때까지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다듬는다. 이 시간이 흘러흘러 4년, 7년 8년이 가는 것이다. 영화감독이란 직업을 가진 자들 치고 현재 영화를 준비하지 않는 자가 어디 있던가.

1998년에 돌아가신 김기영 감독님을 잠깐 뵌 적이 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한국에 왔서 강연을 펼칠 때 내 뒤에 앉아서 묵묵히 스크린을 바라보고 계셨고, 나는 존경의 의미를 담아 목례를 드렸다. 그날 어느 제작자에게 들은 이야기는 김기영 감독님이 5000만원만 있으면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면서 자금을 구하러 다닌다는 것이었다. 1990년 제작한 미공개 작품이 있기는 하지만 1984년 ‘육식동물’이란 영화가 감독님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하면 15년 동안 영화만을 준비하다 돌아가셨다. 최근엔 80을 바라보는 강대선 감독님이 새 영화의 준비에 남다른 열정을 바치고 계신 모습에 감동을 받기도 하였다.

그렇다. 영화감독은 쉬지 않고 영화를 준비한다. 하지만 제작사, 또는 투자사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지 못해서 영화를 만들지 못하거나 캐스팅이 제대로 되지 않아 영화가 불발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를 영화계에서는 덮는다고 한다. 영화계에서 시나리오를 책이라고 부르니 책을 덮으면 영화를 덮는 것이다. 감독에게서 영화를 덮는 일은 매일 이불을 덮는 일처럼 일상다반사다.

영화를 덮는 일은 촬영 전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촬영을 하는 중간에 영화를 덮기도 한다. 영화를 촬영하다가 제작비 문제로, 또는 배우나 스탭과의 갈등 문제로 중단되기도 한다. 배우나 스탭과의 갈등의 경우는 거의 서로가 화해를 하거나 한쪽이 사과를 하여 촬영을 재개하지만 제작비가 초과되거나 부족해서 영화를 끝까지 마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나의 경우도 촬영 중에 덮은 영화가 두 편이나 있다. 1996년 10월 어느 날, 서울의 명동 축제일을 기점으로 야심차게 촬영을 시작했던 ‘영웅의 이름으로’란 액션 영화가 있었지만 절반의 촬영만 끝낸 채 다시 촬영을 재개하지 못했다. 당시에 러시필름(바로 촬영을 끝내서 현상한 필름)을 본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아까워했지만 더 이상의 투자가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는 대기업이 영화계에 진출하는 과정에 있었고, 초기 대기업은 대개 스타배우의 등장을 투자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강했다. 하지만 ‘영웅의 이름으로’에는 내놓을 만한 스타가 없었다. 그만큼 감독으로서 작품에 자신이 있었지만 결국 덮이는 신세가 되었고, 그 후로 나는 ‘엽기적인 그녀’를 4년 후에 내놓을 수 있었다. 결국 올림픽 감독이 된 것이다. ‘비오는날 수채화2’이후에는 무려 8년만이다.

‘영웅의 이름으로’가 중단 되고나서 오랫동안 제작사와 투자사를 찾아다녔던 영화는 ‘클래식’이었다. ‘클래식’도 무려 5년 동안 영화사를 돌고 돌다가 영화로 탄생한 작품이다. 최근에 성공한 ‘건축학 개론’도 거의 10년을 숙성시킨 작품이라고 한다. 어느 감독이 그토록 오래 영화를 숙성시키고 싶겠는가. ‘영화는 물고기 같다’라는 영화계의 말이 있다. 오래 묵히다 보면 다른 영화사에서 같은 소재로 영화를 만들 경우도 생기고, 신선도가 떨어져 식상하게 된다는 말이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도 허다한 것이 영화계이다.

그렇든 저렇든 영화감독들은 끊임없이 영화를 생각하고 준비를 한다. 그리고 또 덮고, 또 준비를 한다. 맥아더 장군의 말을 약간 비틀어 말하자면 영화감독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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