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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허공 곧게 지나 붉은 안개 속 들어가니/최고봉에 올랐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네/둥그렇고 밝은 해가 머리위에 나직하고/사면으로 뭇 산들이 눈앞에 내려앉았네/몸은 날아가는 구름 쫓아 학을 탄 듯하고….” 登太白山(안축·1282~1348).
 

 

 


추운 겨울밤. 옷깃을 여미게 만드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할퀴고 지나간다. 별빛을 따라 어둠속에서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시계는 새벽 3시30분을 가리키고 있다. 바로 눈앞도 분간하기 어렵건만 몇몇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빛나는 랜턴불빛에 주변이 환하다. 사람들은 저마다 두툼한 옷에 모자, 배낭을 짊어지고 중무장을 한 채 비장한 모습이다. 이들은 모두 계사년(癸巳年) 뱀의 해 첫 일출을 태백산에서 보기 위해 나선 길이다.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이 별들로 초롱초롱 빛을 발하고 있다. 왠지 예감이 좋다. 출발지인 유일사 매표소에 모인 등산객들은 “이런 날씨라면 장엄한 태백산 일출을 볼 수 있겠다”며 기대에 들떠 있다.

일단 간단한 준비운동을 마치고 출발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랜턴불빛을 따라 등산객들이 꾸물꾸물 산을 오른다. 워낙 깜깜한 탓도 있지만 얼마 후 산꼭대기에서 마주칠 겨울풍경에 대한 기대감으로 주변은 아예 볼 생각을 접었다.

태백산은 경상북도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 태백시 경계에 해발 1567m로 높이 솟은 산이다. 예부터 한라산, 지리산 등과 함께 남한의 대표적인 명산으로 꼽혀왔다. 특히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천제단을 머리에 이고 있어 민족의 영산으로 불리기도 한다. 지리적으로는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분기점에 해당하고, 최고봉인 장군봉과 문수봉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지형이 크고 웅장한 느낌을 준다.

50여분쯤 올랐을까. 유일사 쉼터를 앞두고 갑자기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쳐 옷 속을 사정없이 파고든다. 어느새 별들은 사라지고 짙은 구름이 한바탕 몰아치자 일순 세상이 얼어붙은 듯 싸늘해진다. 하늘엔 구멍이 뚫린 듯 펑 펑 함박눈을 쏟아낸다.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바빠진다. 정상을 1.7㎞ 정도 앞두고 길이 험해진다. 등산로는 좁아지고 돌과 나무가 눈에 띄게 많아진다.

주렁주렁 눈송이에 '황홀'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저 멀리 산 능선을 따라 주변이 어렴풋이 밝아온다. 예사롭지 않은 나무의 형상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 유명한 태백산의 ‘주목(朱木)’들이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주목은 이름 그대로 줄기와 가지가 붉은색을 띠며 강인한 생명력으로 유명하다. 겨울철엔 말라 비틀어져 죽은 듯 보이면서도 봄이 오고 때가 되면 다시 물기를 머금고 파란 싹을 낸다고 한다.

주목 군락지를 벗어나 장군봉으로 향하자 눈이 그치면서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천제단까지 가는 등산로 양쪽으로 눈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능선이건 나무건 사방이 온통 설화로 뒤덮여 있다. 양팔에 주렁주렁 눈송이를 안은 나무들이 힘에 겨운 듯 아래로 늘어뜨린 모습이 장관이다.

태백산 일출을 보기 위해 나선 이들에게 눈꽃은 자연이 선사한 덤이다. 눈부신 눈꽃에 넋이 나갈 정도다. 이 맛에 등산객들은 겨울산행을 즐기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천제단에 섰다. 백두대간의 능선을 넘어 붉은 기운이 솟아오른다. ‘와~’ 등산객들의 탄성이 쏟아진다. 대자연이 내뿜는 불덩이가 꿈틀대며 온 몸을 휘감는다. 겹겹이 쌓인 발아래 산들과 정상에 선 이들이 숨을 죽인다. 마치 하늘과 땅이 소통하는 통로에 서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정운종(43·김포)씨는 “3대가 덕을 쌓아야만 볼 수 있다는 태백산 일출을 직접 보니 온 산의 기(氣)가 가슴속으로 파고드는 것 같다”면서 “올해에는 뭔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라고 즐거워했다.

날이 밝은 후 천제단을 중심으로 백두대간의 고봉들이 어깨와 어깨를 맞대는 대파노라마는 가히 장관이다. 함백산 정상이 바로 눈앞에 있고, 매봉산 지나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 능선이 힘차게 뻗는다. 금대봉에서 낙동강 발원지를 따라 산줄기를 잇댄 낙동정맥의 능선도 이 지점에서 한눈에 들어온다.

내려서는 길, 천제단 아래 단종비각을 지나면 망경사(望鏡寺)다. 절의 규모도 작고 볼거리도 많지 않지만 일출산행에 지친 이들에겐 휴식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여기저기 모여 앉은 등산객들은 벌써 어디선가 따듯한 물을 구해와 추위에 지친 몸을 달래고 있다.

절에는 용정(龍井)이라는 우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서 솟아나오는 샘으로 알려져 있다. 여간해서 마르는 일이 없고 천제의 제사 때는 제사용 물로 쓰인다고 한다. 한 국자 샘물은 얼음장같이 차갑지만 산행으로 데워진 갈증을 시원하게 씻어내는 데는 이만한 게 없다.

온갖 시름을 벗어 던지고 충만한 기를 받은 사람들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당골광장으로 향한다. 하산길에는 숲이나 나무에 대한 해설 표지판이 잘 정비돼 이리저리 산을 살피는 재미도 쏠쏠하다. 등산로를 따라 2시간여를 내려가면 산행의 종착지인 당골광장이다.



◇여행 TIP

△가는 길=자가용은 영동고속도로와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제천IC를 나와 38번 국도로 빠져 정선, 고한을 지나 태백시내로 들어가면 된다. 버스는 동서울터미널에서 태백행이 수시로 운행하고, 김포·인천공항에서도 태백까지 직행한다.
 

 

 


△먹거리=한우고기와 닭갈비가 별미. 해발 650m 이상의 고지대에서 자란 한우를 재래식 도축으로 신선한 육질을 자랑한다. 태백한우골(033-4599-4799)은 한우생고기를 연탄불에 구워먹는 맛이 일품이다. 닭갈비는 고구마, 떡, 냉이 등에 육수를 붓고 전골처럼 끓여 기름기가 적고 담백하다. 춘천닭갈비와는 맛도 재료도 딴판이다. 김서방네닭갈비(033-553-6378), 승소닭갈비(033-553-0708) 등이 잘한다고 소문이 나있다. 감자수제비는 태백에서 생산된 감자가루를 밀가루와 혼합 반죽해 김, 깨, 달걀 등 고명을 얹어 먹는다. 허생원먹거리(033-552-5788). 태백에서 삼수령 가는 길에 있는 초막고갈두(033-553-7388)는 고등어, 갈치, 두부조림을 칼칼하게 끓여낸다. 여러 명이 가면 한자리에서 3가지를 골고루 맛볼 수 있는데 맵지만 숟가락이 자꾸 가는 게 매력이다.

△볼거리=한국 석탄산업의 변천사와 석탄생성의 과정을 한눈에 이해할 수 있는 석탄박물관은 볼 만하다. 또 한강과 낙동강의 발원지인 검룡소와 황지를 비롯해 매봉산 풍력발전단지 배추밭, 용연굴, 구문소, 예수원 등도 빼놓을 수 태백의 멋이다.



◇일출산행은 이렇게

아이젠·랜턴·장갑·모자 등 필수
당골광장 쪽 사우나·모텔 등 즐비

 

 

 


태백산 산행길이 완만하다고 해서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온이 낮기 때문에 옷을 두둑하게 챙겨야 한다. 발열 내복과 등산바지, 다운이나 고어텍스 재킷을 준비한다. 등산화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것이 좋다. 눈이 오지 않더라도 아이젠과 스패치는 꼭 챙길 것.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새벽에 산을 올라야 하므로 헤드랜턴은 반드시 필요하다.

등산로는 당골광장이나 유일사 입구 등 몇 곳이 되지만 초보자나 야간산행을 하지 않았다면 유일사 쪽이 덜 힘들고 거리도 짧다. 유일사 매표소에서 시작해 장군봉∼천제단∼망경사∼당골광장 코스가 5시간 정도 걸린다.

1박2일 등산을 생각한다면 산 아래서 하룻밤을 자야 한다. 당골광장에 사우나, 모텔, 민박들이 모여 있다. 유일사 입구에도 식당 겸 민박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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